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헨리 오시언 플리퍼
미국 조지아주 노예 출신 청년 헨리 플리퍼(Henry Ossian Flipper, 1856~1940)가 1877년 6월 15일 미국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를 졸업, 장교 계급장을 달았다. 육사를 졸업한 첫 흑인 생도이자 미 육군 첫 흑인 장교였다.
조지아주 토머스빌 노예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 남북전쟁 기간 자유민이 된 그는 재건시대 애틀랜타대 재학 중 지역 하원의원 추천으로 육사에 입학했다. 그는 흑인 동급생 4명과 함께 극심한 인종 차별을 견디며 흑인 중 가장 먼저 육사를 졸업, 흑인 연대(일명 버펄로 연대) 중 하나인 제10 기병연대 소대장으로 임관했다. 사병은 전원 흑인이었지만 그를 제외한 모든 장교는 백인이었다.
그는 아파치 인디언과의 빅토리오 전투 등 중서부 원주민과의 전투에서 활약했다. 부대장이던 백인 대위 니컬러스 놀런(Nicholas Nolan)은 그의 탁월한 리더십과 매너 등을 공개적으로 칭송하며 그를 가족 식사에 초대할 만큼 존중했지만 백인 장교들은 그를 철저히 차별했고, 그가 놀런의 딸과 친구처럼 지낸 사실 등을 문제 삼아 모함을 일삼았다. 인종 간 결혼이 금지되던 시절이었다.
그는 1881년 신임 부대장 명령으로 요새 병참 업무를 맡았다가 예산 2,000달러가 부족한 사실을 알게 됐다. 함정이라 여긴 그는 자신과 무관한 그 과실을 감추려다 적발됐다. 군법회의는 횡령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지만 “장교와 신사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그는 불명예 전역해야 했고, 이후 그는 토목 기술자로, 정치인 정치고문 등으로 여생을 보냈다.
그는 후손들의 끈질긴 청원 끝에 1976년 명예 일부를 회복했고, 99년 빌 클린턴 정부에 의해 전면 사면됐다. 1976년 웨스트포인트는 그의 흉상을 제막하고 “생도 시절 이례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최고의 리더십과 극기심, 인내심을 보여준” 졸업생에게 수여하는 ‘플리퍼 어워드’를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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