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표 예산과 맞물린 부채협상
시민도 지출 항목별 정파 간 이견
위기넘겨도 관련 정쟁 계속될 듯
연방정부의 부채한도를 늘리는 문제로 미국 정가가 시끄럽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정부가 써야 하는 돈을 국민들로부터 거둔 세금으로 다 충당할 수 없으면 채권을 발행해서 돈을 빌려야 한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가 돈을 빌릴 수 있는 상한선을 법률로 정해 놓았는데 몇달 전 이미 이 한도를 다 채웠기 때문에 새롭게 부채한도를 늘리는 법을 통과시키는 협상이 진행 중이다.
첫 단추는 공화당이 끼웠다. 지난 4월 말 하원 공화당은 부채한도 인상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를 위한 여러 조건도 법안에 포함시켰다. 정부지출을 2022년 수준으로 동결하고,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정책을 대폭 축소하는 것이다. IRA법의 에너지와 환경 관련 세금공제를 없애고,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으려면 일정 수준의 근로조건을 충족하게끔 하며 학자금대출 탕감과 국세청 예산 증액을 백지화하는 내용들이 담겼다.
현재 법안이 상원에 계류 중인데 당연히 민주당은 반발한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공화당의 요구대로 정부지출을 삭감해 보았더니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효과가 있어 세금도 덩달아 적게 걷히면서 부채가 크게 감소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또 정부의 역할을 축소시키려는 시도 자체에 대한 심리적인 거부감도 매우 크다.
그런데 연방정부의 지출과 부채에 관련된 양당의 입장은 다분히 미국인들의 평소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우선 미국인들은 정부가 예산을 너무 많이 쓴다고 생각한다. 지난 3월 AP통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 국민의 60% 정도인데, 현 상태에 만족하는 사람들(22%)의 3배 가까이다. 또 국민의 56%는 자신이 정부로부터 받는 혜택에 비해 세금을 더 많이 낸다고 생각한다(4월 퓨리서치 여론조사). 그러니 일반적으로 정부의 부채한도를 늘리는 문제도 54%가 반대한다(4월 CBS 여론조사).
그런데 구체적인 정책으로 가면 여론이 180도 달라진다. 정부 예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약 20%) 국민연금은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 할 것 없이 60~70%가 지출을 오히려 더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CBS 여론조사). 노인의료보험(메디케어)의 경우도 59%가 정부지출의 증가를 요구하며, 국방예산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국인들은 26% 남짓이다. 이 세 부분의 예산만 합쳐도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데 정부가 돈을 많이 쓰고 있는 분야에서 '절약'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셈이다. 물론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과반인 분야도 있다. 우주탐사와 해외원조 정책이다(AP통신 여론조사). 하지만 여기에 쓰는 정부 예산은 고작 1% 정도이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큰 틀에서 정부지출의 규모는 공화당이 미국인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고 개별 정책의 정부지출은 민주당의 스탠스가 일반 국민들과 유사하다. 그러니 매번 정부의 재정적자를 줄이자는 구호만 공화당 중심으로 남발하고, 실제 의회 각 상임위원회에서는 민주당의 방해와 공화당의 방조 때문에 지출 삭감에 실패하는 일이 반복된다.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의 의견이 정반대인 정책분야도 있다. 국경관리, 국방, 경찰 및 질서유지 등은 공화당에서 지출 확대를 주장하고 민주당은 현상유지 또는 삭감을 주장한다. 반대로 환경보호, 저소득층 복지 등의 정책은 공화당의 삭감 요구를 민주당이 반대한다. 따라서 정부지출이 현상유지라는 양당 간 '타협'으로 귀결되는 일이 흔하다.
6월 1일이 데드라인이니 조만간 정부의 부채상한을 올리는 법안이 어떤 형태로든 통과는 될 것이다. 5월 초 ABC 뉴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부채상한의 인상 없이 연방정부가 파산을 할 경우 그 비난을 바이든 대통령(36%)과 공화당 의회(39%)가 나누어 받을 듯하니 협상 실패 가능성은 더욱 낮다. 하지만 정부예산과 지출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각 정당의 주장만 반복해서 외치는 식의 정쟁이 끊이지 않을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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