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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생활 20년 됐지만 미등록 아동은 영원한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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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생활 20년 됐지만 미등록 아동은 영원한 이방인"

입력
2023.05.22 09:00
수정
2023.05.22 09:32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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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 때 한국行, 브로커에 속아 불법 체류
한국인 정체성, 현실은 해마다 비자 갱신
인구 절벽 감안해 국적 취득 문호 넓혀야

전국이주인권단체 회원들이 지난 3월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정부 단속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전국이주인권단체 회원들이 지난 3월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정부 단속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저는 영원한 이방인이에요.”

우즈베키스탄 국적 달리아(22ㆍ가명)가 21일 깊은 한숨을 쉬었다. 2003년 두 살 때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그는 백석 시인의 전집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을 정도로 한국 문학에 관심이 많다. 국내 아이돌 그룹 ‘아이브’의 열혈 팬이기도 하다. 외모만 다를 뿐 또래의 한국 청년들과 정체성은 비슷하다. 하지만 ‘미등록 이주 아동’ 출신인 탓에 20년째 강제출국 두려움에 떨며 살아가고 있다.

임시 비자받아도 출국 두려움 여전

달리아 부모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사기를 당했다. “비자 연장을 도와주겠다”고 접근한 브로커 말을 믿었다가 돈만 빼앗겼고, 갱신 시한을 넘겨 불법 체류 신분이 됐다. 출생 신고가 안 된 달리아는 만 19세가 되기 전까진 강제출국이 유예되는 유엔아동권리협약 덕에 고교 교육을 마칠 수 있었다. 지난해에는 법무부가 ‘국내 장기체류 아동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체류자격 부여 방안’ 기준을 낮추면서 극적으로 ‘임시비자’ 격인 기타 비자(G-1)를 발급받아 출국을 면했다. 원래 한국에서 태어나 15년 이상 머물며 중ㆍ고교 과정을 이수해야 심사를 거쳐 학업에 필요한 체류 자격을 부여했는데, 영ㆍ유아기(6세 미만)에 입국했어도 6년 넘게 체류하면서 공교육을 받은 경우 자격을 준 것이다.

안도도 잠시, 기타 비자는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유효 기간이 1년에 불과하고, 갱신 조건도 까다로웠다. 달리아는 대학에 갈 형편이 안 돼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데 기타 비자로는 신분 보장이 안 된다며 회사들이 난색을 표해 취업 문턱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있다. 그의 불안한 마음은 직접 지은 ‘아이의 세계’란 시에 투영돼 있다.

"장기체류 아동, 국적 취득 기회 줘야"

미등록 이주 아동 출신 달리아(가명)가 쓴 시. "불안한 마음을 시 속 '아이'에 이입해 썼다"고 소개했다. 달리아 제공

미등록 이주 아동 출신 달리아(가명)가 쓴 시. "불안한 마음을 시 속 '아이'에 이입해 썼다"고 소개했다. 달리아 제공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국내에 213만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다. 이 중 한국 국적 미보유자가 164만 명으로 77%를 차지한다. 이미 가시화한 인구 절벽을 고려하면, 대안으로 아동ㆍ청소년기를 한국에서 보낸 성실한 장기 체류자에게 국적 취득의 문호를 넓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사단법인 이주민센터 ‘친구’의 조영관 센터장은 “미등록 이주 아동 상당수는 배경만 빼면 한국 밀접도는 오히려 높다”며 “일각에서 우려하는 악용 가능성도 범죄 전력 확인 등의 기준을 두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권 보장에 따른 현행 체류자격 제도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도 조건부 체류를 허용하지만, 불법 체류에 대한 반대급부로 수백만 원의 범칙금을 내야 한다. 인권 활동가들은 “미등록 이주 가정은 대부분 형편이 어려워 이 정도 금액도 큰돈”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처럼 ‘속인주의(부모 국적을 따르는 혈통주의)’를 택한 국가 대부분은 장기체류 아동의 국적 취득 장벽이 높지 않다. 영국은 부모와 무관하게 18세 미만 아동이 출생 후 7년 넘게 자국에 거주했으면 국적 취득 기회를 준다. 호주는 자국에서 태어나 10년 이상 산 아이들에겐 자동으로 국적을 부여한다. 재단법인 ‘동천’의 권영실 변호사는 “F-2(거주 비자)같이 일단 운신의 폭이 넓은 비자를 제공한 뒤 법 바깥에 내몰린 이주민을 구제할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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