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미 지음,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나와 아주 먼 사람으로부터 이상하리만큼 깊은 유대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책방을 열고나서는 매주 금요일 밤과 주말 아침, 그런 경험을 한다. 책방에서 운영하는 조조, 심야 책 읽기 모임에 참여하는 멤버들과 나누는 시간이 그렇다. 가까운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해 마음 깊은 곳에 고여 있던 것들이 손쉽게 해체되고, 그것들을 기꺼이 나눌 수 있게 된다. 책이라는 공통된 관심사가 우리들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것인지, 타인에게 흘러나오는 비슷한 고민이 반가워 마음 문을 활짝 열게 만드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이 시간들이 앞으로의 날들을 잘 살아낼 것 같은 힘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기쁨을 맞이하면서 종종 내 옆사람들이 떠올랐다. 늘 곁에 있는 혹은 그럴 것만 같은 이들에게는 왜 기꺼이 나누지 못했는지 궁금했다. 역시 정답은 모르겠다. 어렴풋이 추측해 보건대, 아마 그들도, 나도 서로를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관계 속에 놓여 있는 스스로에 대해서도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는 아닐까.
내가 나를 모를 때, 그리고 관계가 어려울 때 소설을 찾는다. 나와 전혀 다른 인물들이 어떤 상황을 헤쳐가거나, 외면하거나, 직시하는 장면에서 여러 측면의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예상외의 곳들에서 옆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운명적인 순간도 만나게 된다.
좋아하는 책을 묻는 물음에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라고 답하는 책방지기지만, 소설이 주는 이러한 기쁨들을 발견하게 해준 책이 있다. 서유미 작가의 소설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이다. 독서를 하는 내내 손이 바빴다. 떠오르는 마음들을 붙잡아 두려 책 여백에 빼곡하게 메모를 해야 했다. 소설집에 수록된 일곱 편의 단편소설과 다섯 편의 짧은 소설들을 읽는 동안 나는 자주 멈춰 서서 소설 속 인물들을 바라보았고, 그 안에 있는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서문에도 기록되어 있듯, 각 소설의 제목들을 풀어놓으면 문장으로 길게 이어진다. '인생은 모르는 순간, 끝끝내 알 수 없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고, 산다는 건 창 너머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인데,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고, 너는 거기 서있고, 우리는 그 새벽을 지나, 그곳으로 가고 있다고. 내일은 모르겠지만 이 밤은 괜찮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알고 싶은 게 많았지만 알 수도 없고 알아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이었다." <끝끝내 알 수 없는 것 中>
"나이가 들면서 결과보다 인생이 어떤 날들, 순간들로 채워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새벽을 지나는 일에 대해 中>
"멀리서 보면 인생은 고요하고 단순하고 사는 것 역시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인생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감각이 필요해서 창 너머를 보는 것 같았다." <창 너머의 사람들 中>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인 채로 흘러가는 삶 속에서 스쳐 지나갈 법한 작은 지점을 포착하여 깊게 고민하게 하는 소설이다. 여전히 나는 타인도, 나도, 인생도 잘 모른다. 알아도 모른 체하거나, 안다고 생각하며 많은 시간을 지내왔다. 소설을 읽는다고 모든 게 전부 괜찮아질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런 들여다봄이 우리를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게 할 것임을 진심으로 믿는다. 이 소설의 인물들이, 이 소설이 그런 용기와 믿음을 주었다.
소설이 좋다.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좋다. 그리고 타인들이 한데 모여 소설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가 되는 일은 더욱 신난다. 이런 순간들이 모여 잘 모르겠는 인생을 잘 살고 싶게끔 한다. 소설을 통해 삶을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지점들이 좋아서 소설 편식이 심한 책방지기가 된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책방밀물
- 정다현 대표
책방밀물은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작은 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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