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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사업으로 파괴됐지만...여전히 살아 있는 수라갯벌 꼭 지키고 싶어요"

입력
2023.06.01 11:0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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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함께하는 직업] <14> 다큐멘터리 감독 황윤
수라갯벌 지키자는 메시지 담은 영화 '수라' 곧 개봉

편집자주

동물을 위해 일하는 직업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수의사, 사육사, 훈련사 등은 동물 관련 쉽게 떠올리는 직업이지만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입니다. 실제 영화감독, 출판사 대표, 웹툰 작가 등 다른 직업을 갖고 동물을 위해 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동물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만나 동물 관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황윤 감독이 31일 서울 종로구 환경과생명문화재단 '이다' 내 북카페 피스북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다큐멘터리 '수라'에 등장하는 새끼 쇠제비갈매기를 소개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황윤 감독이 31일 서울 종로구 환경과생명문화재단 '이다' 내 북카페 피스북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다큐멘터리 '수라'에 등장하는 새끼 쇠제비갈매기를 소개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영화는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다. 관객들과 호흡하면서 세상을 바꿔 나간다는 측면에서다. 사회적 약자 중의 약자, 동물들의 목소리를 영화를 통해 세상에 들리게 하고 싶었다."

전시동물(작별), 야생동물의 찻길 사고(어느날 그 길에서), 농장동물(잡식가족의 딜레마) 등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탐구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황윤 감독새만금신공항으로 파괴될 위기에 놓인 수라갯벌의 아름다운 생명들을 다룬 영화 '수라'로 돌아왔다. 2015년 개봉한 '잡식가족의 딜레마' 이후 7년 만이다.

31일 서울 종로구 환경과생명문화재단 '이다'에서 만난 황 감독은 "힘을 주는 물건"이라며 수라갯벌에서 주운 도요새와 기러기, 올빼미 털로 직접 만든 목걸이를 하고 나타났다. 황 감독은 "새만금 지역 마지막 남은 수라갯벌에는 여전히 쇠제비갈매기와 검은머리갈매기, 도요새 등 법정보호종 40여 종이 살고 있다"며 "간척과 새만금신공항 등으로 위협받는 수라갯벌의 아름다움을 알려 시민들과 이를 지키고 싶다"고 밝혔다.

법정보호종 40여 종이 살아 있는 수라갯벌을 담다

수라갯벌에서 새끼 쇠제비갈매기가 어미새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미디어나무 제공

수라갯벌에서 새끼 쇠제비갈매기가 어미새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미디어나무 제공

-수라갯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3년 새만금 갯벌 보존을 호소하며 성직자들이 해창갯벌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세 걸음 걷고 한 차례 절하는 불교의식) 행진을 할 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지막 구간에 참여했다. 3년 뒤 대법원이 새만금 사업 적법 판결을 내리면서 간척사업이 진행됐고, 그 길로 카메라를 들고 내려갔다. 어떤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때 갯벌을 찍어두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어민과 시민들의 투쟁에도 결국 새만금 갯벌에 '사망선고'가 내려졌고, 이후 다시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게 된 이유는.

"2014년 가족과 전북 군산시로 이사를 오게 됐다. 이사를 오고 나서야 이곳이 '새만금의 도시'임을 깨달았다. 1년 뒤인 2015년 10월 갯벌에서 물새를 조사하는 오동필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장을 만나면서 수라갯벌을 찾았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갯벌에서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저어새 150여 마리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직 생명이 살아 있다는 희망과 안도감, 또 다 끝났다고 생각한 오만함에 대한 반성과 미안함이 생겼다. 모든 편견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무조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갯벌 속 사랑스러운 새들을 만나고, 조사단을 만나면서 힘과 용기가 생겼다. 하지만 7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다."

-촬영 기간이 길어진 배경은.

"생태조사단이 13년째 청춘을 바쳐 기록한 갯벌 자료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다. 슬라이드 사진을 비롯해 촬영 영상만 500개 이상 본 것 같다. 광산에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하는 심정이었고, 이때 발견한 주옥 같은 장면들을 영화에 넣게 됐다. 학자, 전문가, 단체도 하지 않았던 일을 오롯이 시민들이 해 왔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다큐멘터리 '수라'에 등장하는 수라갯벌의 모습. 미디어나무 제공

다큐멘터리 '수라'에 등장하는 수라갯벌의 모습. 미디어나무 제공

-수라 작품 촬영 시 어려웠던 점은.

"갯벌 촬영의 난이도가 높았다. 새나 조개 등을 아무 때나 찍을 수 있는 게 아니었고, 날씨와 햇빛 각도 등 환경도 모두 고려해야 했다. 또 다큐멘터리 촬영 시 기획안을 제출해서 지원금을 받고 촬영을 하는 구조라 제작비를 직접 구하는 것도 오래 걸렸다."

-새만금신공항이 수라갯벌에 영향을 미칠까.

"당연히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라갯벌 한복판을 활주로가 가로지르게 돼 거의 다 파괴된다고 보면 된다. 계획 적정성과 입지 타당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지적에도 정부는 이를 무리하게 추진하려 하고 있다. 기후위기 측면을 봐도 탄소배출을 하는 항공기의 특성상 선진국들은 공항을 축소하려 하는데, 우리는 이러한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 갯벌의 탄소 흡수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100개의 극장' 이벤트가 있었다고 들었다.

"다큐멘터리는 상영관을 잡기가 쉽지 않다. 수라를 100개의 극장에서 개봉하자는 취지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관객들이 미리 보고 싶은 극장을 골라 티켓을 구매하도록 구성해, 극장을 확보하려고 했다. 관객들이 주도한 행사라 더 의미가 깊다. 수라는 7일까지 열리는 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 초청돼 상영한 뒤 이달 21일 개봉한다. 많은 분들이 수라갯벌의 아름다움을 큰 화면에서 봐주면 좋겠다."

동물원 속 호랑이 '크레인'과의 약속을 지키다

수라갯벌에서 살고 있는 흰발농게. 미디어나무 제공

수라갯벌에서 살고 있는 흰발농게. 미디어나무 제공

-처음 동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대학 졸업 후 영화를 만드는 창작집단에서 동료들과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영화의 매력에 푹 빠졌다. 어떤 작품을 만들지 고민하던 중 동물원에 가게 되면서 새끼 호랑이 '크레인'을 운명처럼 만났다. 엄마도 형제도 없는 철창 안에서 너무나 슬피 우는 크레인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지만 카메라를 통해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너의 이야기를 영화로 담아 잘 전달할게'라고 약속했다. 이후 만난 다른 동물들도 크레인처럼 느껴진다. 이 약속을 지키려고 작업을 하는 것 같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속 황윤 감독이 아들 도영군과 돼지를 바라보고 있다. 황윤 감독 제공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속 황윤 감독이 아들 도영군과 돼지를 바라보고 있다. 황윤 감독 제공

-농장동물로 관심 영역이 확대됐는데.

"'잡식가족의 딜레마' 촬영 전까지는 반려동물, 야생동물을 편애했다. 반면 내가 먹는 돼지, 소, 닭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2010년 구제역으로 돼지들이 살처분당하는 것을 보면서 먹는 동물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돈가스가 좋았고, 고기로서의 돼지만 생각해 왔지 동물로서 돼지를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놀라웠다. 실제 돼지를 봐야겠다는 생각에 농장을 찾아가 돼지와 친구가 되면서 돼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동물인지를 알게 됐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자유를 갈망하며 새끼를 사랑하는 엄마돼지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동물 다큐멘터리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은 고생스럽고 힘들지만 소중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눌 수 있고, 또 영화를 본 사람들이 동물과 환경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어서다. 이 모든 과정이 다큐멘터리 제작을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수라갯벌에 살고 있는 검은머리갈매기. 미디어나무 제공

수라갯벌에 살고 있는 검은머리갈매기. 미디어나무 제공


동물을 찍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려면

황윤 감독이 한 동물원에서 촬영 중 히말라야 눈표범과 눈동자를 마주치는 모습. 황윤 감독 제공

황윤 감독이 한 동물원에서 촬영 중 히말라야 눈표범과 눈동자를 마주치는 모습. 황윤 감독 제공

촬영 기술과 장비가 발달하고, 유튜브 등의 채널이 생기면서 누구나 영상을 찍고 보여줄 수 있는 시대다. 꼭 영상을 전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촬영 기술보다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세상에 필요하지만 들리지 않는 중요한 목소리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영상을 만들면 좋겠다.

사람들은 집회와 기자회견을 열고 1인 시위도 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동물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약자다. 멸종으로 치닫고 있는 약자 중의 약자인 동물의 목소리를 세상에 들리게 하고, 예술작품으로 감동을 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공장식 축산을 촬영하면서 약자에 대한 폭력과 착취의 뿌리는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물을 위하는 것은 결국 우리를 위하는 길이다. 간척 사업으로 수라갯벌 내 도요새와 조개만 사라진 것 같지만 그 여파가 결국 우리에게 오고 있다.

도움말: 황윤 감독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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