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우크라에 비무장지대 만들자"는 인니… 엇갈리는 서방-개도국 종전 해법
알림

"우크라에 비무장지대 만들자"는 인니… 엇갈리는 서방-개도국 종전 해법

입력
2023.06.06 04:30
0 0

싱가포르 샹그릴라 대화서 '휴전 방안' 논쟁
인도네시아 국방장관 "무고한 죽음보다 낫다"
우크라 국방장관은 "러시아 계획 같다" 반발

지난 2일 벨기에 브뤼셀 유엔본부에서 우크라이나 시민단체 회원들이 러시아 전쟁범죄를 심판할 특별재판소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브뤼셀=EPA 연합뉴스

지난 2일 벨기에 브뤼셀 유엔본부에서 우크라이나 시민단체 회원들이 러시아 전쟁범죄를 심판할 특별재판소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브뤼셀=EPA 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당장 양국이 휴전에 나서야 한다는 제안이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나왔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책임을 묻기보단,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현 상태에서 전쟁을 끝내자는 취지다. 비(非)서방국과 개발도상국에서 이번 전쟁에 대한 피로감이 짙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 등 서방과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셈이다.

"휴전하고 유엔군 배치"

5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세계 주요국 안보 수장이 집결한 싱가포르 아시안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선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방안을 둘러싼 논쟁이 불붙었다. 발단은 인도네시아의 ‘비무장지대 설치’ 제안이었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국방장관은 3일 샹그릴라 대화 연설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 군이 현재 위치에서 각각 15㎞씩 후방으로 철수한 뒤 유엔 평화유지군을 배치하자”고 제안했다.

특히 비무장지대를 통해 70년간 ‘긴장 속 평화’를 유지해 온 한반도 사례도 언급했다. 프라보워 장관은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과 엄청난 파괴가 (계속) 발생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2월 말 전쟁이 발발한 지 15개월 이상 지났지만, 좀처럼 종전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만큼 더 적극적으로 출구 전략을 모색하자는 뜻이다.

인도네시아는 주요 20개국(G20) 의장인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지난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연달아 방문하는 등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게다가 프라보워 장관은 내년 치러지는 인도네시아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인물이기도 하다. 국제사회 시선이 쏠린 자리에서 휴전 의제를 꺼내 들어 주목을 받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는 거세게 반발했다. 즉각 휴전에 들어가면 그간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인정해 줘야 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회의에 참석한 올렉시 레즈니코우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인도네시아가 아닌 러시아의 계획 같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소식을 전해 들은 올렉 니콜렌코 외무부 대변인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할 분쟁 영토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일 몰도바에서 열린 유럽정치공동체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몰도바=AP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일 몰도바에서 열린 유럽정치공동체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몰도바=AP 연합뉴스

러시아군 철수가 휴전의 전제 조건이라고 강조해 온 미국과 유럽 역시 ‘가능성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우리는 항복을 통한 평화와 더 강한 자의 평화를 원치 않는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개도국 전쟁 피로감 이어져

비서방국 반응은 180도 다르다.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일변도 정책’에 불만을 가져온 중국은 ‘인도네시아 띄우기’에 나섰다. 추이톈카이 전 주미 중국대사는 “인도네시아 지역 친구들의 노력에 감사하다”고 치켜세웠다. 이어 “유럽과 대서양 동맹국은 (우크라이나) 안보 상황을 잘못 관리하고 있다”며 서방의 전략을 깎아내리기도 했다.

남미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도 내심 동조하는 분위기다. 미국 등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지속에 회의적이라는 얘기다. 이들 국가는 올해 2월 유엔의 대러 제재 결의안 채택 당시에도 기권 또는 반대표를 던졌다. 전쟁이 불러온 물가상승(인플레이션)으로 경제난이 심화하는데다, 서방이 유럽 땅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세계의 전쟁’으로 확대하는 데 대한 피로감이 적지 않은 탓이다.

프라보워 장관은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에 있는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경험한 것보다 더 참혹하고 유혈이 낭자한 갈등과 전쟁을 겪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과거 서방 국가의 식민주의 행태를 꼬집은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FT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휴전 논의를 둘러싼 반응은 서방과 개도국 간 깊은 분열을 보여 준다”고 짚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