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른 무더위, 불타는 동남아
편집자주
2023년 2월 한국일보의 세 번째 베트남 특파원으로 부임한 허경주 특파원이 ‘아세안 속으로’를 통해 혼자 알고 넘어가기 아까운 동남아시아 각국 사회·생활상을 소개합니다. 거리는 가깝지만 의외로 잘 몰랐던 아세안 10개국 이야기, 격주 목요일마다 함께하세요!
한낮 기온이 섭씨 39.4도까지 올랐던 17일 베트남 하노이시 호안끼엠 호수 인근. 전자식 온도계를 아스팔트 바닥에 올리자 숫자가 빠르게 올라가더니 섭씨 49.4도를 가리켰다. 안 그래도 숨쉬기 힘들 만큼 후텁지근한 날씨에다 뜨겁게 달궈진 땅바닥의 복사열까지 더해진 탓이다.
시민들은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 처마와 나무 아래, 심지어 건물과 건물 사이 비좁은 공간까지, 그늘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자리를 잡았다. 호수 앞에서 만난 한 외국인 관광객은 “그늘 없는 곳의 온도는 이미 섭씨 50도를 넘었을 것 같은 기분”이라며 연신 부채질을 했다.
베트남을 푹푹 찌게 만드는 무더위는 남북을 가리지 않는다. 이달 6일 중부 응에안성에서 베트남 역대 최고 기온(44.2도)을 기록한 이후, 보름 넘도록 북부 하노이부터 남부 호찌민까지 곳곳에서 40도 안팎을 넘나드는 폭염이 맹렬한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당국은 비상이 걸렸다. 가뭄으로 수력발전 댐 수위가 예년보다 30~40% 낮아진 반면, 전력 소비는 폭증한 까닭이다. 베트남 전력공사는 “에어컨 온도는 26도 이상으로 설정하고 대용량 전기 제품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최대 도시 호찌민시는 공무원과 시민들에게 정장 착용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에어컨을 근무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틀고 한 시간 일찍 꺼 달라고도 했다. 하노이시는 일부 지역 순환 정전을 결정했다. 어떻게든 전력난을 피하려는 고육책이다.
그러나 정부와 시당국의 노력에도 북부 타이빈성, 타이응우옌성 등 곳곳에선 전기 부족으로 공장이 멈춰 서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한 관계자는 “심지어 정부 주요 부처마저 간헐적으로 정전이 일어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에 반해 폭염이 이어질수록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곳도 있다. 20일 찾은 중북부 탄호아성 H냉동 공장에서는 다섯 명의 직원이 주말도 잊은 채 20~30㎏의 얼음덩어리를 바삐 나르고 있었다. 공장 사장 쩐티킴또아(44)는 “지난해 여름 하루 3,000㎏의 얼음을 생산해 판매했는데, 올해는 무더위로 빠르게 동이 났다”며 “주문이 이어져 생산량을 5,000㎏으로 늘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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