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찰 대상 두고 한일 양국 '줄다리기'
우리 측 "오염수 처리·방류 전과정 봐야"
일본 측 "일부 시설 미가동…본국과 상의"
후쿠시마 원전 시찰을 둘러싼 한일 협의가 일단 결렬됐다. 양국은 12, 13일 서울에서 국장급 협의를 갖고 12시간의 마라톤 협의를 벌였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한국 시찰단이 후쿠시마 원전의 방대한 시설 가운데 어느 곳을 둘러볼지에 대해 입장 차가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22일부터 3박 4일간 현지 시찰하는 데 합의한 만큼, 조만간 추가 협의에서 접점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협의에서 우리 측은 "오염수 보관부터 방류까지 전과정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내에서 "검증이 아닌 시찰에 그칠 것"이라며 "오염수 방류 면죄부를 준 격"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 측은 '일부 설비' 접근에 난색을 표했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원전 오염수의 '보관-정화-방류'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의 주요 시설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일본과 협의에서 시찰을 원하는 시설 명단을 들이밀며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후쿠시마 원전에는 오염수 보관 탱크만 1,086개가 있다. '다핵종 제거설비(ALPS)'로 방사성 물질을 거른 물이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이번 여름 태평양에 방류할 계획이다.
하지만 일본 측은 일부 시설에 대해 "본국과 논의해봐야 한다"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가동하고 있지 않은 시설"이라거나 "공사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를 댔다. 또 방류 시설은 아직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NRA)의 최종 승인을 받지 않았기에 타국 관계자들에게 공개하는 게 바람직한지 내부 논의가 필요하다며 발뺌했다고 한다. 양국은 실무협의를 다시 열어 시찰 범위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전문가 "우리 측 기준 없어 시찰해도 문제 남아"
우리 시찰단의 주요 목표는 'ALPS'에 맞춰져있다. 오염수 정화의 핵심시설이다. 아울러 비상시 오염수 방류를 중단할 '잠금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확인할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14일 "오염수 정화·배출 과정을 담은 일본 측 자료를 받긴 했지만, 실제 계획대로 돌아가는지 직접 확인해보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집요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끝내 주요 설비를 보여주지 않으면 시찰단이 '들러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는 "실제 ALPS 시설은 운전 중 필터가 낡아 고장 난 경우가 많다"면서 "일본 측이 '수리를 하고 있다'는 이유 등을 들며 시설을 끝까지 안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서 명예교수는 또 "시설을 눈으로 본다고 자연스레 문제점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면서 "결국 일본 시설과 자료를 우리 잣대로 검증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명확히 세워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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