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주 본회의 통과 가능성 높아
초당파 법안보다 후퇴해 논란
법원은 "동성 결혼 입법 필요"
일본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를 높이고 차별을 막기 위한 ‘성소수자 이해증진 법안’이 9일 국회 중의원 내각위원회를 통과했다. 지난달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인권 후진국’이란 오명을 우려해 제출했던 법안이다. 하지만 보수파의 거센 반대 탓에 초당파 합의안보다 후퇴한 내용이 대거 반영돼 논란이 일고 있다.
9일 NHK방송에 따르면, 이날 내각위원회에서 여당인 자민·공명당과 보수 야당인 일본유신회·국민민주당 등 총 4개 당이 합의한 ‘성적 지향 및 성 동일성에 관한 국민의 이해 증진에 관한 법률안’(약칭 ‘LGBT 이해증진법’) 수정안이 통과됐다. 입헌민주당과 일본공산당은 초당파 의원 논의과정에서 합의했던 안을 별도로 제출했으나, 표결을 거쳐 수정안이 가결됐다. 다음 주 중의원 본회의에서도 수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부당한 차별 안 돼"... 정당한 차별도 있다?
하지만 초당파 안(案)의 “차별은 용납할 수 없다“는 표현은 자민당 안에서 “부당한 차별은 있어서는 안 된다”로 바뀌었다. 이는 ‘정당한 차별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 소수자 단체의 반발을 불렀다. 수정안에는 또, 유신회 등이 제안한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유의한다” “학교 교육은 보호자의 이해와 협조를 얻어 실시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성 화장실이나 목욕탕에 들어가면 여성의 권리가 침해된다” “LGBT 교육으로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등의 우파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입헌민주당은 “설마 일부 야당이 자민당에 편승해서 더 후퇴한 수정안이 통과될 줄은 몰랐다”며 한탄했다.
물론 그렇다 해도 21일 종료하는 이번 회기 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일본에서 성소수자 권리 신장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는 의의는 있다. 다만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입법을 촉구하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는 데도 국회는 이해증진법조차 보수파 입김에 밀려 후퇴시키고 있어, 앞으로 자민당과 정부가 성소수자 권리 신장을 위한 실질적 정책을 마련할지는 미지수다.
법원 5곳 중 4곳, 동성 결혼 인정 입법 촉구
일본에선 현재까지 동성 결혼 관련 소송이 총 5건 진행되고 있는데, 마지막 다섯 번째 소송의 1심 판결이 전날 후쿠오카지방법원에서 나왔다. 재판부는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법으로 인해 권리를 침해받는 현 상황이 ‘위헌 상태’라고 판단했다. 이로써 총 5건 중 4건에서 ‘위헌’ 또는 ‘위헌 상태’ 판단이 내려졌다. 유일하게 합헌으로 판단한 도쿄지법조차 시대 변화를 언급하며 이 상태로 방치할 수 없다는 데엔 동의했다. 성소수자 권리 단체들은 법원이 필요성을 인정한 만큼 당장 법제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일본 정부는 “아직 1심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일본 재계도 성소수자 권리 보장에 국회가 빨리 나서라고 촉구한다. 해외에서 훌륭한 인재를 데려오려고 해도 동성 부부를 인정하지 않는 현행법 때문에 일본에 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 지방자치단체는 이미 대도시를 비롯한 대부분 지역에서 동성 부부를 인정하는 ‘동반자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동성 결혼 인정에 찬성하는 의견이 70%에 달한다.
그러나 ‘전통적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우파는 성소수자 인권 향상 움직임을 못마땅해하고 있다. 최근 한 극우 매체는 일본에 성소수자 권리 향상을 촉구한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를 비난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이에 자극받은 자민당 강경보수파는 “이해증진법을 당론으로 정하면 안 된다”며 본회의 표결 때 반대표를 행사할 의사도 드러내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