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전통시장] <24> 강진 병영시장
한때 '북에는 송상, 남에는 병상' 명성까지
인구 감소에 쇠락… 코로나19탓 존립 위기
거리공연·연탄불고기 파티로 화려한 2막
몰려드는 관광객에 직통버스·캠핑장까지
편집자주
지역 경제와 문화를 선도했던 전통시장이 돌아옵니다.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도 지역 특색은 살리고 참신한 전략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돌린 전통시장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최근 전남 강진에 가면 '불금불파'라는 말이 회자된다. 금요일마다 불고기 파티가 열린다는 뜻이다. 궁금증을 안고 지난 2일 오후 강진으로 떠났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초저녁 강진의 병영시장 앞. 문을 닫을 시간이 아니었지만 이미 자물쇠를 채운 점포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이른 시간에 장사를 끝낸 이유가 궁금하던 차에 시장 한복판에 큼지막한 무대가 세워졌다. 어둠이 내려앉자, 청년들의 거리공연으로 시끌벅적해졌다. 시장 곳곳에선 어느새 야외 바비큐 테이블에 둘러앉아 다양한 음식들을 올려놓은 사람들로 붐볐다. 파전에 쌀국수, 떡볶이, 닭꼬치, 소시지를 파는 푸드트럭에도 음식을 주문한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불금불파’ 축제가 벌어지는 강진 병영시장은 이날도 2,000여 명의 관광객이 몰렸다.
불금불파는 강진군이 새롭게 개발한 관광상품이다. 연탄불고기로 유명한 병영시장에서 지난달 26일부터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시작했다. 반신반의했지만 초반 반응이 심상찮다. 입소문을 타고 관광객들이 몰려, 광주광역시에서 강진 병영시장까지 직행 셔틀버스까지 생겼다.
지역축제 버리니 힙한 공간으로 완성
강진은 인구 소멸 문제가 심각한 전남에서도 가장 상황이 안 좋은 지역이다. 1970년대 초까지 12만 명을 유지했던 강진 인구는 지난달 기준 3만3,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인구 소멸은 전통시장의 쇠락으로 이어졌다. 강진의 5일장으로 유명했던 병영시장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명맥만 이어가고 있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다. 병영시장에서 40여 년째 잡화점을 운영하는 최복순(79)씨는 “북에는 송상, 남에는 병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병영시장은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며 “인구 감소로 그 규모가 10분의 1로 줄어든 데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아 시장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까지 돌았다”고 했다.
병영시장의 쇠락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강진군이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강진군 관계자는 “병영시장은 3일과 8일에만 장이 서는데, 장이 서지 않는 날은 손님들이 거의 찾지 않아 전통시장을 어떻게 활성화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단순히 시장이란 틀에 갇히지 말고 아예 놀고 먹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의미에서 ‘불금불파 놀고먹장’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만고만한 지역축제에서 벗어나 독자적 콘텐츠를 개발해보자는 게 강진군의 구상이었다. 변화는 뻔한 콘텐츠를 버리는 것에서 시작됐다. 외지 상인들이 운영하는 먹거리 장터와 지역 동호인들 공연, 연예인 초청 행사를 모두 포기하니 지역에서 유명한 ‘연탄불고기’만 남았다. 강진 병영면에는 세류교부터 350m 구간에 이른바 ‘병영 돼지 불고기 거리’가 있다. 강진군은 이에 병영시장을 연탄불고기 특화 구역으로 새롭게 조성하기로 했다. 골목에는 야외 테이블을 설치했고, 바가지 가격을 잡기 위해 마을 부녀회원들이 손을 보탰다. 지역 고유의 콘텐츠를 살리자 곧바로 ‘힙’한 먹거리 공간으로 새로 태어났다.
야외에서 즐기는 연탄불고기와 지역 맥주
버릴 건 버리고 살릴 건 살리면서, 강진군은 연탄불고기의 맛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얇게 저민 돼지고기에 마늘과 간장, 설탕과 고춧가루를 버무려 석쇠로 굽는 병영시장 연탄불고기는 돼지고기 사이로 은은하게 스며든 연탄불 향이 백미다. 병영시장에서 15년째 연탄불고기 가게를 운영하는 강정례(79)씨는 “각지에서 손님들이 몰려들어 재료가 모두 동이 날 지경”이라며 “이곳에서 수십 년 동안 연탄불고기 가게를 운영했지만, 최근처럼 손님들이 이렇게 많은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전통주를 활용한 하이볼과 칵테일, 강진군이 자체 개발한 하멜 맥주와 커피는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만 맛볼 수 있는 아이템이다. 이날 병영시장을 찾은 김예린(33)씨는 “한마디로 숨통이 탁 트이는 기분”이라며 “지역행사에 대한 기대감이 높지 않았는데 좋은 음식과 좋은 공연, 좋은 자리까지 만들어져 더 바랄 게 없다”고 만족해했다.
북에는 송상 남에는 병상…옛 명성 되찾을까
관광객이 몰리자 지역 청년 상인들도 병영시장에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황칠나무 농사를 위해 강진으로 귀농한 이상준(37)씨는 최근 시장 한복판에 카페를 차렸다. 이씨는 “죽어 있는 공간으로 생각했던 병영시장이 활력 넘치는 곳으로 탈바꿈해 깜짝 놀랐다”며 “전통시장이 지역을 살리는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란 확신이 들어 가게를 매입해 카페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장 한쪽에선 전통등 만들기, 도자기 아트 등 문화예술 체험 공간도 마련됐다. 제기차기와 딱지치기, 땅따먹기, 투호, 사방놀이, 구슬치기 등 추억의 놀이도 즐길 수 있다. 지역농특산품과 기념품, 아트 공예품 판매를 위한 농부장터도 들어섰다.
병영시장 인근에는 캠핑족들을 위한 20개의 무료 텐트촌도 조성됐다. 300여 명 이상 신청이 몰리면서 오토 캠핑장과 글램핑장도 추가로 만들 계획이다. 시장상인 최복순(79)씨는 "최근 활력이 넘치는 시장을 다시 보니 전성기 시절 모습이 생각난다"며 "이런 분위기가 이어져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고 시장 매출도 쑥쑥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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