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 광주 진입 도중 돌에 맞아 다쳐
의사, 환자 숨겨 일주일 간 정성껏 치료
"광주 원망 안 한다... 이런 아픔 없어야"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24일 오후 4시 광주 북구 임동 삼일의원. 60대 남성이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80대 노(老)의사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런 그를 의사는 흐뭇하게 바라봤다. 두 사람은 43년 전 얄궂은 운명으로 처음 만났다.
1980년 5월 21일, 당시 계엄군으로 참여한 20사단 61연대 대대장 당직병 박윤수(66)씨는 지프 차량에 몸을 싣고 서울에서 광주로 이동했다. 박씨가 탄 차가 광주 톨게이트를 지나 공단입구로 진입하던 순간이었다. 그는 인근에서 시위하던 시민들이 차량을 향해 던진 돌에 맞아 정신을 잃었다. 격한 시위로 부대 지휘부 차량 14대가 피탈됐다.
차량을 빼앗기고 크게 다쳤지만 어린 군인을 보살핀 이가 있었다.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군이었다. 시민군은 “병원부터 보내 치료를 받게 하자”며 격앙된 시위대를 달랬다. 그의 설득으로 박씨가 옮겨진 병원이 삼일의원이었다. 의사 정영일(85)씨는 계엄군을 성심껏 치료했다. 시위대에 들킬까 봐 병원 위층 자택에 박씨를 숨긴 뒤 일주일 동안 환자를 돌봤다. 그 덕에 박씨는 충분한 안정을 취하며 회복할 수 있었다.
정씨는 박씨가 광주에 주둔한 부대로 무사히 복귀하도록 돕기도 했다. “군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면서 사복을 건네기도 했다. 실제 20사단 전투상보 기록 가운데 ‘행방불명자 보고’를 보면, 박씨가 광주 톨게이트 부근에서 행방불명됐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1996년 서울지검 수사기록에도 당시 대대장이 “실종된 상병을 (5월) 27일 진압 작전 후 찾아냈는데, 귀 부분을 많이 다쳐 청각장애를 입었다”고 진술한 내역이 남아 있다.
국가폭력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본의 아니게 엇갈린 신분으로 만난 두 사람은 5ㆍ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주선으로 이날 재회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조사위는 문헌 조사 및 박씨 증언 등을 토대로 의사 정씨의 신원을 확인해 자리를 마련했다. 환한 웃음으로 박씨를 반긴 정씨는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며 그의 어깨를 오랫동안 토닥였다.
부상한 계엄군과 치료 의사의 만남은 처음이다. 5ㆍ18 과정에서 낙오돼 다친 계엄군을 치료해 복귀시킨 반상진 원장(전남도의사협회장) 사례가 있지만, 계엄군이 숨져 해후는 불발됐다.
박씨는 “43년이 지나서야 생명의 은인을 찾아뵙게 돼 죄송하다”며 “그때 귀 부상으로 한쪽 청각을 잃었지만, 광주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이런 아픔이 없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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