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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빈 방미와 중·러에 대한 접근법

입력
2023.05.22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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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영
안호영전 주미대사·경남대 석좌교수

편집자주

국제시스템이 새로운 긴장에 직면한 이 시기 우리 외교의 올바른 좌표 설정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40년간 현장을 지킨 외교전략가의 '실사구시' 시각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대단히 성공한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
편중외교보다 전략적 모호성이 더 위험
자유·민주가치 지키며 현실이익 챙겨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을 마친 후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무대에 올라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돈 매클레인의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고 있다. AP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을 마친 후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무대에 올라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돈 매클레인의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고 있다. AP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지난달 24~29일 국빈 방미를 마쳤다. 오랜 외교관 생활을 통하여 수많은 정상회담을 준비, 참가, 관찰해 온 필자가 보기에 한미 동맹 70주년에 어울리는 대단히 성공적인 방미였다.

먼저 지도자 간의 신뢰가 돋보인 방문이었다. 백악관 만찬에서 윤 대통령이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고 나서 한미 정상이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은 말보다 사진이 더 큰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을 실감 나게 하였다. 40여 분의 윤 대통령 연설에 대하여 미국 의원들이 20여 차례 기립 박수로, 그리고 이어서 자신들의 SNS를 통하여 민주, 공화 가릴 것 없이 호평 일색으로 호응한 것도 주미대사로서 4년여에 걸쳐 수많은 미 의회 지도자들을 만나 본 필자로서 인상 깊게 보았다.

신뢰와 함께 소중한 실질적 성과도 거둔 방미였다. '워싱턴 선언'은 북한의 핵 도발을 억제하고, 궁극적으로 북한 비핵화를 이루는 효과적인 기제로 작동할 것이다. 윤 대통령의 미국 과학자·기업가 들과의 만남, 고다드 우주센터 방문, 젊은 과학자 교환 프로그램, 양국 국가안보실에 설치하기로 한 과·기 협력 채널 등은 우리나라가 경제의 새로운 활력을 창출하는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안보 증진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실천이다.

그런데 방미 성과와 관련, 자주 듣게 되는 지적이 있다. 미국에 편중된 외교는 결국 중국, 러시아와의 경제·안보 관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므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 문제를 충분히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는데, 두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 '전략적 모호성'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기본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 더욱 심각해지는데 이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을 회피하고, 단기적인 이익에 따라 대응해 나간다는 입장은 지난 수년간 경험한 것처럼 미국의 신뢰를 잃고, 동시에 중국의 불신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사드 배치에 중국이 가혹한 보복으로 대응한 이유의 하나도 우리나라의 모호성에 기인한 중국의 불신이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말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하여 자유민주주의, 인권, 법의 지배 등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 유지 위에서 우리나라의 외교·안보·경제 전략을 추진해 나갈 것임을 밝힌 것은 시의적절했다.

둘째, '인도·태평양 전략'에서도 분명히 밝혔듯이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의 유지, 그리고 호혜, 상호 존중의 기초 위에서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그리고 지경학적 현실을 감안할 때 이들 국가와의 협력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의 유지와 현실적인 경제적, 지정학적 이익을 조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과제가 아니다. 탈냉전 30여 년간 이념을 떠난 교류가 활성화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탈동조화'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연설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결연한 의지를 밝힌 독일 숄츠 총리는 그해 11월 대규모 경제인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미국의 옐런 재무장관은 최근 연설에서 안보가 경제에 우선하므로 중국과 타협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나머지 분야에서는 중국과 건전한 관계를 추구할 것이고, 디커플링은 재앙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나라도 의연하게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면서 현실적인 경제적, 지정학적 이익을 조화시켜 나가야 한다.

안호영 전 주미대사·경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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