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 쇼크가 온다: 2-② 직장의 재구성]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맞춤 일·가정 양립책은
임신 환영하는 분위기 만들고 유연근무 확대, 불이익 없는 승진
편집자주
1970년 100만 명에 달했던 한 해 출생아가 2002년 40만 명대로 내려앉은 지 20여 년. 기성세대 반도 미치지 못하는 2002년생 이후 세대들이 20대가 되면서 교육, 군대, 지방도시 등 사회 전반이 인구 부족 충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일보는 3부 12회에 걸쳐 '절반 세대'의 도래로 인한 시스템 붕괴와 대응 방안을 조명한다.
'합계출산율 0.78'을 탈출하기 위한 사회적 책임의 한 축은 직장이 짊어져야 한다. 근로자가 임·출·육(임신 출산 육아)을 꺼리게 만드는 환경에서는 정부가 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입해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
저출산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기업이 가족친화기업으로 거듭날 방법을 찾는데 육아휴직 후 복직률 95%, 평균 자녀 수 1.6명, 전체 직원 중 현재 육아휴직자 비율 8%를 기록하는 기업들이 있다. 올해 글로벌 신뢰경영 평가 기관인 GPTW(Great Place to Work Institute)코리아가 선정한 '대한민국 여성 워킹맘이 일하기 좋은 기업'에 선정된 ①종합식품기업 대상과 ②화장품 제조 회사 고운세상코스메틱, 2021년 여성가족부의 가족친화인증기업에 이름을 올린 ③교육출판기업 미래엔을 만나봤다.
임신축하선물로 회사는 여유 있는 인력 관리
청정원 등 유명 식품 브랜드로 유명한 종합식품회사 대상은 3년 전인 2020년 임신 사실을 알린 직원에게 입덧 캔디, 산모 크림 등 임신축하선물을 주기 시작했다. 회사가 먼저 직원의 임신을 축하해주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대상에서 30년째 일하는 최창빈(57) 경영안전본부장은 직원 5,000명이 넘는 대기업에서 워킹맘의 처우 변화를 체감해 왔다. 1일 서울 종로구 대상그룹에서 만난 그는 "1990년대만 해도 대상도 다른 기업처럼 여성 근로자가 결혼하면 회사를 그만두는 분위기"였다고 떠올렸다. 회사가 바뀐 건 2000년대 들어서다. 회사는 임신·육아 지원책을 보완했고 10년 전부터 출산 축하금과 선물을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출산이 임박해서까지 임신 사실을 회사에 알리지 않는 직원들도 있었다. 회사가 달가워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다. 대상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선물에 앞서 임신축하선물 제도를 도입했다.
작은 배려지만 효과는 그 이상이었다. 직원 입장에서는 회사가 자신의 임신을 살뜰히 챙긴다는 마음을 갖고 부담을 덜 수 있다. 회사도 임신한 직원의 업무를 조정해 주고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으로 인한 업무 공백에 여유 있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최 본부장은 "임신축하선물을 받은 직원에게는 근무 강도를 조절해 주고 관련 제도를 쓸 수 있게 알린다"며 "회사에서 챙겨주다 보니 직원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김도형(47) 경영안전본부 팀장도 "보통 15개월~18개월 직원이 떠나 있는 자리엔 대체인력 채용이 원칙"이라며 "우리 팀에서도 8월 중순에 출산 예정인 직원을 대신할 사람을 뽑기 위해 5월 마지막 주에 면접을 봤다"고 말했다.
현재 대상은 8세 이하 자녀가 있는 직원 722명 중 육아휴직을 한 인원만 246명. 육아휴직 제도를 사용한 후 15명은 육아기 근로시간단축 제도도 썼다. 육아휴직 후 복직해 1년 이상 퇴사하지 않고 일하는 비율도 ▲2020년 80% ▲2021년 87% ▲2022년 95%까지 해마다 늘고 있다. 김 팀장은 "눈치 보지 않고 휴가 쓰는 제도들이 육아 지원책과 함께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육아휴직 두 번 해도 파트장 승진
중견기업인 미래엔에서 학교 교사들이 수업에 참고하는 교수학습사이트를 디자인하는 지영주(38)씨는 4월 파트장으로 승진했다. 2016년 동종 기업에서 이곳으로 이직했을 때 그의 직급은 과장. 이듬해 첫딸을 낳고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했던 그는 2018년 회사로 돌아와 지금의 업무를 이어 갔고 2020년 다시 둘째 딸을 낳고 육아휴직을 했다. 2021년 6월에 복직해 지난해 1월 차장으로 승진했고 올해 파트장에 올랐다.
이곳에서 지 파트장 사례는 드문 일이 아니다. 이달 초 서울 서초구 본사에서 만난 조아련(35) 미래엔 경영지원팀 책임은 "직원 500명 중 육아휴직자가 11명"이라며 "여성 9명, 남성 2명으로 직원 성비(남성 30%)를 감안하면 남성 휴직 비율이 낮지 않다"고 전했다.
2019년 주 52시간 근무제가 실시되자 회사는 시차출퇴근제를 도입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뒤에는 재택근무 제도를 시작했다. 현재 직원의 53%가 시차출퇴근제를, 70%가 주 2회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지난해 기준 7년 9개월로 출판업 평균인 5년 4개월보다 길다. 관리자(파트장 이상 44%), 임원(실장급 이상 20%) 중 여성 비율도 높다. 지 파트장의 상사인 디자인실장 역시 여성이다.
조 책임은 "회사 직원들의 평균 자녀 수는 1.6명"이라고 말했다. 미래엔의 사례는 ①유연한 근무 제도와 ②법이 정한 권리를 당연하게 쓰고 ③그 권리를 누린 직원이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 회사 분위기만 갖춰도 저출산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같은 회사 제도를 운영하는 데에 추가 비용이 얼마나 드냐는 질문에 조 책임은 "없다"고 답했다. 시차출퇴근제와 재택근무로 직원의 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일이 없고 육아휴직으로 대체 인력을 뽑아도 휴직 직원의 임금은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육아휴직 기간이 짧은 경우 대체할 사람을 새로 채용하지 않고 그 업무 공백을 동료들이 나눠 맡는다. 지 파트장은 "모두가 복지 제도를 쓰기 때문에 서로 돕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눈치 보지 않고 관련 제도를 누리기 위해서는 십시일반 추가 업무를 나눠도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셈이다.
육아의 불확실성, 선택적 근로시간제로 대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은 유연근무를 적극 확대하면서 직원이 일과 돌봄을 함께하며 겪을 스트레스를 줄이기도 한다. '닥터지' 등 기초화장품 브랜드로 유명한 화장품 회사 고운세상코스메틱은 현재 전 직원(193명)의 8%가 육아휴직 중이다. 직원 중 여성 비율은 77%. 출산·육아 고민을 가진 여성 직원이 많아 이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복지를 늘린 결과 올해 역대 가장 높은 육아휴직 비율을 기록했다.
이곳의 인기 제도는 직원의 77%가 사용 중인 선택적 근로시간제. 시차출퇴근제를 보완해 2020년 시작한 이 제도는 코어타임(오전 10시~오후 4시)을 지킨 채 월 150시간(근무일 20일 기준)을 일하면 된다. 김선호(34) 인재성장팀장은 "직원들이 자녀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을 필요로 했고 돌발상황도 많았는데 시차출퇴근제로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IT업계가 업무량 사전 예측이 어려워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택하는 것과 달리 육아로 인한 일상의 불확실성에 초점을 맞춰 제도를 도입한 셈이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들을 둔 김희연(32) 채용홍보팀장은 "정부의 육아기 근로시간단축 제도를 쓰면 줄어든 근무시간만큼 급여가 깎이지만 회사 제도는 급여 손실 없이 돌발 상황에 대응할 수 있어 훨씬 좋다"고 말했다.
고운세상코스메틱은 지난해부터 법적으로는 1년인 육아휴직도 2년까지 늘렸고 법적으로 12주~36주인 임신기 2시간 단축근무 기간도 임신 전체 기간으로 확대했다.
생애 주기에 '출산과 육아'가 있지 않은 직원들도 불만이 크지 않다. 회사 돌봄 제도가 육아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주 2회 재택근무를 운영하는 이 회사는 가족 돌봄을 위해서는 재택근무를 주 5일 내내 할 수 있고 무급인 중증질환 휴직제도도 유급으로 바꿨다. 김 팀장은 "다양한 돌봄 지원책을 도입해 모든 직원이 복지제도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절반 쇼크가 온다' 글 싣는 순서
제1부 인구 충격 진앙지, 절반세대
①소멸은 시작됐다
②2038 대한민국 예측 시나리오
③절반세대 연애·결혼·출산 리포트
④절반세대 탄생의 기원
제2부 무너진 시스템 다시 짜자
①가족의 재구성
②직장의 재구성
③이주의 재구성
④병역의 재구성
⑤교육의 재구성
⑥연금의 재구성
제3부 절반세대가 행복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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