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대신 강경으로 돌아선 정부
노사 자율성이 더욱 필요한 시대
인내심 있는 조정자가 정부 역할
대학에서 한국 노사관계를 강의하다 보면 '라떼는' 식의 설명을 하게 되는 상황이 있다. 강의 자료에 '대립적 관계', '전투적 노조'라는 상투적 표현으로 남아 있는 20~30년 전 현장을 되살려 묘사하다 보면 학생들 얼굴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떠오른다. 이내 극한 대립을 지난 역사로 이해해 보려는 학생들을 보며 시대도 세대도 한참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지난달 말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이 고공농성 중 경찰의 곤봉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장면을 그날 밤 유튜브 영상으로 봤을 때, 잠시 혼란스러웠다. 2023년의 현실이라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의 나와 Z세대 학생들이 동시대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 일이 예사롭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 현장 속 주인공이 지난 20여 년간 '사회적 대화'를 강조해 온 한국노총 간부여서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노총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불참을 선언했고, 근근이 이어져 온 대화의 명맥은 그렇게 끊어졌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 등을 통해 노동시장 제도개혁을 시도하던 현 정부 노동정책은 지난해 말 화물연대 파업 대응 과정에서 급선회했다. '노사관계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힘들어도 법치'라는 기조는 역설적으로 노정 갈등을 증폭시키는 중이다.
노사관계는 정부가 바로잡아야 하는 사회문제가 아니다. 명확한 당사자 조직이 존재하고, 이해관계 대립의 개연성이 있는 관계다. 필연적으로 갈등 구도를 내포하지만 각자가 더 나은 결과를 가져가려면 상호 협력도 해야 한다. 노사관계의 과정은 복잡하고 예민하며 종합적 접근을 요구한다. 그렇게 신중히 다루어 가야 할 과정에 더 빨리, 더 쉽게 결과를 얻겠다고 정부가 섣불리 개입하면 거위 배를 가르고 알을 꺼내려는 격이 된다. 심지어 '법치'라는 명목으로, 검찰과 경찰이라는 강력한 도구로 개입하면 관계는 돌이키기 어려워진다. 논리보다 감정이 앞서게 되고, 장기적 신뢰를 쌓을 수 없게 된다.
지금 한국의 사회경제 상황이 대화에 앞서는 단호한 법치를 요청한다고 보기 어렵다. 첫 번째 근거는 최근 노동조합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현상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가입가능한 노조가 있을 경우 노조가입 비율은 모든 세대에서 높다. 과거 청년세대에 비해 요즘 청년세대가 노조 효능감을 더 인식한다는 연구도 있다. 실제 노조조직률은 국제적 하락 추세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예외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여전히 노조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노조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욕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두 번째 근거는 우리가 대전환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가 직면한 쌍둥이 전환(twin transition), 즉 디지털과 탈탄소라는 복합 전환의 한가운데에서 기업도 노동자도 혼란스럽다. 전사적 변화와 혁신을 요구받는 기업, 급변하는 기술환경에 노동자의 빠른 적응과 협력은 필수적이다. 이에 조응하는 노사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전환은 기회를 제공하지만, 부적응과 일자리 위험을 높여 노동자 저항을 동반할 가능성도 크다. 제조 및 서비스 부문 유럽 노사관계에 관한 최근 비교연구들을 보면, 독자적 변화 대응 전략과 역량을 키워 온 노조가 공동 주체로 참여하는 독일 기업의 변화 성과가 돋보인다. 노조가 책임 의식과 전문지식을 가지고 참여하고 교섭할 때 전환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가 미래의 한국 노사관계에 남긴 교훈은 정부가 전면에 개입할수록 노사 대표가 각자 자리에서 성숙할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사관계가 다 여물지 않았다면 이제라도 노사는 지속가능 미래를 위해 전략적 파트너로서 준비하고 대화와 타협의 학습을 쌓아가야 한다. 이를 지원하는 인내심 있는 조정자가 정부의 핵심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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