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미 지음, '차를 담는 시간'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책방은 잠시 여행합니다." 지난해 말, 서점을 잠시 쉬기로 했다. 다시 문을 여는 날은 정하지 않았다. 완전히 문을 닫는 것은 아니기에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2016년 2월에 책방을 오픈하고 쉼 없이 달려왔다. 책방을 지속하기 위해 많은 일을 겸했다. 그사이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15평 남짓한 책방에서 오로지 책만 판매해 4인 가족의 생계와 동료의 수입을 확보하는 것은 꿈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서점 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보다는 이 공간과 일이 주는 좋은 점을 더 자주 생각했다. 아이를 돌보는 일도 책방 운영과 비슷했다. 하지만 육아는 어려운 숙제가 더 많았다. 결국 책방 일과 육아 스트레스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한 나는 '불안'이라는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마주하게 됐다.
불안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금 간 유리잔 같았다. 일을 계속하기 위해선 아슬아슬한 일상을 진정시켜야만 했고 결국 병원에 갔다. 의사는 약을 처방하며 커피도 끊으라 말했다. 나는 좀 더 잘 살기 위해 커피를 끊기로 결심했다. 커피가 퇴장한 삶을 많은 이들이 진심으로 위로했다. 그리고 입 모아 차(茶)를 권하기 시작했다.
티백 차를 마시던 게 고작이었던 나는 사람들이 추천하는 차에 대해 점점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관심은 자연스레 차와 관련한 책, 공간, 사람으로 확장되었다. 단순히 차를 소개하는 책부터, 차를 만드는 사람 이야기, 차가 있는 공간 이야기, 차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차와 관련한 이야기는 차 종류만큼이나 무궁무진했다.
'차를 담는 시간'도 그렇게 만났다. 이 책에는 차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다기 브랜드 '토림도예' 아림 김유미 작가의 차와 도자기와 삶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그동안 찻잎을 따고, 덖고, 비비고, 말리는 등 차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꼭 수련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차를 만드는 과정도, 차 도구를 만드는 일도, 차를 마시는 행위도 서로서로 꼭 닮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도자기를 만드는 일을 사람의 일생에 비유했다. 불을 때고 나면 기물이 더 견고해지듯 고난을 겪고 나면 사람도 단단해진다고.
"차는 그저 개인의 기호가 반영된 음료만은 아니다. 차를 마시는 일에 '다도(茶道)'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차를 마시며 도자기를 빚는 삶은 몸과 마음을 수련하며 덕을 쌓는 삶이기도 하다. 깎이고 다듬어지고 시련도 겪으며 단단해지는 과정 끝에 아름답고 쓸모 있는 무엇이 되는 삶. 여전히 어려운 여정이지만, 이 시간 안에서 언젠간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좋은 그릇이 되리라는 믿음이 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차를 마시고 도자기를 빚었다." (김유미, '차를 담는 시간' , 오후의소묘)
비록 지금은 금이 간 유리잔처럼 아슬아슬 불안하지만, 꾸준히 일과 삶을 가꾸어 가다 보면 지금의 어려운 시기를 건너가 조금은 더 단단한 내가 되리라는 위로를 얻었다. 도예가의 삶 속 말을 통해 나 또한 '작지만 좋은 그릇'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품었다.
식물이 마를 때 물을 주듯이 마음이 말랐을 때 물을 주는 데는 차만 한 것이 없다 한다.
"잘 적셔진 마음엔 하나둘 새로운 것들이 자라난다. 이해, 의지, 열정, 희망 같은 것들. 말랐던 마음에선 도무지 기미조차 없던 것들이 어느샌가 자라나 날 지탱해 주고 있다. 오늘도 마음이 마르지 않도록 한가득 차를 마셨다." (김유미, '차를 담는 시간', 오후의소묘)
차를 자주 마셔야 할 이유가 정말로 충분하다.
6월 1일 다시 책방을 연다. 여전히 불안을 껴안은 채, 계절을 놓치며 바쁠 테지만 '차를 담는 시간'을 떠올리며 자주 찻잔을 채울 것이다.
책방심다
- 김주은 대표
책방심다는 전남 순천시 조곡동에 있는 작은 서점입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