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돌려차기, 유튜버가 가해자 신상공개
협박 들은 피해자 "신상공개 절실" 호소해
공개 대상 확대, 자의적 기준도 재정비해야
최근 한 유튜버가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가해자 신상을 공개해 ‘사적 제재’ 논란이 불거졌다. 하지만 가해 남성이 피해자에게 보복을 다짐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대개 ‘살인’에 한해 피의자 신상을 알리는 현 제도의 실효성이 도마에 올랐다. 흉악범죄도 가해자 출소 후 보복범죄로 이어질 우려가 큰 만큼, 공개 대상을 확대하고 기준을 세분화하는 등 제도 전반을 손봐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보복 우려 흉악범죄... 신상공개는 불가
8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지금까지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에 기반해 범인 신상이 공개된 사건의 94%는 살인이었다. 2010년 피의자 신상공개제도 도입 후 47건이 공개됐는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특례법)에 따른 9건을 제외한 38건 중 36건이 살인으로 나타났다.
강력사건은 특강법이 신상공개의 근거가 된다. 특강법은 ‘국민의 알권리’ 외에도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을 위해 필요하면 피의자 신상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신상공개를 한 사건 대다수가 살인이고, 피의자에게 무기징역 등 중형이 선고돼 사실상 재발방지나 범죄예방 효과는 없다는 점이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만 해도 경찰 수사 단계에서 중상해죄만 적용돼 가해자 신상이 노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해 남성이 1심에서 징역 12년 형을 받아 나이(31)를 감안하면 출소 후 보복할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피해자 A씨는 본보 통화에서 “(가해자의 구치소 동료로부터) 가해자가 이사 간 제 주소를 알고 있고, 그 주소를 외우며 ‘탈옥해서 때려죽이겠다’고 말했다고 들었다”며 “순간 숨이 탁 막혔다”고 털어놨다. 논란이 확산하자 법무부가 조사 뒤 조치하겠다고 밝혔지만, A씨는 “저와 같은 피해자가 또 생기는 걸 막으려면 신상공개가 필수”라고 호소했다.
이 사건은 검찰이 2심 도중 강간살인미수로 혐의를 바꿔 12일 열릴 선고 공판에서 성폭력특례법에 의거해 신상이 공개될 수도 있다. 다만 당초 기소 혐의인 중상해죄만 적용된다면 법적 테두리 안에서 가해자 신상을 알릴 방법은 없다. 끔찍한 범죄 대상자가 되고도 다시 보복을 걱정해야 하는 피해자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모호한 공개 기준, 바꿀 때 됐다
그간 여러 차례 문제가 제기된 모호한 신상공개 기준도 재정비할 때가 됐다. 특강법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 발생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충분한 근거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 △피의자가 만 19세 미만이 아닐 때 등을 신상공개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수법이 얼마나 잔인한지, 또 피해가 어느 정도 심각한지 등의 평가 잣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부산에서 또래 여성을 살해한 정유정(23)의 신상은 공개한 반면, 서울 금천구에서 전 연인을 살해한 김모(33)씨는 공개하지 않은 것을 두고 형평성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범죄ㆍ인권 관련 전문가들도 신상공개 확대든, 효율성 강화든, 사적 제재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라도 제도 개선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인권 수준이 높은 미국도 수사 초기부터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며 “우리도 특정 흉악범죄는 일괄 공개하는 식의 법 개정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경찰청 인권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역경찰청으로 나뉜 신상공개위원회를 통일해 일관성을 높이고, 이후 머그샷(체포 후 촬영사진)을 공개해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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