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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딘 정책의 치명적 함정

입력
2023.05.31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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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법자 득 보는, 도덕성 의존 우리 법체계
한국 '집행유예' 증권범죄, 미국은 30년형
개개인의 경제동기 고려한 현실 정책 필요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라덕연 투자자문업체 대표가 11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라덕연 투자자문업체 대표가 11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필자는 시카고 대학의 유명 경제학자인 게리 베커 교수가 199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 후 한국에서 강연을 하는 것을 대학생 때 본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좋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필자의 기억에 지금까지 남는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는 경제적 동기를 고려한 정책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시카고에 있는 한 공원에 이 학자가 공연을 보러 가는데 너무나 불편한 주차장 상황에서 주차하면 안 되는 불법주차 장소에 단지 10달러의 벌금과 단속 가능성의 기대확률을 생각하며 주차를 하였다는 이야기였다. 노벨상 수상자도 경제적 동기 앞에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음을 솔직히 이야기해 준 것이다. 그 유명하고 미래 예측력이 인정된 경제학 게임이론의 존 내시의 내시균형도 사실 그 핵심은 누구와도 협력하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는 행동이 있으면 그 행동을 한다는 인간의 극도의 이기성을 가정한 것에 있다.

한국의 많은 제도는 아직도 선비주의에 입각한 인간의 도덕성에 많은 부분 애매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가 정착한 지 오래된 현 국가 시스템에서 이 부분은 도덕적 위선 속에 정작 모두가 실제 행위는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를 하게 하는 문제를 낳고 있다. 법을 어기는 자가 이익을 얻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인간에게 경제적 유혹을 뿌리치고 도덕적 행위를 할 것을 기대하기 이전에 사회 시스템들이 개개인이 이런 유혹 상황이 되지 않도록 보상과 처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낫다는 것을 생각하여야 한다.

한국의 경제적 동기를 고려하지 않은 가장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주식시장의 내부 정보 활용 관련 처벌 제도이다. 최근 SG증권 사태의 경우에도 많은 관련 경영인이 먼저 가격 폭락 전 자기 주식을 처분함으로써 수백억 원의 이익을 가지게 되었다. 상당 부분 내부 정보 활용이 의심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유사한 일들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이 잘못은 언뜻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자본주의의 근간인 주식시장의 보호에서 너무나 중요한 부분으로 미국이라면 20~30년 중형에 해당할 수 있는 범죄이다. 하지만 이 범죄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인지 한국 법제도는 아직도 내부 경영정보를 이용, 막대한 이익을 보는 경영자들의 반복적 범죄에 집행유예 수준의 처벌만을 하고 있다. 당연히 막대한 이익 대비 가벼운 처벌은 계속적으로 유사 범죄의 반복적 발생을 야기하고 있고 궁극적으로 한국 주식 가치가 떨어지는 코리안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되고 있다.

복지 정책에서도 최근 이와 같은 경제적 동기와 반하는 정책은 외과의사 수급난을 악화시키고 있다. 얼마 전 심각한 외과 환자의 경우 정해진 시간 이내에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강제의무화하는 규정이 제정되었다고 한다. 보기에는 매우 온당한 조치이지만 이 반작용은 매우 심각하다. 어려운 일에 대한 수가 보상 등 외과 의사들에 대한 보상이 조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당직 부담이 엄청나게 늘어나게 된 것은 가뜩이나 비인기 외과에 오지 않던 의대 졸업생들의 외과 지원자의 씨가 마르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고 한다. 응급, 비상대기 업무가 과중하고 보상은 비슷한 비인기과에 어떤 의대 졸업생들이 경제적 동기로 볼 때 지원하고 싶겠는가? 여러 이유를 행정당국은 설명하고 싶겠지만 결론은 실제 의료 상황은 국민에게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 '도덕적으로' 옳은 정책들을 만들지 말고, 개개인의 경제적 동기를 고려하여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하게 하는 정책을 만들도록 정책당국은 현실적이 되어야 한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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