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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절단됐는데 사업주 무혐의? 검찰 과오 바로잡은 공판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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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다리 절단됐는데 사업주 무혐의? 검찰 과오 바로잡은 공판검사

입력
2023.05.29 04:30
수정
2023.05.29 14:4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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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무혐의 처분… 벌금 100만 원 약식기소
지게차에 다리 잃어 "솜방망이 처분 억울" 호소
젊은 검사 '법리오해' 의심… 이례적 재수사
수사검사 불기소를 공판검사가 바로잡아 주목

지게차를 이용해 냉장고 등을 옮기는 모습. 기사 내용과는 관계없음.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게차를 이용해 냉장고 등을 옮기는 모습. 기사 내용과는 관계없음. 한국일보 자료사진

화물차 기사에게 고장 난 지게차를 운행하도록 해 작업자와 보행자에게 상해를 입게 한 사업주가 사건 발생 2년여 만에 공판검사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지게차에 깔려 피해자는 다리를 잃었지만, 앞서 검찰이 업주를 무혐의로 판단해 '솜방망이' 처분 논란이 일었다. 공판검사가 수사검사가 불기소 판단한 사건을 직접 수사해 바로잡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브레이크 고장 지게차 미점검…피해자 다리 잃었는데 '벌금형'

28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춘천지검 강릉지청(지청장 서정민)은 최근 강원 소재 비료제조업체 대표 A씨를 업무상과실치상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지난해 1월 지게차를 운전한 기사엔 벌금 500만 원, 운행을 지시한 A씨에게는 지게차 대여 시 관련 서면을 발급하지 않았다는 책임만 물어 벌금 100만 원에 약식기소했다. 검찰이 늦었지만 A씨에게 혐의를 추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건 전말은 이렇다. 2021년 1월 25일 강원 동해시의 농가 주변 도로 언덕. A씨 지시로 지게차에 비료를 가득 싣고 옮기던 화물기사는 후진 중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 순간 지게차가 뒤로 밀려 내리막길로 미끄러졌고, 동료 작업자 B씨와 보행자 C씨 다리가 뒷바퀴에 깔렸다. B씨는 전치 3주 골절상을, C씨는 양쪽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하는 영구장해를 입었다.

경찰은 같은 해 6월 A씨와 기사를 업무상과실치상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화물기사는 개인사업자로 A씨 업체와 운송위탁계약을 체결한 것일 뿐, 근로자와 사업주 지위로 보기 어렵다며 기사와 A씨 모두 약식 처분했다. 특히 수사검사는 폐쇄회로(CC)TV에서 사고를 보고 지게차로 뛰어온 사람과 C씨를 착각해 피해 원인을 'C씨 본인 과실'로 치부하기도 했다. 뒤늦게 정식재판이 청구됐지만 1심에서 기사는 집행유예, A씨는 벌금 100만 원 선고에 그쳤다.

피해자 호소 귀 기울인 공판검사 문제 제기…이례적 재수사로 기소

지난해 12월 항소심 공소유지를 맡은 황인혜 검사는 피해자인 C씨 아내와 아들을 면담했다. C씨는 10여 번 수술 끝에 오른쪽 다리를 잘랐고, 왼쪽 다리도 절단 수술 진단을 받았다. 그동안 C씨 가족은 수차례 검찰을 찾아 가벼운 가해자 처분에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이미 처분된 사안'이란 설명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법복을 입은 지 4년 차인 황 검사 머릿속엔 이들의 호소가 맴돌았다.

기록을 다시 살피던 황 검사는 A씨가 기사들에게 계약에 없는 부수적 업무 지시를 많이 해온 점을 발견했다. 지게차 상하차 업무도 그랬다. 개인사업자 화물기사는 통상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지만, 고용노동부는 화물차 사고가 계약과 다른 지시에 따른 업무수행 중 발생했다면 일시고용관계로 봐야 한다고 보고 있다. 황 검사는 화물차 기사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유사 판례들도 찾아냈다.

황 검사는 이를 토대로 재수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법리오해를 이유로 무혐의 사건을 다시 수사하는 것을 두고 내부 우려도 있었지만, 검찰시민위원회도 12명 만장일치로 황 검사에게 힘을 실어줬다. 전면 재수사에 착수한 황 검사는 A씨와 법인의 작업계획서 허위 작성 및 지게차 미보험 정황 등을 파악했다. 작업자들이 이미 제동장치 고장을 인지할 정도였는데도, 이상 유무 점검·수리와 보행자 사고 방지 안내 등 안전조치도 없었다. 검찰은 결국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점을 짚어 A씨를 업무상과실치상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C씨는 치료비로 검찰 범죄피해자 지원금 1,320만 원을 받았다. C씨 측은 황 검사에게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절망했는데 힘내서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황 검사는 한국일보에 "피해자 심정에 공감해 법리를 따져보니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공판 중 수사 재기 사례가 드물어 힘들었지만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어 뿌듯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검찰이 처분 과정에서 실수할 수 있지만 바로잡을 기회가 많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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