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식 새 인물 집단영입·재창당 필요
올여름, 반성과 성찰 뜨겁게 땀 흘려야
연말에 총선용 변신해봤자 ‘양치기 소년’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추락이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들 만큼 가파르다. 내년 총선까지 11개월.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에 현역의원 실명이 언제 추가 공개될지 가시방석인 데다, 김남국 의원 가상화폐건은 이제 출발점에 불과하다. 벼랑 끝에 선 70년 전통의 민주당이 온갖 악재를 뚫고 살아날 수 있을까.
이럴수록 뿌리를 찾고 초심으로 돌아가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활로가 생긴다. 이념정당의 모습 대신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내세운 ‘중산층과 서민의 당’으로서, 중도층을 아우를 대중정당으로 재탄생할 필요가 있다. 차기 총선도 지난 대선과 다름없는 비호감 출혈경쟁에 중도 표심이 대세를 가를 것이다. DJ는 새로운 인물을 통해 정치의 판을 바꾸며 어려운 국면을 돌파했다. 1987년 대선에서 패배하자 제도권 밖 민주화운동 인사 90여 명을 집단영입해 총선을 치렀다. 박영숙, 임채정, 이해찬 등 ‘평민연 그룹’이다. 노동, 빈민, 문인, 종교인 등을 포괄하는 집단이었다. 1991년엔 또 다른 재야인사 그룹을 대거 투입해 신민주연합당으로 변신한다. 당시 평민당은 호남당 이미지를 벗어나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해야 할 목적이 분명했다. 반독재투쟁과 여성권익 향상을 이끈 이우정 교수 그룹이 등장했다.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는 민주당이 당의 색깔과 면면을 재창당 수준으로 바꾸지 않는 한 추락의 가속을 끊어내기 힘들다. 2000년대 전후 DJ의 젊은 피 수혈로 정치에 입문한 86세대는 노회한 기득권이 됐다. 4선 이상, 16년간 기회를 누린 국회의원들은 불출마 선언을 해야 한다. 물론 세대론의 함정에 빠져서도 곤란할 것이다. 초선이든 다선이든 관계없이 국민에게 정치혐오를 일으킨 의원부터 배제해야 맞다. ‘내로남불’ 프레임을 극복할 상징적 인물군을 발굴하는 게 급선무다. 햇볕정책 이후 북한 핵 위협이 실질화한 신냉전시대, 민주개혁진영의 외교안보기조는 공백 상태다. 대안적 외교구상을 채울 전문가 그룹을 구축해야 할 어려운 숙제도 있다.
이 모든 작업을 누가 주도할지는 민주당원들이 표를 몰아준 국민의 공감 속에 판단할 문제다. 그러나 김남국 사태를 한 발 앞서 대응하지 못한 현재의 민주당은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다. 애초 당 자체 진상조사가 끝나면 그 결과를 토대로 국회윤리특위 제소 등 후속조치를 취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검찰이 코인거래소를 압수수색하는 등 강제수사가 시작되면서 당내 조사는 실효성이 사라졌다. 이런 무기력한 풍경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다. “진보는 돈 벌면 안 되냐”는 식의 강성지지층에 둘러싸여 한 치 앞도 나가지 못하는 식물정당이 된 탓이다.
김남국 사태의 치명타는 특히 당내 ‘청년정치’가 실패했다는 점이다. 위선으로 얼룩진 ‘조국 사태’의 악몽을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김 의원에게 가장 먼저 “의원직 사퇴”를 입에 올린 건 전국대학위원회 등 2030세대 당원들이었다. 역설적으로 실낱같은 희망은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강성지지층에 주눅 들지 않는 이들이 민주당의 미래가 되길 기대한다.
결정적으로 변화를 추진할 골든타임을 놓쳐선 곤란하다.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되고 10월 국정감사철이면 ‘야당의 시간’이다. 8월 말까지는 성찰과 반성의 땀으로 뒤범벅돼 완전히 달라진 야당이어야 윤 정부 비판이 힘을 갖는다. 연말에 가서 총선용 ‘양치기 소년’ 시늉을 내봤자 국민이 마음을 줄 턱이 없다. 이 참에 소멸의 길로 갈지, 아니면 DJ의 역동성과 노무현의 진정성을 되새겨 부활할지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민주당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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