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공간들과 건축물의 소개와 그 이면에 담긴 의미를 필자의 시선에 담아 소개한다. 건축과 도시 공간에서 유발되는 주요 이슈들과 사회문화적 의미를 통해 우리 삶과 시대의 의미도 함께 되새겨 본다.
위대한 현대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역작들
완성도 높이려 연평균 1.3채 짓는 데 매달려
'도면대로 잘 짓고 있다'에 담긴 위험성
'발컨'이란 '발로 컨트롤하다'의 줄임말이다. 주로 인터넷상에서 게임 사용자가 레벨이나 장비에 어울리지 않게 낮은 실력을 보여 줄 때 '발로 해도 그것보다 낫겠다'라는 조롱 섞인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건축에서는 의미가 정반대이다. 예전부터 좋은 건축은 '발로 해야 제대로 만들 수 있다'란 말이 있다. 의미인즉슨 손으로 설계한 건물이 제대로 지어지기 위해서 현장에 직접 발이 닳도록 다니며 컨트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말 그대로 '발컨'을 얼마나 치열하게 하나의 여부에 따라 명작이 되기도, 그냥 겉만 그럴싸한 껍데기가 되기도 한다.
오늘날 흔한 공동주택인 아파트의 이상적 효시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현대 건축의 최고 거장 르코르뷔지에에 의해 1947년~1965년 사이 만들어졌다. 각지에 다섯 동이 같은 개념으로 설계되고 지어졌지만 유독 1952년 최초에 지어진 마르세유가 가장 유명하다. 보통 비슷한 건물을 차례대로 만들게 되면 수정과 보완을 통해 갈수록 더 좋은 건물이 되어야 함에도 처음 만든 마르세유의 완성도가 압도적인 것은 흥미롭다. 주된 이유는 당시 예순을 넘긴 거장이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수시로 현장을 다니면서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하고 사후 설계를 진행했던 것이리라. 설계자의 정성과 열정이 현장에 고스란히 녹아난 결과이다. 르코르뷔지에는 60년에 달하는 활동 기간 동안 320건의 설계를 진행하였고 그중 76개만이 실제 완성되었다. 어림잡아 한 해 1.3개가 채 되지 않는다. 역사상 최고의 건축가치고는 그 수가 많지 않음은 공사 전반에 관여하며 완성도가 높은 건물을 만들기 위해 일을 고른 이유일 것이다. 완성도와 창의성은 건축가의 작품 수에 반비례할 수밖에 없다.
건물은 도면에 의해 지어진다. 하지만 화가가 자신의 돈으로 화구를 사고 직접 자신의 손으로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과는 달리 건축은 남(건축주)의 돈과 또 다른 남(시공자)의 손에 의해서만 성립하는 지극히 타자 의존적인 분야이다. 도면이란 완성될 건물을 위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지침서에 지나지 않으며, 건축가가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하게 도면을 그린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완벽한 설계도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도면에 표현된 내용은 어디까지나 발전의 여지와 보완의 잠재성과 기대를 내포한 구상이다. 설계를 업으로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은 도면이 아무리 상세히 작성되었다고 해도, 현장에 가서 하나하나 반복적인 확인을 거치지 않으면 그 건물은 엉망이 된다는 것이다. 건물의 완성도는 '3분의 2' 도면을 바탕으로 '3분의 1' 현장의 발컨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설계자의 입장과는 대조되는 것이 만드는 주체자이자 타자인 작업자의 입장이다. 그들은 가능한 한 빨리 작업을 마치고 또 다른 현장으로 넘어가 수익을 내야 하는 처지다. 도면을 꼼꼼히 보고 설계자의 의도를 이해하기보다는 자신이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수월히 만들려 하므로 직접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으면 제대로 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도면을 제대로 보지 않음을 예측하고 자세한 시공법의 설명에 돌아오는 답은 "내가 이 일을 수십 년 해봐서 아는데~"라며 난색을 표현하는 상황이 다반사이다. 짓는 과정에서 최선의 답은 책상이 아닌 항상 현장에 있다. 고 김수근 선생은 글에서 "설계대로 지은 집은 별로 좋은 집이 될 가능성이 작다. 오히려 좋은 집은 현장에서 많은 설계변경을 통해 지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설계대로 지은 집이란 설계 후 길게는 수년이 걸리는 동안 조금도 발전시키지 않고 지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사이 여러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기술 등의 발전을 무시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고로 '도면대로 잘 짓고 있다'라는 말은 '정말 잘 지어지고 있다'를 의미하는 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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