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코노믹 허스토리'
편집자주
책, 소설, 영화, 드라마, 가요, 연극, 미술 등 문화 속에서 드러나는 젠더 이슈를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봅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경제적 인간)'. 애덤 스미스 이후 주류 경제학이 상정하는 합리적 인간상이다. 인위적 개입이 없어도 개인이 이익을 효율적으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은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게 스미스의 '국부론'이 내세운 핵심. 그런데 생각해보자. 지금으로부터 꼭 300년 전에 탄생한 이 경제학자가 규정한 경제적 인간은 과연 '여성'을 포함할까.
뉴욕주립대 경제학 교수 이디스 카이퍼의 책 '이코노믹 허스토리'는 과감하게 선언한다. '지금껏 우리가 배운 경제학은 반쪽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구체적으로 호명한다. 남성 중심의 경제학 역사에서 소외되고 무시당했던 여성 경제 저술가(19세기까지만 해도 서구권 대학에서 여성에게 학위를 주는 것이 금지되었으므로 이들의 지위나 사유 체계는 학문의 영역이 아닌 '저술'에 머물러 있다)와 경제학자의 목소리와 저작을.
책의 속표지를 넘기자마자 나열되어 있는 여성 102명의 명단. 혁명가로 더 잘 알려진 로자 룩셈부르크나 올랭프 드 구즈,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 미국의 영부인 엘리너 루스벨트 등 몇몇 이름을 제외하고는 무척 생소한 이름들이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중세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경제학에서 의미 있는 역할과 기여를 했지만 배제된 여성들의 흔적을 설득력 있는 사료를 통해 촘촘하게 발굴해낸다.
'경제학(economics)'의 기원부터 먼저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의 크세노폰이 쓴 '오이코노미코스(Oikonomikos)'에서 연원했다. 집을 뜻하는 오이코스(oikos)와 관리를 의미하는 노미코스(nomikos)가 합쳐진 이 단어는 이후 '살림살이' 혹은 '가계경제'를 뜻하는 '오이코노미아'로 발전해 국제 무역이 발달하기 전인 중세까지만 해도 경제적 사고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런데 스미스는 자신의 작업에서 공적 영역의 생산성과 부를 다루는 '이코노미'와 분리해 '오이코노미'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경제를 '사적 영역 대 공적 영역' '여성성 대 남성성' 같은 이분법의 세계로 치환했다.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에서 개인을 칭하는 단어는 '남성(man)'으로만 등장한다. 폴 새뮤얼슨이나 그레고리 맨큐도 이 같은 전통에서 자유롭지 않다.
'반쪽짜리 경제학'의 세상에서 여성의 생산, 분배, 소비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집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노동은 과소 평가되거나 아예 가치가 책정되지 않는다. 1970년대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이 연구를 시작할 무렵에는 여성의 실업, 연금, 기업 진출, 노동 공급 등 경제적 지위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데이터도 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주류경제학에서 배제된 '가정'과 '여성'은 20세기까지 '가정경제학'이라는 경제학의 하위 분야로 취급되는데, 이는 당시 미국에서 여성 학자가 경제학부 내에 자리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분야였다. 하지만 희소한 교육의 기회를 얻어 학계에 진출한 여성들은 가려진 여성의 경제활동을 가시화하는 데 전력을 다했고, 여러 학자들의 연구들에 힘입어 '가사 노동' '가계 생산' '무임금 노동' '돌봄 노동'을 측정하고 개념화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1988년 매럴린 웨어링의 연구는 전 세계 모든 생산 노동의 30~35%가 무임금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밝혔다. 유엔개발계획(UNDP)도 유사한 방법을 사용해 조사한 결과 전 세계 무임금 노동의 51~53%를 여성이 담당하고 있으며, 북부 산업화 선진국에서는 전체 무임금 노동 시간의 67%를 여성이, 저개발국에서는 75%를 담당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남성은 전체 임금 노동의 66~75%를 점유했다. 주류경제학이 상정한 경제 시스템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손'보다 '보이지 않는 여성들의 노동'으로 굴러갈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기울어진 경제학의 모순은 현실 곳곳에서 파괴력 있는 논쟁을 촉발했다. 여성들이 충분히 교육받고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오늘날까지 왜 '성별 임금 격차'는 성차별 논쟁을 촉발하는 뜨거운 감자일까. 합계출산율 0.78명의 나라에서 '합리적 선택을 하는 개인이자 노동자'인 여성들은 왜 결혼과 출산을 거부할까. 한국의 안티페미니스트와 보수 정치인들이 총공세를 펼치는 '성인지 예산'은 왜 다수 개발국과 국제기구가 이니셔티브로 채택하고 있을까.
공교롭게도 올 6월은 애덤 스미스의 300주기다. 그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반쪽짜리 경제학의 사라진 절반을 복구하는 것 역시 후세대의 몫일 것이다. 단순히 여성에게만 초점을 맞춘 또 다른 반쪽짜리 경제학이 아니라, 성별, 인종, 나이 등 주류 경제학이 놓친 부분을 두루 조명하는 다양성과 포용성의 페미니즘 경제학을 저자가 주창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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