파양동물 미끼상품으로 유인해 펫숍 판매
신종 펫숍, 보호소 명칭 사용 못하게 해야
#1. 지난달 중순 보호자가 포기한 이른바 '파양 동물'을 입양할 수 있다는 경기도의 한 반려동물 매장을 찾았다. 매장에 들어서자 2개월령 푸숑(푸들과 비숑의 믹스견), 웰시코기 등 이른바 품종견과 품종묘 수십 마리가 작은 유리장 진열대에 물건처럼 전시돼 있었다. 보호소임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번식장에서 동물을 사 와 판매하는 펫숍을 주업으로 하는 이른바 '신종 펫숍'이었다. 파양견을 보러 왔다고 하자 직원은 진열대 안쪽 따로 마련된 공간으로 안내했다. 비좁은 공간에 들어서자 대형견과 중형견 20여 마리가 짖어댔다.
칸막이 밖에는 종이박스와 이동장 안에 있는 개들도 보였다. 이 중 한 종이박스 안에 코커스패니얼 종(種) 개가 누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파리들이 몸에 붙어 있었지만 개는 파리를 쫓을 힘도 없어 보였다. 개의 상태를 묻자 직원은 "개가 감기에 걸렸다"며 "약을 먹고 있어 당장 입양은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축 늘어진 채 아예 움직임이 없는 다른 개에 대해서는 "눈이 보이지 않지만 (큰 문제는 없어) 입양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어리고 건강해 보이는 개를 데려가고 싶다고 하자 직원은 "책임비 10만 원과 보증금 5만 원을 내야 한다"며 "다만 질병은 보장되지 않는다"고 했다. 데려간 이후 개가 아파도 보상을 받거나 다시 되돌려줄 수 없다는 얘기다. 현장에 동행한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환경이 너무 열악한 데다 개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해당 업체 측은 "아픈 동물은 병원에 가서 검진을 시키고 이틀에 한번씩 꾸준히 병원에 데려간다"고 설명했다. 업체 측은 또 "동물이 전염병 관련 증상을 보이면 검사 키트로 검사를 한다"며 "종이박스 안 코커스패니얼은 전염병이 아니어서 다른 동물과 함께 두었고 병원에 데려가 처방을 받아 약을 먹이고 있는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2. 서울의 또 다른 신종 펫숍. 홈페이지에 올려진 파양견을 보러 왔다고 하자 직원은 모두 입양됐거나 다른 지점으로 이동했다고 답변했다. 홈페이지에 올려진 파양견은 한 마리도 없었다. 대신 매장에는 2~3개월령 품종견과 품종묘만 있었다. 직원은 "파양견 정보가 홈페이지에 반영되는 속도가 느리다"고 설명했다. 직원은 또 "파양견을 찾는 사람 대부분 어린 품종견을 선호하지만 거의 없다"며 "파양견들은 대부분 문제가 있거나 아픈 상태"라고 말했다.
홈페이지에 안내된 무료입양이 가능한지 묻자 직원은 "무료입양은 7세 이상이나 아픈 개들만 해당하고, 입양 후 직접 수술을 시켜줘야 하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며 "어리고 건강한 개들은 책임비 30만 원 정도를 내야 한다"고 했다. 직원은 이어 "원하는 동물이 있으면 예약금을 걸 수 있는데 입양 시 책임비에서 공제된다"며 "다만 동물을 입양하지 않을 경우 돌려주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보호소 가면 쓴 신종 펫숍은 성업 중
보호소의 가면을 쓴 신종 펫숍 문제가 제기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관련 업체들이 늘어나는 등 성업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안락사 없는 보호소' 등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보호자로부터 돈을 받고 반려동물을 맡은 뒤 새 보호자에게 다시 돈을 받고 파는 형태로 수익을 올린다. 보호자로부터 반려동물을 인수할 때 나이, 질병 유무 등에 따라 수십만~수백만 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파양동물을 미끼상품으로 두고 펫숍을 운영하면서 더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신종 펫숍 문제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보호소'라는 명칭을 펫숍 마케팅에 사용하면서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지만 이는 법적 관리 대상이 아니다. 또 보호자가 사육을 파기한 동물을 '돈을 받고' 데려오는 경우라 이를 관리할 법적 근거가 없다. 동물보호법상 '동물판매업'은 '반려동물을 구입하여 판매하거나, 판매를 알선 또는 중개하는 영업'이기 때문에 파양동물을 맡아주면서 파양비를 받는 행위는 동물판매업에 해당하지 않아 이를 규제할 방법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현재 영리목적의 파양 및 입양에 사용되는 계약서가 고객에게 심각하게 불리한 조항이 많아 반려인들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27일부터 시행 중인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민간동물보호시설의 경우 지자체에 신고하게 돼 있지만 신종 펫숍은 신고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해석이 나온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민간동물보호시설'로 한정돼 있는데 신종 펫숍이 운영하는 이른바 '보호소'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서다.
신종 펫숍, 보호소 명칭 사용 못하게 해야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김세진 농림축산식품부 반려동물산업의료팀 과장은 "신종 펫숍에 대한 실태 조사를 하고 있다"며 "제도개선을 고민 중이고, 조사 결과를 토대로 상반기 중 이들의 영업관리강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또 이달 말 신종 펫숍과 같은 변칙영업 규제 내용을 포함한 민간동물보호시설 운영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나아가 장기입원, 군복무 등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사육을 포기한 동물을 지자체가 보호·관리할 수 있는 사육포기인수제 도입으로 신종 펫숍으로 파양되는 동물의 수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안만으로 현재 성업 중인 신종 펫숍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먼저 신종 펫숍이 보호소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유기동물보호소라는 명칭은 동물을 구조해서 '가정에 입양 보내는 것'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시설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재언 동물자유연대 법률지원센터 변호사도 "지자체에 신고된 보호소 외에는 보호소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나아가 보호소는 영리 목적의 파양 및 입양 중개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변호사는 "신종 펫숍은 돈을 받고 맡은 동물을 이른 시일 안에 다른 보호자에게 입양 보낼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보호소와 펫숍의 겸영을 막으면 변칙영업을 차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법과 제도를 개선해도 동물을 쉽게 파양하는 문화가 사라지고 보호소에서 입양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신종 펫숍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동물단체들은 보고 있다. 이형주 대표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양육을 포기하는 상황은 발생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 경우 지자체 보호소가 동물을 인수해 다른 가정으로 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다만 이는 보호소 동물의 입양이 활성화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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