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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철강도시도, 남성 위주 제조업만으로 '청년 실종' 못 막아

입력
2023.06.20 17:00
수정
2023.06.20 17:2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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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청년 실종 : 1회 포항]

포항에서 뜻이 맞는 청년들과 독서모임을 진행하는 양희연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독립책방 겸 카페 'B급 취향'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포항에서 뜻이 맞는 청년들과 독서모임을 진행하는 양희연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독립책방 겸 카페 'B급 취향'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미 오래된 현상이다. 그 결과 면적은 전국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국 인구의 50.5%가 거주하며 전국 지역생산액의 51.4%를 생산한다. 이런 일방적 집중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은 20ㆍ30대 청년이다. 1990년 이후 20년 동안 시도 간 인구이동 패턴(통계청 국내 인구이동 통계)을 보면 2001년 이후 전체 인구의 시도 간 이동 규모는 줄어들고 있지만, 비수도권 청년들의 수도권 이동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더욱이 수도권으로 이동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2010년에는 남성과 여성 모두 30대 후반이 가장 많았으나, 2021년에는 남녀 모두 20대 후반이 가장 많았다. 그 결과 전국 청년 취업자의 57.1%가 수도권에 모여 있다.

이런 편중 탓에 떠날 마음이 없던 비수도권 청년들마저 고향과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된다. 청년은 장기간 지역 내에서 경제활동 등 다양한 기여를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그가 떠나가는 것은 그 지역의 미래가 함께 떠나가는 것이다.

지금은 ‘지방 청년 실종’의 시대다. 흔히들 그 원인을 일자리나 교육의 문제 정도로 단순하게 판단한다. 그래서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은 일자리 유치, 거주비 지원, 육아비 지원 등 청년 유치 노력을 기울이지만, 성과를 거뒀다는 소식은 듣기 힘들다. 이쯤 되면 원인 진단과 처방 모두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소장 배영ㆍ이하 ISDS)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비수도권 지역 곳곳을 찾아다니며 청년에게 지역을 떠나는 이유를 직접 물어보고, 양적 질적 조사 방법을 사용해 미시적 근거를 찾아보기로 했다. 2주마다 비수도권 지역 한 곳씩 분석해 게재한다.

‘남초(男超) 도시’ 포항, 남녀 청년 모두 떠난다

포항은 경상북도 최대 도시이다. 포항을 대표하는 포스코를 비롯해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철강 관련 기업들로 구성된 산업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2021년에는 에코프로, 포스코퓨처엠 등이 입주한 이차전지 특화 산업단지도 들어섰다. 대기업과 첨단산업 기업들 덕에 일자리(고용노동부 일자리 동향통계)도 2016년 15만 개에서 2022년 16만 개로 꾸준히 늘어났다. 하지만 인구는 2015년 52만 명을 정점으로 2022년 49만 명으로 줄어들고 있다. 특히 20ㆍ30대 인구의 전출이 늘면서 평균 연령도 41세에서 44세로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포항 청년인구와 일자리.

포항 청년인구와 일자리.

포항은 일자리가 늘어나도 젊은이는 사라지는 지역이다. 이것이 바로 ‘지방 청년 실종’ 기획의 첫 번째 취재 대상을 포항으로 선택한 이유다. 포항 청년들(이름과 직업은 별도 인터뷰에 밝힘)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다.

이들이 첫 번째로 지목한 것은 포항의 일자리는 양과 질 모든 면에서 남성 위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미취업 여성 청년과 결혼 후 경력 단절을 고민하는 취업 여성 청년들이 포항을 떠나고, 그래서 결혼 상대를 찾기 힘들어진 남성 청년도 결국 포항을 떠난다”는 주장이다.

한국의 남녀 성별 비율은 남성 50.1%와 여성 49.9%로 대체로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포항은 50.7% 대 49.3%로 남성의 비율이 더 높다. 그런데 20대의 남초는 매우 두드러진다. 58%대 42%로 수도권 지역의 51%대 49%와 뚜렷한 차이를 나타낸다. 포항 청년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포항의 젊은 남성들에게는 포스코나 에코프로 같은 좋은 직장들이 있다. 하지만 젊은 여성의 눈으로 봤을 때 뭐가 있지?” “포스코나 해병대에 근무하는 남성과 함께 포항으로 이주한 기혼 여성이 구할 수 있는 직장은 거의 시간제 임시직이다. 대부분 출산과 함께 경력 단절을 피하기 힘들다.” “구직사이트에 들어가 봐도 포항의 여성 구인 직종은 요양보호사, 서빙, 안내, 경리 등 여성성을 요구하거나 남성 보조 역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지금 포항에 시급한 것은 산업공단 증설이 아니라, 여성의 일자리를 늘리고 그들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여성친화적인 도시로 변신하는 것이다.

안전과 일자리는 부족, 문화생활 시설은 열악

물론 성별 불균형만으로 포항의 청년 실종을 설명하는 것은 무리다. 원인을 종합적으로 찾기 위해 추가 조사를 진행했다. ISDS는 통계자료 및 기사와 댓글,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주민들의 이야기와 국민민원데이터 등 다각적인 자료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포항의 상황을 체계적으로 살펴보고 이후 취재할 다른 지역과 비교가 가능하도록 지표를 만들었다. 크게 ‘안심’과 ‘만족’ 요인으로 구분해 정리했다. 특정 지역을 떠나거나 그 지역에 살기로 마음먹는 것은 결정적 조건 하나보다는, 여러 조건을 종합적으로 비교하면서 이뤄지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도권과 비교를 위해 서울과 함께 포항과 비슷한 인구(안양) 및 면적(인천)인 도시를 분석에 포함했다.

먼저 ‘안심’ 영역은 기본적인 삶의 영위에 있어 꼭 필요한 조건으로, 일자리, 안전, 자연환경, 의료 분야를 포함했다. 객관적 비교를 위해 데이터 수집 후 서울을 1점 기준으로 해서 표준화된 지표로 산출했다.

포항과 다른 도시의 안심영역 지수 비교.

포항과 다른 도시의 안심영역 지수 비교.

조사 결과 의외로 수도권에 비해 열악할 것으로 예상했던 의료와 환경요인은 수도권과 차이가 없었다.

반면 일자리의 경우 지표상 우수할 것으로 예상했던 포항은 경제활동 인구 수 대비 지역 일자리 비율에서 서울은 물론 안양보다도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수의 대기업과 그 협력회사만으로는 50만 인구인 포항마저도 충분한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다는 결론이다. 결국 포항은 대기업 위주 제조업 집중에 머물지 말고 다양한 산업이 공존하는 다양한 일자리 생태계를 만드는 것에 보다 힘을 쏟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범죄율이나 생활안전에 대한 종합 평가인 안전 지수에서 서울 안양에 비해 뒤떨어진 것이 눈에 띈다.

‘만족’ 영역은 일상생활과 긴밀히 연결된 요소들이다. 공연장이나 도서관, 박물관과 같은 문화기반시설, 교육 관련한 사교육기관 및 업체, 백화점 및 대형마트 등의 대규모 점포, 스타벅스와 올리브영 같은 생활 어메니티(amanity)를 포함했다. 만족 영역의 생활 편의 요소들은 지역 내 얼마나 마련되어 있는지도 고려되어야 하지만,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존재하는지도 중요한 요소여서 포항을 기준 1로 놓고 인구와 도시 면적을 기준으로 비교해 각각 지표를 산출했다.

포항과 다른 도시의 만족영역 지수 비교.

포항과 다른 도시의 만족영역 지수 비교.

비수도권 청년 실종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예상했던 문화시설, 사교육 인프라, 생활 어메니티는 인구에 대비해 볼 때 대규모 점포를 제외하고는 포항과 안양 인천의 유의미한 차이를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실제 이용의 맥락에서 중요한 접근성의 측면에서는 매우 큰 차이를 나타냈다. 도시별 면적 대비로 비교했을 때 수도권 지역의 모든 시설이 5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수도권 지역에 비해 포항에서 해당 시설을 이용하려면 적어도 2, 3배의 시간을 소모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편의시설 접근 거리가 멀다면, 교통의 편리성을 높이는 것으로 보충할 수 있다. 대중교통망을 확충하고, 걷거나 자전거로 통행하기 편한 도시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포항 청년들은 생활문화 기반에 대한 소외와 갈증을 호소한다. “제대로 된 쇼핑을 하려면 울산이나 부산, 대구로 가야 한다.” “공공도서관에서 젊은이들에게 인기 높은 작가를 초청해 간담회를 하는데, 낮 시간이어서 참석 못 했다. 관 주도의 문화행사가 얼마나 젊은이들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지 보여준다.”

포항의 많은 청년이 고향을 떠나기 싫으면서도 눈물을 참고 수도권으로 간다. 포항에서 만난 청년들은 공통으로 외로움과 답답함을 호소한다. 이들이 고향에서 행복하게 미래를 꿈꾸며 살게 만들기 위해서는 대규모 산업공단 유치같이 큰 예산이 꼭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모여 고민을 나누고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과 그리고 시간이 중요하다.

지역 활성화와 청년의 정착은 시간적 인과(因果)가 아닌 상관(相關)관계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청년이 지역에 정착하면 자연스럽게 지역이 활성화되고, 지역이 활성화되면 더 많은 청년이 모여들 것이다. 이는 단시간에 눈에 띄는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장기 프로젝트다. 지역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다각적인 정책의 마련이 필요하다. 지역에서 살아도 삶의 조건들은 충분히 갖춰져 있다는 ‘안심’과 일상 속 생활 편의에 대한 ‘만족’이 충족돼야, 비로소 수도권에서 찾기 힘든 여유롭고, 청정한 자연환경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조사를 주관한 포스텍 배영 교수의 제안이다. “지역 활성화와 청년의 정착을 지원하는 정책이 무수히 시행되고 있지만, 대부분 단기적 성과에 급급하다. 긴 호흡을 가지고 접근하되 무엇보다 청년을 수동적 정책 수혜자로 여겨서는 안 된다.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청년에게 직접 묻고, 정책 입안 과정부터 청년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료 정리: 이민구, 전종석 (포스텍 소셜데이터사이언스 전공)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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