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집은 ‘사고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금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모든 집은 개인사에서 출발한다. '마당의 추억이 깃든 집'에서 평생 살아온 대가족이 노후를 대비해 같은 땅에 집을 짓기로 하면서 상가주택을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을 터. 서울 광진구 중곡동 토박이 황현주(47) 강신혁(47) 부부는 가족의 오랜 터전에 그간의 생활 방식을 이어가면서도 임대수익을 더해 든든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다가구·상가주택 'GM737(대지면적 166㎡, 연면적 330㎡)'을 지었다. 오래된 주택가, 빌라의 바다에 솟은 5층 건물에는 부부와 자녀, 조부모까지 삼대(代)가 산다.
집, 미래 시스템이 되다
부부와 이 동네와의 인연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덟 살 때 부모님과 이 동네로 이사 온 후 줄곧 한 집에서 살았던 아내 황씨는 결혼해 잠시 집을 떠났지만 두 아이를 낳고 친정으로 돌아왔다. "당시 남편이 해외 출장이 잦은 시기였는데 아이 둘을 혼자서 키우기가 너무 힘이 들더라고요. 결국 결혼한 지 몇 년 안 돼 다시 친정집으로 들어왔죠. 그렇게 2층에 살림을 꾸리고 한 집에서 삼대가 살게 됐어요."
여느 오래된 주택가처럼 이 동네도 과거엔 마당 있는 단독 주택이 대부분이었다. 황씨의 집 역시 작지만 생기 넘치는 마당이 있었다. "집 안팎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익숙한 집이었어요. 부모님은 취미로 텃밭을 가꾸셨고요." 남들은 불편한 주택살이라고 하지만 이 가족에게 마당 있는 2층 주택은 여유와 자유로움 자체였다. 출입구가 분리된 구조 덕분에 두 가구가 함께 어울리면서도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위아래 가족만 머무는 공간이었으니 아이들이 한창 뛰노는 시기에 층간소음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었다. 황씨는 "대세를 따르자면 아파트로 가야할 것 같지만 우리 가족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아파트에 대한 필요성을 못느꼈다"며 "그렇게 살다 보니 40년이 흘렀다"며 웃었다.
슬슬 은퇴를 생각할 나이가 되자 집을 짓기로 한 부부는 주택 생활의 즐거움과 임대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상가주택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비록 빌라촌 한복판이지만 옥상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상가로서 임대 수익을 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몸과 마음이 넉넉한 노년의 모습에 가까워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부부의 그림은 이주영(지오아키텍처 소장) 건축가의 손끝에서 다듬어졌다. 이 소장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다기보다 한 가족의 노후 시스템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설계를 했다"며 "그만큼 책임감을 많이 느꼈던 프로젝트"라고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물은 1, 2층 상가, 3층과 4층 일부가 다가구 임대로 구성됐다. 상부층은 주거 공간인데 4층을 조부모가, 5층 전체와 다락은 부부와 자녀 두 명이 쓴다.
매력적인 상가, 그 이상의 주택
상가주택이다 보니 상가로서 임대면적을 효과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거기서 반보 나간 건축가는 상가 본연의 역할과 함께 골목길에서 매력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 결과 2층에 'ㄴ'자 형태로 외부 발코니가 만들어졌다. 이 소장은 "개인 소유 건물이지만 동네 주민들 입장에서도 좋은 인상을 받았으면 싶었다"며 "1층과 2층을 복층으로 연결해 임대 면적을 최대한 넓게 가져가면서 2층엔 면적에 해당하지 않는 발코니를 만들어 외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상가 주택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발코니 덕분에 내부에선 법적 면적보다 큰 공간감을, 밖에선 정돈되면서도 여유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3층과 4층 일부는 다가구 임대 공간이다. "누가 입주를 해도 불편함이 없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실용적인 공간을 만들되 공용 공간에는 힘을 줬다"는 이 소장의 설명대로 구석구석 정성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입구와 계단에 벽돌, 인조 나무 소재 같은 외부 마감재를 그대로 들여와 통일성을 부여했죠. 기능적으론 큰 차이는 없지만 장기적으로 임대 시장에서 차별화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최상층에서 누리는 주택생활의 즐거움도 놓칠 수 없는 숙제였다. 이 소장은 "상가와 주거 임대 공간에 비해 면적이 넓지 않은 공간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배치할지가 관건이었다"며 "붙박이 가구를 넣어 면적을 최소화하는 대신 거실부터 주방까지를 널찍하게 배치해 가족들이 수시로 모일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법적 면적에 포함되지 않는 다락도 적극 활용했다. 일곱 평이 안 되는 작은 공간이지만 조용히 머물며 개인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덩달아 거실 층고가 높아져 집 전체적으로 개방감이 커졌다. 황씨는 "아직 빈 공간이지만 남편이 집을 짓고 가장 만족하는 곳이 바로 다락"이라며 "자기만의 아지트를 어떻게 활용할지 구상만 하는데도 행복하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소소한 추억이 담긴 마당의 자리는 옥상이 대신한다. 옥상에 취미로 채소를 기르던 조부모님을 위해 작은 텃밭을 만들고, 주변 자연을 정원 삼아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즐긴다. "선택과 집중의 문제인 것 같아요. 상가 주택이기에 수익성을 무시할 순 없지만 충분히 여유를 누릴 수 있더라고요."
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집
집 짓기 전, 부부는 두 자녀를 키우며 부모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어린 자녀들이 십 대, 이십 대로 성장하는 동안 황씨 부부는 50대를, 부모님은 8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평생 한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희로애락을 공유한 가족의 마음에는 자연스레 변치 않는 주거 공간에 대한 열망이 자리 잡았다고 한다. 아내 황씨는 "집을 팔고 이사할 수도 있었지만 도저히 골목과 터전을 포기할 수 없었다"며 "그런 마음이 모아진 덕분인지 계획부터 완공까지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흘러갔다"고 했다.
이심전심으로 새 집을 올리고, 든든한 노후 시스템까지 구축한 건축주 가족. 이들에게 집이란 오래 빛을 발할 추억이자 대대손손 물려주고픈 유산으로 자리하는 듯했다. "지금까지 그랬듯 부모님과 우리 부부가 서로 의지하며 노년의 묘미를 즐길 수 있고, 자녀들도 본인들이 원하는 만큼 변하지 않는 풍경을 누릴 수 있지요. 세상에 비싸고 화려한 집은 많지만 우리 가족에게 이보다 좋은 집은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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