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사진작가 천승환씨 인터뷰
간토대학살 추모비 등 60여곳 촬영
'불령선인 프로젝트' 동행 취재
“희생된 동포들의 원한은 천 년이 가도 남을 것이다.”
일본 지바현 후나바시시 ‘마고메 영원(霊園·공동묘지)’에 있는 ‘간토대지진 희생 동포 위령비’ 뒷면에 새겨진 문구다. 일제가 학살한 조선인을 추모하기 위해 일본인이 세운 비석은 간토 지역 여러 곳에 있다. 동포 위령비는 1947년 3·1절에 재일동포들이 세운 것으로, 비문에 비통함과 분노가 생생히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간토대지진 100년을 맞아 조선인 학살 현장과 추모비를 촬영해 기록하는 ‘불령선인(不逞鮮人)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청년 사진작가 천승환(29)씨와 함께 지난 11일 이 위령비를 찾았다. 불령선인은 일본에 대항하는 ‘불온한 조선인’을 부른 말이다.
올해 3월부터 천씨는 추모비 40여 개와 학살 현장 20여 곳을 찾아다녔다. 그는 추모비를 물과 솔로 깨끗하게 청소하고 참배한 뒤 촬영한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비문의 내용을 또렷이 남기기 위해서다.
일본 시민단체 만나 간토대학살 프로젝트 결심
천씨는 건국대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수료하고 역사를 담은 사진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그는 대학생이던 2014년 독도에서 역사 사진 작업을 시작했다. 2017년 카메라를 들고 일본으로 떠났다. 대마도에서 시작해 도쿄까지 여행하면서 한국 관련 유적을 촬영했다. 이 때 도쿄에서 일본 시민단체 ‘호센카’ 관계자들을 만나 간토대학살에 대한 설명을 듣고 관심을 갖게 됐다.
수십 년 동안 전국의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 조선인 학살 목격담 1,000가지를 찾아 낸 니시자키 마사오는 천씨가 이번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결심한 결정적 계기였다. 반평생을 조선인 학살 진상 규명에 바친 그의 책에는 “조선인을 산 채로 장작불에 태웠다”는 증언을 비롯한 참상이 실려 있다.
천씨는 “이전까지는 영화 ‘박열’을 통해서 접했을 뿐 간토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을 자세히는 몰랐다”고 했다.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같은 유언비어가 돌았고, 일본 군경과 자경단은 총칼과 죽창으로 조선인 수천 명을 학살했다. 일본 정부가 유언비어 유포와 조선인 학살을 방조·조장했다는 건 천씨가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래서 천씨는 간토대학살을 한국인에게 알려야겠다, 학살 100년이 되는 2023년 이 프로젝트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조선인 보호한 양심적 일본인도 있었다
천씨가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만난 일본인들은 가해자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우리가 그때 많이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이타마현 구가야마에 있는 공양탑을 닦고 있을 때 한 할머니가 "무슨 비냐"고 물었다. "간토대학살 조선인 희생자를 위한 공양탑"이란 설명을 들은 할머니는 가족을 데려와서 "옛날에 이런 사실이 있었다"고 알려 주고 함께 참배했다.
목숨을 걸고 조선인을 보호한 일본인들의 얘기도 들었다. 동포 위령비 인근의, 작고 가난한 마을이 있었다는 마루야마 암자 터에서다. 마을 사람들은 당시 "조선인 2명을 내놓으라"는 자경단의 협박에 굴하지 않았다고 한다.
천씨는 "'100년 전 일로 무릎 꿇으라 할 수 없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도 대부분의 한국인처럼 간토대학살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한 말일 테니, 내가 더 열심히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이달 말 프로젝트를 마치고 귀국해 사진전 등을 통해 간토대학살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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