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 방일 후 해외투자자 순매수 급증
주가, 버블 붕괴 후 33년 만에 최고치
호실적·저금리·주주친화 정책 매력
임금·물가 상승, 성장 복귀로 이어질까
닛케이255지수를 비롯한 일본 도쿄증시 주요 지수가 버블 붕괴 이후 33년 만에 최고치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달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일본을 방문해 일본 투자를 권한 뒤 몰려드는 해외 투자자들 덕분이다. 이들은 일본 기업의 좋은 실적, 낮은 조달 금리와 더불어 일본 경제가 30년간의 장기 침체에서 벗어날 가능성에 주목한다.
3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최근 해외 투자자는 4월 초~5월 3주까지 일본 주식을 약 5조6,000억 엔(약 52조8,785억 원)어치 순매수했다. ‘아베노믹스’ 초기보다도 더 빠른 속도다. 올해 봄 유럽과 미국의 약 40개 투자처를 방문한 UBS증권의 아다치 마사미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0년간 해외 투자자들의 일본에 대한 관심이 이토록 높았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버핏 "일본이 좋은 투자처" 낙관... '미니 버핏' 잇따라
해외 투자자들의 ‘바이 재팬’을 이끈 일차적 요인은 ‘버핏 효과’다. 지난 4월 버핏은 일본을 찾아 이토추상사 등 일본 상사 주식의 보유 비중을 늘렸다고 공개했다. 이달 초엔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대만보다 일본이 좋은 투자처다. 일본 기업의 투자처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니혼게이자이는 버핏처럼 일본 증시를 재평가하는 해외 투자자를 ‘미니 버핏’이라 부르면서 유럽 등으로도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 운용사 카르미낙은 최근 일본 전기 및 자동차 주식을 사들였다. 1989년부터 일본 증시에 투자한 영국 제노자산운용의 제임스 솔터는 4월 새 일본 펀드를 설립해 단기간에 2,500만 파운드(약 408억 원)를 모았다. 거입 문의가 잇따르고 있어 최대 10억 파운드(약 1조6,355억 원) 규모로 펀드를 키울 계획이다.
기업 이익 증가, 저금리, 주주친화정책 매력
30년 동안 침체돼 있던 일본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우선 장기 엔저로 주요 대기업 이익이 크게 증가했다. 지난 10년간 닛케이지수 구성 종목의 주당 이익 증가율은 3배가 넘고, 미국 500대 기업의 2배가 넘는다. 낮은 조달 비용도 매력이다. 미국과 유럽은 지난해 기준금리를 대폭 인상한 반면 일본은 금융완화 정책을 계속하고 있어 저렴하게 투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주주 친화 정책을 적극 도입한 것도 도쿄증시가 재평가되는 요인이다. 지난달 초 도쿄증권거래소는 상장사에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밑도는 상장사는 주가 수준을 올리기 위한 방안을 공시하고 실행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PBR 1배 미만은 시가총액이 청산 가치보다도 낮다는 뜻이다. 이에 미쓰비시상사, 후지쓰 등 대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정책을 발표했다. 아베 신조 정권 시절 도입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 제도의 영향으로, 주주가치 향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경영에 개입하는 ‘행동주의 펀드’의 활약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최근에는 이런 펀드들이 실적이 부진한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기도 한다.
30년간의 침체, 이제 극복하나
해외 투자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건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에서 탈피해 성장 궤도로 복귀하느냐 여부다. 지난해부터 30년 동안 제자리이던 물가가 올라가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압박에 힘입어 일본 기업의 노사 임금협상은 올해 봄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의 인상률로 타결됐다. 카르미낙의 자산운용 책임자는 “임금 인상과 인플레이션으로 일본 경제가 잠에서 깨어날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대형운용사 GMO의 일본 주식 담당자도 “임금 인상이 소비와 설비 투자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일본 경제가 본격적인 성장 궤도로 들어설 것이라 확신하긴 일러서 외국인의 ‘바이 재팬’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평가가 많다. 일본 경제에 대한 장기적 신뢰가 회복된 후에야 단기 자금 위주인 현재의 해외 매수세에 연기금 등 장기투자자가 가세할 것으로 보인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