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 쇼크가 온다: 1-② 2038 대한민국 예측]
절반세대가 부담해야 할 세금은 얼마일까?
편집자주
한국일보는 1970년(100만 명)보다 출생아 수가 절반(49만 명)으로 줄어든 2002년생이 2038년(36세)에 직장인으로서 마주할 상황을 시나리오로 구성했습니다. 이들 절반 세대는 각종 사회 인프라와 사회보험을 지탱하기 위해 지금보다 70% 더 많은 세금과 4대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시나리오를 위해 장래인구추계, 학계가 추정하는 세금 및 연금·보험 부담액, 지역별 지방소멸지수, 전문가들의 보충 설명을 충실히 반영했습니다.
문득 김미래(36)는 고1 때 수업시간을 떠올렸다. 담임은 학생보다 더 절실히 학교가 파하길 기다렸던 괴짜였다. 진도는 뒷전이고, 수업은 개똥철학의 향연이었다. "오늘을 살라"거나 "지금을 즐겨"라는 말로 잔잔한 수험생의 마음을 흔들었다. "공부해도 소용없다." 무책임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모두가 피라미드의 정상에 설 수 없거든. 빨리 포기하는 게 이기는 게임일지 몰라. 힘들겠다 싶으면 너희의 행복을 찾아."
당시(2018년) 시대정신이었던 '욜로'(YOLO)에 심취한 몇몇 아이들은 그를 인정하기도 했지만, 그저 조용히 공부만 하길 바랐던 그 시절 미래에게, 담임은 피해나 안 주면 고마운 존재였다. 미래는 엄마가 짜 둔 학원 스케줄을 꾸역꾸역 소화했다. 재수도 하지 않고 서울의 괜찮은 대학에 진학했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유망한 중견 기업에 입사했다.
미래는 '조금만 더!'라는 말로 스스로를 다그쳤다. 길었던 수험과 취준의 터널이 끝나자, 번듯한 회사에서 고액 연봉을 받으며 삼각별 수입차를 끄는 멋진 미래가 저기 보였다.
그러나 신기루였다.
한국 소득세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죠. 고령화 추세나 복지재정 수요, 탄소중립 계획을 고려할 때, OECD 평균으로 가는 소득세 인상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평균적으로 지금 실효세율의 1.7배 정도가 되죠.
2023년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의 예측
월급의 3분의 1이 원천징수 되는 월급명세서
2038년 4월 21일. 오늘 같은 월급날 고1 담임이 떠오르는 이유는, 어쩌면 그가 했던 말이 맞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금을 즐겨." 그땐 막 사는 사람의 변명처럼 들렸던 그 말이, 뭔가 진리를 담고 있었다는 생각까지 들며 맥이 탁 풀린다.
2030년대 후반을 사는 직장인은 '욜로'를 꿈꿀 기회를 박탈당했다. 입사 8년 차 미래의 월급(세전)은 583만원. 적은 월급이 아니지만, 각종 세금과 4대보험, 기타 공제들을 제하고 나면 월급의 30%가 증발된다. 과거 직장인 급여는 '유리지갑'이라고 불렸지만, 이 시대 월급명세서는 '밑 빠진 독'이다. 미래가 입사한 이후 연봉 인상률이 1%를 넘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올해부터 임금피크 적용을 받는 부장님 얘기론 과거 일본에서 이렇게 급여가 수십년 정체된 적이 있다고 했다.
실수령액마저 확 깎인 건 2년 전,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100%에 근접하자 정부가 화들짝 놀라 급격한 세율 인상을 강행한 뒤부터다. 당시 여당은 과세표준별 소득세율을 올리고, 연말정산에서 소득공제를 사실상 적용하지 않는 세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때 어떻게든 펑크난 재정을 땜질해 보려던 여당은 정권을 잃었다. 그러나 '증세지옥'이라는 구호를 유행시키며 정권교체에 성공한 새 정부도 슬슬 증세를 위한 군불을 떼고 있다. 얼마 전 한 여당 초선의원은 전기차에 환경부담금을 물리자는 궤변을 늘어놓다가 유튜브 쇼츠에 박제를 당했고, 한 언론에 부가가치세 인상을 검토 중이라는 '단독' 기사가 났다가 기재부가 부랴부랴 "결정된 바 없음"이라는 해명자료를 뿌리는 일도 있었다.
2023년부터 15년 간 건강보험 보장성과 의료가격의 변화가 없어도, 고령화에 따라 건보지출과 1인당 건보 부담액은 약 40% 증가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노인 진료비 비중은 2021년 42.3%에서 2038년 64%로 증가합니다.
2023년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예측
세금이 끝이 아니다. 미래는 이번 달 △건강보험료 29만원 △노인장기요양보험료 8만원 △국민연금 41만원 등 79만원을 준조세로 납부했다. 여기에 고용보험과 노조회비까지 월급에서 원천징수되고 나니, 실수령액은 고작 408만원이다. 여기서 카드값, 월세, 공과금, 통신료 등이 더 빠져야 한다. 학생 때처럼 '조금만 더'를 다시 외치기엔 너무 힘들다.
블루오션이 된 '죽음 시장'
미래가 다니는 상조서비스 회사는 꽤나 괜찮은 곳이다. 2030년 일본을 앞질러 세계 최고의 노인국가가 된 한국에서 유일하게 고성장을 구가하는 업종이 바로 '죽음 산업'이다. 2020년 처음 30만명을 돌파한 한해 사망자 수는 2038년 현재 50만명을 넘어섰다. 인구 감소로 모든 수요가 줄어가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수요 증가세를 보이는 게 사람의 죽음이다. 2060년까지 죽는 사람 수가 는다고 한다.
과거 상조업은 장례식을 돕는 단순 서비스 제공에 그쳤지만, 지금은 죽음에 따르는 △법률 이슈 △상속 단계의 절세와 재산 재투자 △보험 문제 △유족 자산 설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의 '해결사'를 자처하는 종합서비스 산업으로 발전했다. 그런 대형화의 선두에 섰던 곳이 바로 미래의 회사다. 군소 화장터와 상조업체 인수, 추모공원 프랜차이즈화를 통해 계속 몸집을 불려온 업계 1위다. 회사는 내년부터 허용되는 안락사 분야를 선점하기 위해 대형로펌, 대학병원과 손잡고 국내 최초의 안락사 시설 '웰다잉 센터'를 최근 완공했다.
노인인구 및 1인가구의 증가는 가족의 약화와 함께 나타나죠. 무연고 사망, 고독사, 주택 소유주 사망으로 인한 빈집 방치 등 사례가 늘 겁니다. 이렇게 되면 재산권이나 친권과 관련한 복잡한 법률 문제가 증가하겠죠. 이에 대한 구체적 전망과 법제도 정비가 필요합니다.
2022년 이상림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의 예측
특히 미래가 속한 '1인 가구 자산유동화 대응 사업부'는 법률과 금융 지식을 두루 갖춘 에이스들로 구성된 유망부서다. '비혼'이나 '딩크'로서의 신념을 지킨 중산층 고령 1인 가구가 증가했지만, 그들은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미래네 사업부는 후손이 없는 이들이 자기 재산을 '현생'에서 남김 없이 소진할 수 있도록 부동산 등 자산 유동화를 돕는다. 불의의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될 경우엔 △버킷 리스트 달성이나 △최고급 호스피스 옵션을 선택하는 것도 가능했다.
해결되지 않은 서울·지방 양극화
인구 유입이 불가능한 지역 노후 아파트들은 재건축이 어려워 그대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특히 이들 아파트 거주자는 고령 빈곤층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주거, 빈곤, 지역 슬럼화가 연결되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2022년 이상림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의 예측
사실 미래도 아직 결혼하지 않은 1인가구다. 1인가구가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아이디어를 짜내는 게 그의 일이지만, 미래의 미래는 밝지 못하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부동산 가격을 지탱하고 있는 서울에 집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고객들처럼 미리 유동화할 자산이 없다.
서울 생활을 접고 아버지 고향인 경북의 작은 도시에 자리잡은 미래 부모님은 1992년 건축된 47년차 낡은 아파트에 거주한다. 재건축이 불가능해 재산으로서의 가치는 사실상 없다. 한창 때 13만 명이 넘었던 그 도시의 인구는 지금 9만 명 밑으로 떨어졌고, 시민의 절반이 65세 이상 고령자다. 단지 내 여기저기 빈 집이 늘고 이사 들어오는 사람들도 없어, 옆 아파트와 관리사무소를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어머니는 "고향에 돌아오면 생활비를 아낄 줄 알았는데, 지방 물가가 오히려 서울보다 비싸다"고 말했다. 제주에서만 배송비를 차별하던 인터넷 쇼핑몰은 하나둘 지방도시 배송비를 1만원(수도권 5,000원)으로 올렸고, 도시 내 주유소가 차례로 문을 닫으며 휘발유 가격도 서울보다 높아졌다. 수요가 예전만 못하니 동네마트끼리 벌이던 가격 경쟁도 사라졌다. 가로등이 꺼지거나 도로가 파여도 시청에선 "사람도, 예산도 모자란다"며 그대로 장기간 방치해 두기 일쑤다.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날도 2주에 한번이라 아파트 분리수거장엔 늘 쓰레기가 넘쳐난다고 한다.
자식을 하나만 둔 부모님을 챙길 사람은 미래밖에 없다. 60만 원 용돈을 매달 꼬박꼬박 부모님께 보내드리기가 벅차지만, 저런 사정을 알면서 송금을 줄이기는 어렵다. 결국 미래가 서울에서 허리띠를 더 졸라매는 수밖에.
한 번도 한눈 팔지 않고 학업과 회사일에 몰두했지만, 02년생 김미래가 양 어깨에 떠안은 부담은 갈수록 커져만 간다. 인간이 못 피하는 두 가지가 '죽음'과 '세금'이라 했던가? 탄생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죽음이 꾸준히 누적되면서, 세금은 살아남은 자의 어깨를 더 가혹한 무게로 짓누르고 있다.
미래와 그 또래들은 부모 세대처럼 콩나물시루 교실, 대입 눈치작전, 12시간 귀성전쟁을 겪으며 살진 않았다. 하지만 부모 세대 인구의 절반밖에 안 되는 미래의 또래가 지불해야 할 인프라 비용은 두 배로 가중됐다. 사람이 사라진 '널널한 세상'에 사는 비용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2038년의 시뮬레이션 어떻게 했나요?
(1) 연봉 7,000만원, 월급 583만원의 근로자를 가정해 국세청 근로소득세 계산기, 국민연금공단 4대보험료 계산기로 세금 등을 산출한 뒤, 학계에서 거론되는 미래 부담액 전부를 세금 등 상승에 반영했습니다.
(2) 2038년 소득세 및 주민세는 1.7배 상승한 것으로 가정했습니다. 정부의 총 지출이 2040년 20.5%(GDP 대비)로 2020년(11.7%)보다 1.75배 늘 것이라고 본 '2018-2060 중장기 사회보장재정추계', "고령화에 따른 재정 지출로 소득 구간별 1.5~2배의 세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의 자문을 반영했습니다.
(3) 건강보험료는 41.6% 상승한 것으로 가정했습니다. 장래 노인인구 추계에 따라 미래 국민 1인당 건강보험 부담액을 추산한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의 계산(건강보험공단 학술대회 발표 자료)을 참고했습니다.
(4) 노인장기요양보험료는 장래인구추계가 보여주는 '경제활동인구(15~64세) 대비 초고령인구(75세 이상)' 비율에 근거해 현재보다 3.07배 오르는 것으로 계산했습니다.
(5) 국민연금은 요율이 15%까지 오르는 것으로 가정했습니다. △국회 연금특위와 민간자문위 논의에서 거론되고 있는 상한선 △기금에서 돈이 안 나가는 방식(부과방식)으로 전환했을 때 2040년 부담하게 되는 요율이 모두 15%선인 것을 참고했습니다.
(6) 고용보험료는 "육아휴직 증가 등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전문가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구체적인 추정이 어려워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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