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제조업 재고율, 역대 가장 높아
반도체 부진 여파, 감산은 긍정적
공장에서 만든 제품이 얼마나 잘 팔리고 있는지 보여주는 제조업 재고율이 1998년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쁜 수준까지 치솟았다. 불경기에 빠진 반도체 산업 중심으로 먼지 앉은 재고가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31일 발표한 '4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출하 대비 재고를 의미하는 제조업 재고율은 4월 130.4%로 전월 대비 13.2%포인트 상승했다. 제조업 재고율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5년 이후 최대다. 경제가 푹 가라앉았던 외환위기 때도 가장 높았던 게 128.1%(1998년 3월)였다.
통상 제조업 재고율은 경제가 좋을 땐 70~90%대에 머문다. 예컨대 코로나19로 꺼졌던 경기가 반등했던 2021년 상반기 제조업 재고율은 91~94% 수준이었다.
제조업 재고율 상승은 반도체 부진에서 비롯한다. 4월 반도체 출하는 전월 대비 20.3% 감소한 반면 재고는 31.5% 늘었다. 반도체 재고율만 떼어 보면 267.9%로 1997년 3월 289.3% 이후 가장 높았다. 한국 반도체를 찾던 중국 등의 수요 급감으로 주인을 찾지 못한 채 공장에 쌓인 상품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반도체 재고 증가는 가격 하락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4월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을 보면, 4월 반도체 수출 가격은 전년 대비 13.2% 내렸다. 반도체 수출 가격 하락폭이 수입 가격(-12.8%)을 앞지르면서 전체 순상품교역조건지수도 0.5% 떨어졌다. 반도체 수출을 잘해도 전체 교역으로 보면 손해를 보는 상황인 셈이다.
물론 삼성전자가 지난달 7일 메모리반도체 감산 결정을 내리면서 재고율도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보다 반도체 생산량이 줄어들면 재고 소진 속도도 빨라질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 감산에다 중국 내 스마트폰, 컴퓨터 등 정보기술(IT) 수요 회복으로 반도체 불경기가 바닥에 가까워졌다는 예측도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다만 반도체 위축으로 부진한 경기가 정부 기대대로 하반기에 반등할지는 불투명하다. 반도체가 하반기 들어 다소 나아지더라도 '경제 효자'란 명성을 되찾을 정도로 회복하기엔 아직 시일이 걸려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반도체 정상화 시점을 "적어도 내년 중반"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향후 경기를 가늠할 수 있는 선행지수순환변동치(98)가 전월 대비 0.2포인트 내려가면서 6개월 연속 하락세인 점도 경제에 부정적인 신호다. 이승한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은 "상·하방 요인이 혼재한 앞으로의 경기 흐름에서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 지속, 높은 반도체 재고 수준 등은 부담"이라며 "정부는 수출·투자·내수 등 경제 활력 제고에 총력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