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짜뉴스 신고센터’로 규제 나서
오보, 의혹제기까지 ‘가짜뉴스’ 간주
‘가짜뉴스’ 표현 남발…권력감시 약화로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떠도는 허위정보를 ‘유언비어(流言蜚語)’라고 불렀다. 중국의 고대 신화집인 ‘산해경’에 나오는 짐승 ‘비(蜚)’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외눈에 뱀의 꼬리가 있는 ‘비’라는 짐승이 나타나면 물이 마르고 풀이 죽고 천하에 큰 돌림병이 생겼다고 산해경은 전한다. 허위정보에 대한 무의식적 불안감이 그만큼 오래됐다는 방증일 터다. 서구에서는 왕이나 귀족들이 자신들에 대한 허위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영국에서는 1275년에 왕과 신하에 대한 거짓뉴스(false news)나 이야기를 발설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조항이 만들어졌는데 이 조항이 폐지된 건 19세기 말이었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영국에서도 언론의 자유와 허위정보에 의한 ‘선동적 명예훼손’ 처벌 문제를 두고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파되는 지금 허위정보 확산 문제는 지구적 이슈다.
우리 정부도 허위정보 유통의 폐해를 막겠다며 대책 마련에 나선 모양이다. “지금 세계는 허위선동, 가짜뉴스, 협박, 폭력, 선동이 진실과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기반해야 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하고 위협하고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4ㆍ19 기념식 발언이 방아쇠를 당겼다. 대통령 발언 다음 날 문화체육관광부는 허위정보를 ‘악성 정보 전염병’이라고 규정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에 ‘가짜뉴스 피해 신고ㆍ상담센터’를 만들었다. 사업계획도 예산도 없이 일단 신고센터부터 만든 속도전이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손발을 맞추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박성중 의원은 최근 법 개정 아니면 시행령을 통해서라도 ‘가짜뉴스’ 규제책을 마련하고 싶다는 속내를 비쳤다. 문재인 정부가 ‘가짜뉴스 피해구제’를 명분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밀어붙일 때 “언론에 재갈을 물리느냐”고 맹비난했던 정당이 맞나 싶을 정도다.
사실관계가 검증되지 않은 정보, 허위정보를 이용해 돈벌이를 하거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에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묻는 일은 필요해 보인다. 소위 가짜뉴스의 폐해를 시정해야 한다는 명제에 국민 10명 중 8, 9명은 찬성할 것이다. 문제는 구호는 선명하지만 쾌도양단으로 풀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는 점. 무엇보다 ‘가짜뉴스’를 규정하기 쉽지 않다. 언론학자들은 이익을 목적으로 거짓의 사실을 진실처럼 언론보도 형식으로 만든 정보를 대체로 가짜뉴스라고 말한다. 하지만 언론보도의 형식이 다양화하고 있으며 진실만을 강요할 때는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논란이 크다.
그런 점에서 단지 부르기 좋다는 이유로 ‘가짜뉴스’라는 표현이 남발되는 세태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요즘은 의도된 허위정보뿐 아니라 실수에 의한 오보, 근거가 있는 의혹 제기 등도 모조리 ‘가짜뉴스’라고 추궁당하는 분위기다. ‘허위조작정보’(유럽연합 ‘다차원적 접근 보고서’) 같은 객관적 표현 대신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을 사용하면 허위정보의 생산과 정보의 책임이 기존 언론에만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실관계에 소홀하고 때로 정파적으로 비틀기도 하는 기존 언론의 행태에 잘못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가짜뉴스’라는 프레임 때문에, 의도를 갖고 허위정보를 1차적으로 생산하는 많은 정치인, 세력의 책임이 희석되고 나면 남는 건 언론의 신뢰약화다. 기존 언론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비판 보도나 불리한 보도를 ‘가짜뉴스’라 몰아붙이고 막무가내로 규제한다면 웃는 사람은 누굴까. 권력을 잡는 세력마다 ‘가짜뉴스’를 퇴치하겠다고 나서는 일이 결코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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