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 2시간 근로시간 단축, "육아휴직만큼이나 절실"
지난해 사용자 2만 명 안 돼
편집자주
월급쟁이의 삶은 그저 '존버'만이 답일까요? 애환을 털어놓을 곳도,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막막함을 <한국일보>가 함께 위로해 드립니다. '그래도 출근'은 어쩌면 나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건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담습니다.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제도를 써서 하루 한 시간 덜 일한다고 했을 때 월급이 50만 원 정도만 깎이면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200만 원이나 깎일 줄이야."
서울의 한 기업에서 근무하며 자녀 셋을 키우는 30대 A씨는 최근 정부가 앞다퉈 내놓는 저출산 관련 대책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이미 있는 제도도 쓰기 힘든데 새로운 제도를 발굴하느라 예산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
맞벌이로 일하는 A씨는 양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 육아를 하다 2020년 이사와 동시에 아이를 돌볼 사람을 구하지 못해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제도 사용을 고민한 적이 있었다.
이 제도에 따르면,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가 있는 근로자는 자녀 양육을 위해 1년 동안(육아휴직 미사용 시 최대 2년) 일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단축 후 주당 15~35시간 일하면 된다. 줄인 시간은 원칙적으로 무급으로 하되 근로시간 단축에 비례해 삭감할 수 있는 임금은 통상임금에 한정하고 있다.
A씨가 회사에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제도 사용을 문의하자 회사 측은 "제도 사용을 문의한 것이 처음"이라며 내부 검토에 들어갔다. 계산기를 두드려 본 A씨는 "하루 한 시간만 단축한다고 했을 때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기본급의 8분의 1이 깎이더라"며 "그럼 한 달에 약 50만 원인데 사람 한 명을 따로 쓰는 것보다 내가 근로시간을 한 시간 줄이고 50만 원을 덜 받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A씨는 회사 측의 답변을 듣고 깨끗이 포기했다. 포괄임금제를 시행하는 회사에 다니는 A씨의 월급은 기본급과 법정수당으로 이뤄져 있다. 일하는 시간을 1시간 단축할 경우 회사에서는 기본급을 8분의 1 줄이는 것 외에도 전체 법정수당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 회사는 A씨가 월 48시간 이상 초과 근무를 한다고 산정하고 연간 평균 개념으로 법정수당을 주므로 하루에 여덟 시간씩 20일을 다 일한 만근자에게만 이를 지급하며 근로단축제도를 써서 1시간 적은 일곱 시간만 일할 경우엔 법정수당 전체를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근로시간 한 시간을 단축할 때 A씨의 월급은 약 200만 원 가까이 깎이게 되는 셈. A씨는 "월급을 40% 넘게 덜 받게 되는데 누가 제도를 사용하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사용자 1만9,466명
지난해 합계출산율 0.78로 국가 소멸 위기까지 우려하며 각종 저출산 관련 정책이 관심을 끌고 있는데 특히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제도는 워킹맘, 워킹대디에게 '육아휴직만큼이나 간절한' 대책으로 꼽힌다.
워킹맘 B(36)씨의 남편 C씨는 지난달부터 33개월 된 딸을 돌보기 위해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제도를 이용 중이다. B씨는 "아이 병원, 어린이집 일정 때문에 한두 시간을 빼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갑자기 반차를 쓰다 보니 연차가 모자랐다"며 "이제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남편이 퇴근하며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지난해 육아휴직에서 복직 후 일과 가정의 양립 때문에 어려움을 겪다 '워킹맘이 죄인인가'라는 토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던 '워킹맘 개발자'도 생전 회사 측에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제도를 쓸 수 있는지 물었다가 사실상 묵살당했다는 것이 유족의 주장이다.
이렇게 절실한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제도의 사용률은 극히 낮다. 고용노동부의 '2021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 제도를 활용한 실적이 있는 사업체 비율은 전체의 7.4%에 불과했다. 1년이 지난 지난해 사용자 수(고용보험 전산망 기준)는 1만9,466명으로 2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지난해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나선 이는 13만1,087명이었다.
근로자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했을 때 사업주가 거부할 수 있는 경우는 ▲해당 사업에서의 계속 근로 기간이 6개월 미만일 경우 ▲대체 인력 채용이 어려울 경우 ▲업무 성격상 근로시간의 분할 수행이 곤란할 경우 ▲정상적 사업 운영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 등으로 한정돼 있다. 이 밖의 이유로 사업주가 이를 거부하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부당하게 사용을 거부하면 벌금 500만 원을 물리는 육아휴직에 비해 처벌 강도가 약하다고 볼 수 있다.
장종수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노동청 통계에 따르면 2019년 1분기~지난해 2분기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제도를 예외 인정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이유로 쓰지 못하게 하거나 근로자가 제도 사용과 관련해 불리한 처우를 받았다며 73건이 신고 접수됐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이 중 65건이 '혐의없음', '취하' 등으로 끝난 '기타종결'이었다. 실제로 과태료 부과 사건은 두 건, 기소 의견까지 받은 것은 한 건, '시정완료'는 세 건이라는 게 장 노무사의 설명이다.
'육아엄빠 연차보장법'도 2년째 표류 중
사용률이 낮은 또 다른 주요 이유는 A씨 사례처럼 근로자의 생각보다 급여 손실 액수가 훨씬 크고 직장에서 당사자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공공기관인 C씨의 회사에서는 급여 손실 없이 유급으로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제도를 쓸 수 있다. 일반 민간 기업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가 이 제도를 사용한 첫 번째 직원이다. 아내 B씨는 "회사 직원들은 눈치가 보여 쓰지 못하고 회사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다"라며 "남편은 아예 승진을 포기할 수 있다고 과감하게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 노무사는 "이 제도는 2008년 도입됐지만 2019년까지는 육아휴직과 합쳐서 1년 사용이 가능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았다"며 "단축근로는 오히려 일을 계속해야 하다 보니 근로자가 회사 측 눈치를 보는 경우가 더 많아 육아휴직보다 더 망설인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관심도 부족하다. 2021년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택한 사람도 육아휴직과 마찬가지로 하루 여덟 시간 출근한 것으로 간주해 연차유급휴가를 온전히 쓸 수 있게 해 달라는 '육아엄빠 연차휴가보장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하고 여전히 상임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용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이 여야 사이에서 정쟁이 될 만한 사안은 아닌데도 우선순위에서 밀려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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