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5 사비타 할라파나바르
인도계 아일랜드의 만 32세 여성 치과의사 사비타 할라파나바르(Savita Halappanavar)가 임신 17주 차였던 2012년 패혈증 쇼크로 숨졌다. 심한 복부 허리통증으로 병원에 갔다가 양막 파열로 유산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법 때문에 임신 중단 시술을 받지 못해 빚어진 비극이었다.
1983년 국민투표로 개정된 당시 아일랜드 헌법은 태아에게 산모와 동등한 생명권을 부여했다. 강간- 근친상간으로 임신했더라도, 산모가 위태로운 경우에도 낙태는 불법이었고, 산모와 의료진은 최대 14년 징역형을 받을 수 있었다. 그의 경우 분만 촉진도 인위적 낙태로 판단될 수 있었다. 의료진은 태아 심장을 모니터링하면서 자연유산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입원 일주일 만에 할라파나바르가 숨졌고, 보수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의 전근대성은 외신 등을 통해 국제적 비난의 표적이 됐다. 그런 일련의 비극이 2018년 5월 25일 아일랜드 수정헌법 8조(낙태 금지) 폐지 국민투표로 이어졌다.
아일랜드는 1861년 형법 이래 낙태가 불법이었다. 낙태 여성은 물론이고 임신 중단을 돕는 행위도 최대 종신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였다. 그 법은 아일랜드가 독립한 뒤로도 존속돼 1983년 수정헌법 8조 제정을 위한 국민투표 때는 유권자의 66.9%(유효표 기준)가 찬성했다.
1,000여 년 전 '산티아고 순례'의 전통처럼, 아니 거꾸로 낡은 세상의 일부를 허물기 위해 수많은 해외 유학생과 취업자 등이 2018년 헌법개정 국민투표를 위해 귀국길에 올랐다. 그들은 SNS 등을 통해 서로 독려하며 교통편과 숙소 등을 공유했고 일부 대학 학생회는 여행 경비 일부를 지원했다. 그렇게 유권자 66.4%가 8조 폐지에 찬성, 157년 만에 제한적이나마 여성 생식 결정권을 인정했다. 할라파나바르 등 수많은 이들의 희생에 대한 정의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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