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라진 코인' 심층 보고서
5대 거래소 ’거래종료 코인‘ 전수조사
거래소 상장 10개 중 3개는 상장폐지
49%가 먹튀, 발행 후 사업·관리 중단
43%는 시세 조작 의심·거래량 미미
우후죽순 발행 김치코인이 30% 차지
상폐 김치코인 2년간 코드 안 고쳐
무려 315개나 됐다.
지난 5년간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사라진 코인이 이렇게 많았다. 여기에는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투자해 논란이 된 위믹스(WEMIX) 코인도 포함돼 있다. 위믹스는 지난해 11월 유통량을 속인 사실이 드러나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에서 상장폐지됐다. 코인 자체는 경제적 가치가 없어 유통량에 따라 가격이 변동되기에, 이를 속이면 상장폐지 사유가 된다. 분노한 투자자들은 지난 11일 위믹스 발행사인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를 사기 등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위믹스는 그러나 지난 2월 코인원에 재상장했다. 상장폐지된 지 3개월 만이다. 유통량 위반과 신뢰 훼손 문제가 해소됐다는 게 이유인데 상장에 대한 일관된 기준이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공인된 룰(Rule)이 없다 보니 기술력과 사업성이 없는 잡코인들이 뒷돈이나 다름없는 상장피를 내고 거래소에 모습을 드러낸 뒤 우후죽순 폐지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315개의 코인들은 왜 사라졌을까.
거래소에서 사라진 그 코인, 어떻게 됐을까
한국일보는 3개월간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고팍스·코빗)에서 거래 지원이 종료된 코인 315개를 전수조사했다. 가상자산 버블 시기를 지나 침체기(Crypto Winter)를 맞아 거품이 꺼진 코인의 민낯을 제대로 들여다보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5대 거래소 공지사항을 통해 상장폐지된 코인을 확인한 뒤, 코인정보업체와 각 코인 홈페이지 등을 통해 △상장 및 폐지 시점 △폐지 사유 △폐지 시 발행업체의 소명 여부 △홈페이지·트위터·텔레그램 활성화 여부 △소스 코드(프로그램을 사람이 읽을 수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나타낸 글) 최종 수정일 △다른 거래소 상장 여부 등을 조사했다. 가상자산 주관부서인 금융위원회가 상장폐지 사유 등을 분석한 자료는 있지만, 이처럼 다양한 항목을 전수조사하기는 처음이다.
눈에 띄는 건 한국계 코인(일명 김치코인)의 소스 코드 수정이 2년 전 멈췄다는 점이다. 발행업체 본사가 한국에 있거나 임직원이 한국인이면 김치코인으로 분류된다. 버그 하나 없이 완벽하게 블록체인 기술을 구현했을 리도 없기에, 2년 동안 코드 한 줄 수정 안 했다는 것은 사실상 방치했다는 의미다. 코인의 기능 업데이트나 홈페이지 문구만 수정해도 코드 수정 기록이 남는다. 코인의 '기축통화'로 쓰이는 비트코인도 14일 기준으로 사흘 전에 코드를 수정했다.
상장폐지된 가상자산들은 처음부터 '사기(스캠) 코인'이었거나, '암호화폐 먹튀'를 의미하는 '러그풀'(Rug Pull)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코인 발행업자들이 공익과 생태계 조성을 내세우며 재단을 설립한 뒤 스스로를 재단 관계자로 불렀지만, 실상은 사기꾼들의 놀이터로 변질돼 있었다.
거래소 상장 일관된 기준 없어…김치코인 96개 중 '코인원' 비율 최다
2017년 10월부터 올해 4월 말까지 5년여간 국내 5대 거래소에서 거래지원 종료된 코인은 총 315개였다. 업비트가 152개로 가장 많았고, 코인원 65개, 빗썸 63개, 고팍스 21개(유사 파생상품 토큰 제외), 코빗 14개 순이었다. 업비트는 거래량 기준으로 점유율이 90%에 달해 상장폐지된 코인도 많았다. 같은 기간 5대 거래소에 상장된 코인은 모두 1,192개로 상장폐지된 코인 비율은 26.4%에 달했다. 상장된 코인 10개 중 3개는 거래소에서 사라진 셈이다.
전체 상장폐지 코인 가운데 김치코인 비율은 96개로 30.5%를 차지했다. 업계 3위로 평가받는 코인원이 44개로 가장 많았고, 빗썸이 32개로 뒤를 이었다. 업비트는 12개, 고팍스 6개, 코빗은 2개였다. 코인원과 빗썸이 김치코인의 무덤이었던 셈이다. 코인원 관계자는 “코인시장이 한창 성장할 때 거래소 중 유일하게 초기 가상자산 프로젝트를 발굴해 상장시켰다”며 “이런 이유로 한국계 가상자산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견해는 다르다. 상장되기엔 사업·기술적으로 부족했던 김치코인들이 뒷돈을 주고 상장됐다가 결국 폐지됐다는 것이다. 일관된 상장 기준이 없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코인원 상장총괄 이사였던 전모씨와 브로커 고모씨는 지난달 구속기소됐다. 전씨는 2020년부터 2년 8개월간 고씨 등 브로커 2명에게서 특정 코인을 상장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20억 원을 받은 혐의가 있다. 코인원 상장팀장 김모씨도 이들로부터 10억4,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청탁된 코인은 29개 이상으로 강남 납치·살해사건의 계기가 된 '퓨리에버' 코인도 포함돼 있다. 빗썸 임원진 역시 상장피와 관련해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차명훈 코인원 대표는 지난달 13일 입장문을 통해 "일부 담당자의 불법행위를 인지하지 못했으며 피의자들에게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코인 전문가들은 이런 입장에 대해 '꼬리 자르기'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스캠 코인을 분석해온 '변창호 코인사관학교'(텔레그램 채널) 운영자 변창호씨는 "코인원의 상장피는 업계에서 특정 금액이 떠돌 만큼 공공연했다"며 "장기간 상장피 영업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코인 팔았지만 사업엔 무관심…상폐 이유 '프로젝트 위험' 최다
코인 발행업체의 문제도 크다. 상장폐지 사유를 보면 프로젝트 위험이 154개(48.9%·복수 응답)로 가장 많았다. 코인 발행 후 관련 사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거나 관리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처음부터 사업을 지속할 의도 없이 투자자들에게 코인만 팔고 사업을 중단했다면 러그풀(가상화폐 사기 수법)에 해당한다. 실제로 한국일보가 직접 상장폐지된 315개 코인이 홈페이지에 연결되는지 조사했더니 74개(23.5%)는 연결조차 되지 않았다.
조재우 한성대 블록체인연구소 교수는 "코인 프로젝트가 웹 기반 서비스이고 홈페이지 운영이 서비스의 기본이란 점을 고려하면, 홈페이지가 닫혔다는 건 사실상 사업을 중단했다는 의미"라며 "홈페이지조차 연결되지 않는다면 이른바 '먹튀'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트위터와 텔레그램 커뮤니티의 활성화 정도도 살펴봤더니 각각 46.0%와 52.1%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한 달 안팎으로 대화가 전혀 없었거나 발행업체의 사업 설명이나 안내·공지가 없었다면 비활성화됐다고 판단했다. 연결조차 안 되는 트위터와 텔레그램도 8.6%와 6.3%에 달했다.
두 번째로 많은 상장폐지 이유는 시장 위험(135개·42.9%)으로 나타났다. 시세조작이 의심되거나 해당 거래소에서 일정 기준 이상의 거래량이 나오지 않으면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거래량이 적으면 시세조작에 언제든 노출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빗 거래소는 2018년 12월 비교적 사업과 거래가 활발한 카이버네트워크(KNC)와 룸네트워크(LOOM)를 상장폐지시켰다. 거래량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 코인들은 업비트와 빗썸, 코인원, 고팍스 등 다른 거래소에선 모두 상장돼있다. 코인 발행업자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상장폐지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상장 유지 조건의 거래량이 나올 때까지 스스로 사고파는 행위(자전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 번째 상장폐지 이유는 투자자 보호 위험(51개·16.2%)이었다. 법규를 위반했거나 거짓 정보를 제공하고, 코인 유통량을 속였을 경우가 해당한다. 기술위험(58개·18.4%)과 익명성 높은 가상자산(25개·7.9%)도 상장폐지 이유로 이름을 올렸다.
코인 유통량 속이고, 불법행위까지…김치코인, 투자자 보호 위험 비중↑
김치코인만 추려 상장폐지 이유를 살펴봤더니 투자자 보호 위험 비중(32.3%·복수 응답)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실제로 김치코인 발행업자들의 법규 위반 의심 사례는 차고 넘친다. 지난달 28일 상장폐지된 베이직(BASIC)이 대표적이다. 업비트는 지난달 14일 베이직의 상장폐지를 공지하면서 여러 사유를 언급했다. 우선 △베이직 발행사의 디지털자산 대출업 관련 의심스러운 대출예약 확인 △BCDC 사업 러그풀 의혹 소명 불충분 △베이직 주요 임원에 대한 시장의 불신 등이다.
BCDC란 베이직 토큰을 맡기면 이자로 BCDC 토큰을 지급하는 탈중앙화금융(디파이) 프로젝트다. 베이직 측은 지난해 5월 갑작스레 "경쟁력이 많이 떨어진 BCDC 사업을 종료한다"고 공지했다. 베이직 발행업체 대표 김모씨는 그러나 '먹튀' 의혹을 부인했다. 김씨는 한국일보와 만난 자리에서 "BCDC 사업을 폐쇄한 건 내가 아닌 개발업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밖에도 여러 코인을 시세조작한 의혹도 있다. 한국일보는 앞서 주요 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된 아이비피(IBP) 토큰과 베이직 등에 대해 김씨가 시세조작한 정황이 담긴 텔레그램 캡처본을 입수했다. 해당 캡처본을 보면 김씨가 참여하고 있는 텔레그램 방에 MM업자가 "봇세팅 준비됐다. 두 가지 봇으로 작업하겠다"며 "빗썸은 크게 상관없을 것 같고, 코인원에서 작업해 가격 올리면 빗썸 계정은 매도 걸어 놓고 일반 유저들이 사게끔 유도하는 게 좋다고 본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김씨는 이에 대해 "텔레그램 캡처본은 코인 대출 관련 내용이 악의적으로 편집돼 언론에 유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코인 유통량을 속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계획보다 더 많은 코인을 유통하면 코인 가격은 하락할 수밖에 없고, 이를 모르는 투자자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위메이드는 지난해 10월 업비트에 위믹스 2억4,596만 개를 유통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했지만, 계획보다 7,245만 개를 더 유통했다.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로 구성된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 ‘닥사’(DAXA)는 지난해 11월 위믹스의 거래지원 종료를 결정했다. 닥사는 투자자 보호 및 거래지원 종목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 출범한 거래소 협의체다.
1년 8개월 만에 상폐된 김치코인, 코드는 2년 이상 방치
블록체인 개발 코드는 '깃허브'(GITHUB) 사이트를 통해 공개된다. 코인 정보업체 '코인마켓캡'(Coin Market Cap)에 코인을 등록하려면 깃허브에 소스 코드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코드 수정 여부는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되는지 판단할 수 있기에 스캠 코인 여부를 따져볼 수 있는 중요 기준이다. 한 블록체인 개발업체 대표가 제시한 기준은 2개월이다. 코인 프로젝트가 사업 구상(로드맵)대로 진행되고 있다면, 적어도 2개월에 한 번은 수정한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일보가 깃허브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상장폐지된 전체 코인은 평균적으로 1년 8개월 전에 마지막으로 소스 코드를 수정했다. 김치코인만 따져보면 2년 전 수정이 마지막이다. 자료를 검토한 조재우 교수는 "통상 소스 코드를 오래 방치할수록 사기성이 짙은 코인들이 많은데, 오히려 이를 악용해 별 필요 없는 소스 코드를 수정해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려는 발행업체도 있다"고 말했다.
'무법지대 코인 리포트' 인터랙티브 기사로 한눈에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인터랙티브 보기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51214423858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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