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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에게 물리다

입력
2023.05.31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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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기 전 한 장관의 개인정보 유출 의혹 관련 압수수색 등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기 전 한 장관의 개인정보 유출 의혹 관련 압수수색 등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지난 3월 작고한 일본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연작소설 '하마에게 물리다'(1985)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감명 깊게 읽은 책' 중 하나로 꼽은 작품이다. 1970년대 극좌 운동권 내부의 집단 린치 살인으로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연합적군 사건을 모티프로, 말단 조직원이었던 청년의 인생을 통해 '상처와 회복'이란 주제를 형상화한다.

□ 청년은 출소 후 홀로 우간다에 갔다가 하마에게 물어뜯기는 사고를 당한다. 어깨부터 허리까지 신체적 상처는, 동료들이 또 다른 동료들에게 차례로 살해당한 참극이 남긴 정신적 흉터에 비견된다. 하지만 그는 기어이 고통과 고립을 극복하고 죽은 동료의 여동생과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아 기르며 공존의 삶으로 나아간다. 오에는 청년에게 '하마의 용사'란 별명을 붙이고, 왕성한 생명력으로 물길을 틔워 홍수를 막고 생태계와 조화하는 하마의 이미지를 투영한다.

□ 소설 속 청년은 꿋꿋이 살아남았지만, 현실에서 하마의 공격을 받는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쉽지 않다. 수컷 하마라면 몸무게가 최대 3톤이다. 어른 팔뚝만 한 송곳니와 그만한 너비의 어금니도 치명적 무기다. 아프리카에선 매년 500명쯤 하마에게 목숨을 잃는다. 지난 15일 말라위에선 하마가 37명이 탄 카누를 들이받아 24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야생에서 공존과 공격은 한 끗 차이다.

□ 한 장관은 30일 본인 청문회 자료 유출 건으로 경찰이 MBC 기자와 보도국, 국회 사무처 압수수색에 나서자 "누굴 해코지하려 개인정보를 유포하고 악용했으니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청문회 때면 기자들은 후보자 검증차 여러 경로로 관련 자료를 입수한다. 이런 관행을 자신에 대한 '해코지'로 규정한 건지, 설령 그렇더라도 언론·국회 강제수사까지 따를 사안이라 보는 건지 궁금하다. 한 장관은 검사로서 전임 정부와 맞서다가 좌천당한 경험이 있다. 다들 저마다의 '하마'에 물리지만 고통을 승화시켜 '하마의 용사'에 다다르는 이는 많지 않다.

이훈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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