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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는 거른다 vs 반페미는 아웃… 절반세대 결혼관에서 젠더는 '거름망'

입력
2023.06.13 16:00
수정
2023.06.28 19:4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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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 쇼크가 온다: 1-③절반세대 연애·결혼·출산 리포트]
인식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난 젠더 갈등

편집자주

1970년 100만명에 달했던 한해 출생아가 2002년 40만명대로 내려앉은 지 20여년. 기성 세대 반도 미치지 못하는 2002년생 이후 세대들이 20대가 되면서 교육, 군대, 지방도시 등 사회 전반이 인구 부족 충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일보는 3부 12회에 걸쳐 '절반 세대'의 도래로 인한 시스템 붕괴와 대응 방안을 조명한다.

2000년대 초반생인 절반세대는 2015년 즈음 온라인 공간에서 급부상한 ‘페미니즘 붐’과 직후에 뒤따른 ‘반(反)페미니즘’ 갈등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2022년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 젠더갈등이 심각하다’는 데 20대의 90%가 동의했다. 전 세대 평균(71%)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사진은 지난 2021년 12월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신남성연대 주최로 '페미니즘 규탄 집회'가 열리는 모습. 뉴스1

2000년대 초반생인 절반세대는 2015년 즈음 온라인 공간에서 급부상한 ‘페미니즘 붐’과 직후에 뒤따른 ‘반(反)페미니즘’ 갈등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2022년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 젠더갈등이 심각하다’는 데 20대의 90%가 동의했다. 전 세대 평균(71%)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사진은 지난 2021년 12월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신남성연대 주최로 '페미니즘 규탄 집회'가 열리는 모습. 뉴스1


결혼이요? 하고는 싶은데 못 한다는 게 맞을 것 같아요. 경제적 문제도 있지만, 제 또래는 성별 갈등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한 번은 별뜻 없이 인터넷 유행어를 말했다가 남사친(연인 아닌 친구)이 '그거 남성 비하 용어'라며 추궁해서 너무 당황한 적 있어요.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남자가 연락처를 묻거나 합석 제안을 해도, 더 조심스러워서 철통방어를 하게 되고요.

2001년생 직장인 박보람(가명·22)씨

2002년 전후에 태어난 절반세대는 2015년 이후 페미니즘과 반(反)페미니즘 담론이 치열하게 맞붙던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인터넷 여론에 민감한 '디지털 네이티브'인 이들은 미투 운동이나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 등 젠더 이슈와 함께 자랐다. 젠더 문제로 사회적 갈등이 첨예화·정쟁화하는 것을 뉴스로 목격했고, 학교 현장에서 학생 간 또는 교사-학생 간 젠더인식 차이를 직접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실제 20대(18~29세)의 90%는 '우리 사회 젠더갈등이 심각하다'고 본다(2022년 한국리서치). 절반세대에게 직접 물었더니 본인과 다른 성별을 대할 때 부담감과 경계심을 느낀다고 토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런 갈등의 경험이 이 세대의 연애·결혼·출산 인식에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최근 젠더 이슈에 대한 스펙트럼이 너무 다양해지다 보니, 어떻게 입장을 보여야 할지 고민스럽고 상대를 만날 때 말과 행동을 더 조심하게 됐어요.

젠더 갈등이 연애에 영향을 미쳤다는 대학생 이민준(가명·25)씨

에타(대학교별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의 줄임말)에서 젠더 감수성 떨어지는 막말하는 사람들 보면, 미래에 저런 사람 만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죠.

2002년생 대학생 송혜나(가명·21)씨

12일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절반세대(2001~2004년생) 인식조사(조사 대상 500명)에 따르면 절반세대 남성의 83.4%는 '페미니스트 성향'인 사람을 배우자로 택하는 것에 부정적이었고, 같은 세대 여성 76.8%는 '안티페미니스트 성향' 배우자는 싫다고 답했다.

절반세대와의 비교를 위해 대조군으로 정한 1990년대 초반 출생자(500명 조사)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90년대생 남성 79.5%가 '페미 배우자'에, 90년대생 여성 80.2%가 '안티페미 배우자'에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절반세대의 페미니즘과 배우자 선호도. 그래픽=강준구 기자

절반세대의 페미니즘과 배우자 선호도.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페미 배우자'를 마냥 선호하거나, 남성이라고 '안티페미 배우자'를 선호하지도 않았다. 절반세대 여성은 '페미 배우자'에 대해 △긍정적 36.5% △부정적 24.6% △상관없다 25.3%로 답했고, 90년대생 여성은 긍정(36.7%)과 부정(38.4%)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다. 남성들도 절반은 '안티페미 배우자'를 싫어했는데, 불호 의견이 절반세대 남성은 47.1%, 90년대생 남성은 55.5%로 나타났다. '안티페미 배우자'가 좋다는 응답은 절반세대 남성은 23.2%, 90년대생 남성은 17.9%였다.

조사를 진행한 한국리서치 관계자는 "절반세대와 90년대생 남녀 모두 결혼할 배우자 선택에서 성격, 가치관, 소득·자산 등을 주요 요인으로 꼽고 '정치적 성향'은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며 "페미냐 안티페미냐 여부는 우선적인 선택 요인이라기보다 필터링(걸러내는) 요인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번 인식조사는 ①전국의 2001~2004년생 남녀 500명과 ②1991~1994년생 남녀 500명 등 합계 1,000명을 대상으로 했다. 본보 '절반 쇼크가 온다' 기획이 주목한 2000년대 초 출생자 '절반세대'의 인식을 파악하고, 그들보다 열 살 많은 선배 세대의 생각을 비교해 보기 위함이었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더니,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한 여성은 30%대, 남성은 7%대였다. 반면에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에 거부감이 든다"고 답한 여성도 30%대에 이르렀고, 남성은 넷 중 셋(75%) 이상 거부감이 든다고 답했다.

서울여성회 등 34개 여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이 강남역 살해사건 7주기인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추모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더 이상 여성의 죽음을 방관하지 말고, 젠더폭력에 대한 국가의 답을 내놓을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뉴스1

서울여성회 등 34개 여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이 강남역 살해사건 7주기인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추모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더 이상 여성의 죽음을 방관하지 말고, 젠더폭력에 대한 국가의 답을 내놓을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뉴스1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가진 여성 응답자가 30%대인 것과 별개로, "한국 사회의 여성차별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90년대생 여성은 75.5%, 절반세대 여성은 71.0%로 높았다. 반대로 "남성에 대한 차별이 심각하다"는 명제에는 90년대생 남성의 51.3%, 절반세대 남성 49.8%가 동의했다. 여성차별이 심각하다는 데 동의한 남성은 30% 안팎이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남녀 서로 '내가 더 차별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본보는 또 교육 제도, 결혼 제도, 취업 기회 등 7개 항목에 대해 "어떤 사회 제도가 특정 성별에게 불리한 것 같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초중고 교육과 대입에서는 남녀 및 세대와 무관하게 "남녀 간 차이가 없다"는 응답이 70~80%대로 나타나, 대체로 공정한 제도로 인식됐다.

남성들 절반(90년대생 48.7%·절반세대 51.7%)은 "법 집행이 남자들에게 불리하다"고 답했다. 성범죄 관련한 수사·재판 과정에서 남성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 외 '결혼 제도'(90년대생 31.6%·절반세대 22.0%)와 '취업 기회'(90년대생 27.0%·절반세대 27.8%) 정도였다.

반면 여성들은 초중고 교육과 대입 제도를 뺀 나머지 5개 항목에 대해 '여성에게 더 불리하다'고 인식한 비율이 훨씬 높았다. ①승진 ②소득 ③취업 ④결혼 ⑤법 집행의 순서대로, 90년대생 여성의 ①91.1% ②83.5% ③74.7% ④73.0% ⑤45.6%가 이들 제도가 여성에게 더 불리하다고 인식했다. 절반세대는 90년대생보다는 낮기는 하지만, ①85.5% ②73.9% ③69.7% ④53.1% ⑤46.5%가 여성에게 불공정하다고 봤다. 실제 사회생활을 해 본 90년대생 여성들이 직장과 결혼 문제에서의 불리함을 더 심각하게 인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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