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아 오언스 지음, '가재가 노래하는 곳'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오랜 시간 '외로움'이란 그 감정이 낯설었다. 특별히 외로움을 느껴보지 않았고 잘 생각해 보면 '외로움'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저 인간은 날 때부터 철저하게 혼자라는 생각만 어렴풋이 했다. 외롭다는 느낌이 너무 뿌옇게 느껴졌을 때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카야'를 만났다.
카야는 폭력적인 아빠로 인해 엄마와 언니, 오빠를 잃고 습지 판잣집에 홀로 남은 아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마시 걸(marsh girl)이라고 불렀고 어떤 이는 '반인, 반 늑대'라고, 어둠 속에서 안광을 발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늪지 쓰레기로 불리던 어느 날 한때 연인이었던 체이스의 살인 혐의로 구속된다. 과연 체이스를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책을 펼칠 때마다 고요한 습지에 수천 마리 새가 날아오르는 풍경이 떠올랐다. 엄마의 편지가 도착했을 때 기쁨과 불안함을 동시에 느꼈다. 읽고 쓰는 법을 알려준 테이트와 서로에 대한 첫 마음을 확인했을 때는 두근거렸고, 테이트가 돌아오지 않을 때는 불같이 화가 나기도 했다. 습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카야를 보며 답답함과 무기력감을 느꼈으며 법정에서의 시간은 두려움과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이 이야기는 성장과 생존 이야기이자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고, 살인 미스터리이자 법정 드라마이다. 본능과 장소, 고립, 연결을 잘 짜인 그물처럼 촘촘하게 구성해 독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낚아 버린다. 책을 다 읽고 남은 하나의 단어는 '외로움'이었다. 카야의 이야기에 잊었던 감정이 물살처럼 출렁거렸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동안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철저하게 외면하고 살았다는 것을 말이다. 마음을 주지 않으면 마음을 다칠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외로움'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명사]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 [유의어] 고독1, 고독감, 적막1
습지가 아닌 도심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도 외로움을 종종 느낀다. 사람들은 함께 있어도 외롭고, 혼자여도 외롭다고 말한다. 그 외로움은 왜 느끼는 것일까. 질문과 답을 반복한 끝에 나는 외로움이 '나 자신'과 마주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감정이라는 답을 얻었다. 외로울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어떤 것에 상처받고 기쁨을 느끼는지 선명하게 보인다. 또한 몰입하게 된다. 그러나 오랜 외로움은 카야처럼 우리를 고립시킨다. 고립이 지속되면 인간은 시들어간다. 그래서 외로움을 해결하는 나만의 세 가지 방법을 찾아보았다. 하나, 때때로 우리는 마음이 채워지는 연결의 경험을 해 왔다. 마음이 가득 차던 그 시간을 회상해 본다(기록해 놓으면 좋다). 둘, 평생 만나보지 못한 작가들(이미 세상을 뜬)과 그들이 창조한 세상 속 인물들과 깊게 사귀는 것이다. 그 속에서 엄청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 독서는 외로움을 순식간에 잊게 해 준다. 셋, 자연과 하나가 되어 보는 것이다. 자연은 안다. 우리의 감정 하나하나와 위로하는 방법까지도 말이다.
이 책은 작가 델리아 오언스가 일흔이라는 나이에 처음 쓴 소설이다. 생물학자로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참다운 야생의 삶을 살았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는 것이 가능했으리라. 놀라운 것은 작가의 언어다. 시적이고 섬세하며 묘사가 탁월하다. 꼭 책을 먼저 읽기를 바란다. 영화로도 나왔지만 책으로 읽을 때가 백배는 더 좋다(영화로 먼저 보면 카야의 생김새와 테이트, 체이스 그리고 습지를 그리는 나만의 즐거움이 사라질 것이다. 아름다운 언어를 음미하는 시간도).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외로움을 느끼는가? 외로울 때 나와 주파수가 비슷한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보아야겠다. 그리고 '잘 지내?'라는 짧은 문자 하나 건네 봐야겠다. 그 순간 우리는 연결될 테니까.
악어책방
- 고선영 대표
악어책방은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작은 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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