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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위조 해외입양" 진실화해위 조사중인데…법원은 "당시 법으론 문제없다"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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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위조 해외입양" 진실화해위 조사중인데…법원은 "당시 법으론 문제없다" 판단

입력
2023.05.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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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트, 입양인에 1억 원 배상하라" 판결
이름 바꿔 호적 만들어 입양 보냈지만
법원 "당시 법에 따르면 불법 아냐"
진실화해위, 진상조사 결과 내년 발표

아담 크랩서(45)가 2021년 10월 24일 한국일보와 화상인터뷰를 하고 있다.

아담 크랩서(45)가 2021년 10월 24일 한국일보와 화상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부장 박준민)가 16일 홀트아동복지회(복지회)가 미국으로 입양됐다 추방된 신성혁(48·미국명 아담 크랩서)씨에게 1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한 가운데 해외입양인과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선 재판부가 과거 해외입양 문제의 핵심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해선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판부가 신씨의 시민권 획득과 관련된 입양기관의 책임만 일부 인정했기 때문이다.

해외입양인들이 제기하고 있는 과거 해외입양의 문제점은 △호적 창설(일명 '고아 호적') 등 신분 위조 △입양 과정에서 이뤄진 인권 침해 등이다. 해외입양인들로 구성된 단체인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 그룹(DKRG)'이 지난해 진실화해위원회(진실화해위)에 냈던 조사 신청서에도 이런 내용이 담겼다. 진실화해위는 신청인들이 친생부모가 있었음에도, 고아 또는 제3자의 신원으로 조작돼 입양됐던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지난해 12월 8일 진상조사 개시결정을 내렸다.

김수정 변호사가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동관 앞에서 신송혁(48·아담크랩서)씨가 홀트아동복지회와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선고 결과와 관련, 변호인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 재판을 방청했던 노르웨이 입양 한인 잉가토나 율앤드 신이 변호인단 입장 발표를 듣고 있다. 뉴스1

김수정 변호사가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동관 앞에서 신송혁(48·아담크랩서)씨가 홀트아동복지회와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선고 결과와 관련, 변호인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 재판을 방청했던 노르웨이 입양 한인 잉가토나 율앤드 신이 변호인단 입장 발표를 듣고 있다. 뉴스1


"기아로 발견됐다" 허위로 호적 창설했지만, "당시 호적법에서 허용"

신씨의 어머니는 1978년 한 영아원에 신씨를 위탁했지만, 복지회는 당시 마포구청에 "기아로 발견됐다"면서 본래 이름인 '신성혁'이 아닌 '신송혁'으로 출생신고를 한 뒤 호적을 만들었다. 신씨 측은 "복지회가 허위로 기아 발견 보고를 하며 이름을 임의로 신송혁으로 바꿨고, 허위로 호적을 창설해 친부모 정보 등 정체성을 알 권리가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호적법에 따르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호적법상 "입양기관이 외국인에게 입양을 보내기 위해 호적이 없는 아이의 호적을 만드는 것이 허용됐다"는 이유다. 또 "이름을 다르게 기재한 것에 대해서도 과실은 인정되지만 입양기관에 신씨 위탁 당시 아동카드가 보존돼 있던 만큼 성명을 임의로 바꿨다고 볼 수는 없다"고 봤다.

한 해외입양인의 입양 서류 중 입양인의 본관을 '한양 신씨'로 창설한다는 내용. 해외입양인연대 제공

한 해외입양인의 입양 서류 중 입양인의 본관을 '한양 신씨'로 창설한다는 내용. 해외입양인연대 제공

신씨 측은 그가 학대를 당하고 파양됐을 뿐 아니라 시민권을 얻지 못해 추방되기까지 후견인인 복지회가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장했다. 신씨는 1978년 3월 8일 미국으로 보내졌는데, 복지회는 입양 후 별도 시민권 취득 재판을 받아야 하는 'IR4 비자'로 그를 보냈다. 양부모는 1981년 3월 9일 미시간주 웨인 카운티 공증법원으로부터 입양명령을 받았지만, 시민권 취득 절차는 거치지 않았다. 양부모는 1986년 신씨를 파양했고, 신씨는 위탁보호 가정과 보호시설 등을 전전해야 했다. 두 번째 양부모가 신씨를 1989년 입양했으나, 이 양부모 역시 신씨를 학대했다. 시민권 없이 홀로 성장한 신씨는 2016년 4월 한국으로 추방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입양기관이 아동을 보호해야 하는 '후견인 의무'가 "해당 국가에서 법적으로 입양 절차가 완료됐을 때" 소멸된다고 봤다. 입양특례법은 1995년 입양기관이 국적취득까지 사후관리해야 한다고 개정됐지만, 신씨의 입양절차는 1981년 미국 법원의 입양명령을 받으며 완료됐기 때문에 소급적용해선 안 된다고 본 것이다. 입양기관이 양부모가 아이를 양육하기 적합한 사람인지 등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당시 입양 서류를 보면, 미국 미시간주 사회사업부가 세 차례에 걸쳐 양부모에 대한 재산 등 가정조사를 이행한 서류가 남아 있다"며 입양기관이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했다고 봤다.

재판부가 신씨에게 1억 원을 보상하라고 한 근거는 "입양기관은 아동의 국적 취득 여부를 확인하고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당시 입양특례법 9조 4항이다. 복지회가 1977년 1월 31일 부터 1990년 12월 31일까지 법무부에 입양에 따른 국적 상실자를 보고한 내역은 없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복지회가 양부모에게 시민권 획득 절차를 적시에 이행하도록 주지시키고 국적 취득 여부를 적극적으로 확인했더라면 원고가 성인이 될 때까지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해 강제 추방되는 결과가 초래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신씨가 입은 손해는 강제추방일인 2016년 11월 17일부터 시작한다고 봤다. 파양, 학대 등에 대해선 손해라고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신씨 측은 이러한 법과 제도를 만들고 후견인 의무를 관리감독하지 않은 정부를 대상으로도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복지회의 보호의무 위반 사실을 면밀히 조사하고 별도 행정처분을 하지 않은 것은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 하더라도 고의 또는 과실로 감독 의무를 위반했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복지회가 출산비 명목 등으로 받은 수수료로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는 데 대해서도 "신씨에게 손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김수정 변호사가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동관 앞에서 신송혁(48·아담 크랩서) 씨가 홀트아동복지회와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선고 결과와 관련, 변호인단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김수정 변호사가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동관 앞에서 신송혁(48·아담 크랩서) 씨가 홀트아동복지회와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선고 결과와 관련, 변호인단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민변 "깊은 유감"…항소 여부 "신씨 의사에 따라 달렸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18일 성명서를 내고 유감을 표명했다. 민변은 "부모가 있더라도 부모의 양육 의사가 없는 것만으로도 고아호적을 만들 수 있다고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또 후견인 의무와 관련해서도 "(입양특례법 개정 전) 보건사회부가 입양아동의 입양 수령국 국적취득 시까지 입양 알선기관의 사후관리의무가 존속한다는 내용의 입양사업지침을 시달했던 기록이 있다"고도 반박했다.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부분 역시 "법원의 판결대로라면 국가가 제도만 설계해두고 국민을 보호할 책임을 방기하였을 때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는 결론과 다름없다"고도 지적했다.

다만 항소 여부는 재판 당사자인 신씨에게 달렸다. 신씨는 2021년 2월 언어조차 낯선 한국 생활을 견디다 못해 멕시코로 출국했다. 신씨는 그해 10월 한국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에 와서 친어머니도 만났건만 모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 "한국에서도 나는 어떤 기회도 잡을 수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사실상 무학력으로 이렇다 할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던 탓에 정부가 주는 생계급여 50만 원으로 생활해야 했다고도 털어놨다. 신씨 측 변호를 맡았던 황준협 변호사는 "신씨에게 재판 결과를 전달했고, 회신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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