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토지수용과 정당보상의 문제

입력
2023.05.22 04:40
25면
0 0
소제인
소제인변호사

편집자주

변호사 3만 명 시대라지만 수임료 때문에 억울한 시민의 ‘나홀로 소송’이 전체 민사사건의 70%다. 11년 로펌 경험을 쉽게 풀어내 일반 시민이 편하게 법원 문턱을 넘는 방법과 약자를 향한 법의 따뜻한 측면을 소개한다.

5만4,000가구가 들어서는 남양주 왕숙지구 조감도. 한국토지주택공사 제공

5만4,000가구가 들어서는 남양주 왕숙지구 조감도. 한국토지주택공사 제공

며칠 전 의뢰인이 찾아왔다. 3기 신도시 개발이 추진 중인 경기 남양주 왕숙 지역에서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데, 최근 사업시행자와 보상협의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항공사진으로 토지를 보여주었는데, 넓은 밭과 일렬로 늘어선 비닐하우스, 초록색 지붕의 주택과 개집, 장독대가 보였다. 밭 뒤 언덕에 있는 부모님 묘소와 그 앞에 가지런히 심어진 묘목들까지 의뢰인의 수십 년간의 삶의 터전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1954년 선대가 토지를 매수하여 지금까지 살아왔던 토지의 내력을 한참 설명해주시다가, 지금 보상 현장에는 토지보상 전문 로펌 소속 변호사와 감정평가사가 매일 출근하며 의뢰인을 모집하고 있다는 생생한 현장소식까지 들려주셨다.

조금 슬프고 아련한 기분을 느끼며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물어본 첫 번째 질문은 "주민 추천 감정평가사가 선정되어 있는지?"였다. 공익상 필요에 의해 토지가 수용되는 것은 이미 결론이 났다고 보였고,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것이 현재 집중해야 할 문제였다.

토지를 수용당하는 소유자가 보상금액을 다툴 수 있는 절차는 크게 4가지로 마련되어 있다. ①사업시행자와 협의, ②수용재결, ③이의재결, ④보상금 증액 소송이다.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절차이며, 어느 단계에서 분쟁을 종결할지는 토지소유자 뜻에 달려 있다. 협의보상금액에 만족하여 협의로 종결짓는다면 그 뒤의 법적 분쟁은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위 절차 진행을 위해 토지의 객관적 가치를 평가하는 '감정평가'를 하게 되고, 보상금 증액 소송까지 간다면 총 4번의 감정평가를 하게 된다. '주민 추천 감정평가사'는 첫 번째 단추인 '협의매수를 위한 감정평가'에서 주민의 뜻을 반영해 감정평가를 해줄 전문가이다.

즉, 사업시행자는 토지보상액 산정을 위해 3인의 감정평가사를 선정해 평가를 의뢰해야 하고, 그중 1인을 주민이 추천할 수 있다. 보상액은 3인이 평가한 금액의 산술평균으로 한다. 다만 주민 추천을 위해서는 토지 면적의 2분의 1 이상 소유자와 소유자 총수의 과반수 동의가 필요하므로 대책위원회가 진행을 하고 있을 경우 협조해주면 좋을 것이다.

이후에 일어나는 토지보상금 분쟁은 결국 감정평가를 둘러싼 분쟁이라고 볼 수 있다. 굉장히 복잡하고 미묘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데, 지역마다, 사업시행자와 인허가권자의 내부사정에 따라, 감정평가사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감정평가 금액이 움직일 수 있다. 법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기도 어려운 영역이라고 생각된다.

즉,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채 이해관계인들이 스스로 또는 반강제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이해관계를 조정하도록 하고, 그것을 감정평가사가 가진 '재량'에 투영시켜 그 지역의 보상금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면, 사업시행자는 사업비를 줄이기 위해 무조건 보상금이 낮게 책정되길 바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보상금 관련 분쟁이 조기에 종결될 수 있도록 보상가의 증액을 바랄 수 있다. 인허가권자 입장에서도 보상민원 해결을 위해 증액을 바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지역에서는 '국민 세금으로 시행되는 공익사업의 개발이익이 토지소유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귀속되면 안 된다'는 입장을 가진 누군가가 개발계획이 공지된 이후의 지가상승분을 엄밀하게 따져서 보상가에서 제외하도록 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법적 분쟁이 줄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토지가 수용되는 소유자 입장에서는, 본인은 삶의 터전을 상실한 반면 바로 길 건너 몇 미터 떨어진 토지는 개발계획에 포함이 안 되고 이용가치 높은 토지가 되었는데(개발이익 향유), 사업시행자가 뒤늦게 협의보상을 하면서 개발이익을 엄격히 공제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고, 이러한 소유자의 입장을 감정평가사가 최대한 반영할 수도 있다.

하나의 공익사업의 한 단계에서도 수많은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가치관들이 모여 어떠한 방향으로 가게 된다.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소제인 법무법인 (유)세한 파트너 변호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