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흠 '우다브노에서 아침을' (악스트 5, 6월호)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대표적 점묘화인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의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1884). 무수한 점으로 세밀하게 그려낸 그림을 마주한 순간 호기심에 작품 가까이로 눈을 들이민다. 그러다 문득 '진짜 감상'을 하고 싶어 한 발 두 발 물러난다. 멀찍이 떨어져야 제대로 보이는 것이 있다. 그림도 사람도. 죽음이란 상당한 거리가 생기고서야 '상대를 깊게 이해하고 있다'던 생각이 오만이었음을 깨닫는 건, 그래서 당연할지 모른다.
격월 문예지 악스트(5, 6월호)에 실린 백가흠의 '우다브노에서 아침을'은 어쩌면 흔한 그런 이야기다. 그래서 오히려 섬세하게 조탁한 소설의 세계를 통해 마주할 때 더 깊은 울림을 느낀다. 현실에선 지나치고 돌보지 못한 그 안의 감정들을 응시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소설은 이국에서 숨진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따라간다.
화자인 '나' 희은은 어느 날 15년간 연락이 끊겼던 아버지가 이름도 낯선 나라 조지아에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듣는다. 실감 나지 않지만 장례를 치르기 위해 일단 조지아로 향한다. 그곳에서 확인한 아버지의 생전 삶은 모든 게 생경하다. 우다브노란 작은 마을에서 '의성식당'이란 음식점을 운영한 '김정민'. 그는 교회를 다녔다. 그리고 딸이 있다. 아이 엄마는 본국인 미얀마로 돌아갔고 이제 열한 살 남짓 한 '애나'는 홀로 남았다.
나는 밖에서 보기엔 무척 덤덤하다. 한꺼번에 몰려오는 아버지의 15년 세월에 멀미가 날 법도 한데 차분하기만 하다. 애나에게 함께 살자고 제안도 한다. 하지만 내면에는 고요한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장례를 치르기까지 여정 내내 아버지와의 기억을 곱씹다보니 그제야 다르게 읽히는 장면들이 툭툭 비어져 나오면서다.
아버지가 평생 산 고향 의성을 떠나기로 했던 때의 기억이 그렇다. 서울에서 취직한 나에게 아버지는 갑자기 집도 마늘밭도 정리했다고 선언한다. 50대 중반이었던 그는 본격적으로 꿈을 펼쳐보겠다고 입을 뗐지만 말미에는 너무 외롭다는 속내도 드러냈다. 내가 뭐라 답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단역 배우였던 남자가 재능도 없는 마늘농사를 하며 산 것이 아버지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다는 걸 그때 알게 된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후 연락이 끊긴 아버지를 찾으려 크게 애쓰지 않았고 서운해하지도 않으려 했다. "내게 할 도리를 다"한 아버지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애 둘을 키우며 사느라 바쁜 일상에 조금씩 아버지를 잊었다.
아버지가 떠난 후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죽어서도 조지아에 묻히고 싶다면서 딸의 연락처를 교회 목사에게 건넨 사람. 딸 애나에게 언니와 닮았다고 종종 말하던 사람. 주변인들의 증언이 내 기억 속 마지막 만남에서 목돈을 쥐어 주며 자유롭게 살라고 당부하던 아버지의 모습과 맞춰지고 나서 나는 눈물을 쏟는다. 한 남자가 자신을 기다리며 앉아 있던 그 식당 의자에 앉아서. 아버지의 부재가 만든 공간 속에서 아버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간 희은을 보며, 모진 인생의 순리 앞에 겸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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