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 앞두고 위기감… “장기 계획 업계와 공유를”
2019년 정부로부터 사업허가를 받은 한 수소발전 업체 대표 A씨는 “요즘 죽을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수십억 원 들여 100메가와트(MW)급 연료전지 발전설비 지을 준비를 마쳤는데 사업이 불투명해졌다는 것이다. 오매불망 기다려온 수소발전 입찰시장이 다음 달 개설되지만 막상 들여다보니 사실상 설비용량 100MW 미만의 업체만 진입이 가능하게 설계됐기 때문이다. 이제 와 사업을 접지도 못하는 처지다. 설비를 안 지으면 부지 주변 도로 굴착해 둔 걸 20억 원 이상 들여 되돌려놔야 한다. A씨는 “허가 내줄 땐 없던 규제를 내세워 불이익을 주면 어떻게 정부를 믿고 일하겠나”라며 답답해했다.
6월 국내에 수소발전 입찰시장이 열린다. 정부가 운영하는 수소발전 시장은 세계에서 처음이다. 지난 수년간 시장 진입을 준비해 온 기업들 사이에선 그러나 기대감보다 위기감이 앞서는 분위기다. 시장이 애초 기대보다 규모는 크게 줄고 규제는 늘어난 채 개설되는 탓이다. 업계는 “정부가 수소 생태계를 육성이 아니라 퇴행시키는 거나 다름없다”며 비판하고 있다.
“90억 원 투자했는데 지방이라 불이익”
2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수소발전 입찰시장 공고가 다음 달 중 나온다. 허가받은 사업자들이 발전계획을 제출하면 평가를 통해 낙찰자가 결정된다. 낙찰자는 설비 건설 등의 준비 과정을 거쳐 오는 2025년 상업운전을 시작해 수소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를 전력시장에 판매할 수 있다. 지난 12일 한국전력거래소는 수소발전 사업자를 대상으로 입찰시장 평가항목 설명회를 열었다.
사업자들이 가장 불만을 터뜨린 항목은 크게 두 가지다. 설비용량이나 송전선로 전압이 작을수록, 전력 수요가 많은 지역과 가까울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이다. 대용량 발전설비나 지방 사업자는 불리한 구조다. 전남의 한 수소발전 업체 대표 B씨는 “지방에 있어서 불이익을 받는 게 말이 되나”라며 “수소발전에 선제적으로 투자한 탓에 큰 피해를 보게 생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남 지역은 전력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다. B씨는 발전설비를 지을 땅 매입비를 포함해 약 90억 원을 수소발전 사업에 투자했다.
청정수소 기업들 불확실성에 난감
수소발전은 지금까지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를 통해 보급돼 왔지만 연료비가 든다는 점에서 태양광이나 풍력발전과 다르다. 이에 정부는 수소발전의무화제도(HPS) 도입을 3년 전 예고하고 별도의 입찰시장을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기다려온 입찰을 코앞에 두고 발표된 예상 못 한 규제에 사업자들로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수소발전 사업 대다수는 수소와 공기 중 산소의 화학반응을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연료전지 발전시설이다. 여기 들어가는 수소는 대부분 천연가스에서 뽑는 추출수소(개질수소)나 석유화학·철강 공정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부생수소인데, 이는 입찰시장에서 ‘일반수소’로 분류된다. 정부가 발표한 일반수소 입찰시장 개설 물량은 연 1,300기가와트시(GWh)로, 설비용량으로 따지면 연 200MW 수준이다. 허가받은 사업자들의 총 설비용량인 6,000MW에 크게 못 미치니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일정 수준 이하인 ‘청정수소’ 입찰시장은 개설이 내년이다.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유럽의 RE100 체제에 맞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제도화를 추진키로 한 무탄소 에너지 체제 CF100의 주요 에너지원이 청정수소인 걸 감안하면 늦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앞다퉈 청정수소 투자 계획을 발표했던 SK와 롯데, 두산 등 대기업들은 불확실성이 커졌다. 정부는 청정수소 발전 상업운전을 2027년 시작한다는 계획이지만 기업들은 그러려면 적어도 올해 안에는 입찰시장이 개설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수소경제가 지난 정부에서 띄운 분야라 현 정부가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시각마저 나온다.
비싼 가격과 송전망 한계가 걸림돌
수소발전 입찰시장이 업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이유로 정부는 소비자 부담을 든다. 산업부에 따르면 현재 수소 발전단가는 250원 수준으로, 가장 높은 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 120~130원)의 약 2배다. 비싼 전기가 전력시장에 많이 들어올수록 전기요금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여기다 국가 전체 전력수급계획과 온실가스감축계획까지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개설 규모가 200MW라는 게 산업부 설명이다. 수소발전을 먼저 시작한 미국과 일본이 각각 연 50MW, 30MW인 걸 감안하면 작은 규모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방이 불리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산업부 당국자는 “전기가 부족한 곳 인근의 사업자를 우대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각에선 사업을 포기하는 업체가 늘면서 수소산업 생태계 구축이 더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청정수소의 경우 물론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지 않고 해외에서 들여오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국내 산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소경제 시대에도 에너지 안보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시장 규모를 당장 키우기 어렵다는 정부 입장에 동의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다만 기업들이 시장을 떠나지 않도록 지원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는 “국내 산업 육성을 더 고민해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20~30년을 내다보고 투자하는 기업들에 귀를 기울이고 정부가 시장 확대 방향성 등을 구체적으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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