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탄소중립기본법 위헌' 헌재 의견 제출 결의
헌재 기후소송 심리 속도 낼까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닌 현재 세대의 인권 문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기로 의결했다. 정부의 탄소중립기본법에 설정된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목표가 기후위기를 막기에는 부족해 국민들의 건강권,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번 의견 표명은 헌재의 '기후소송' 판단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13일 인권위는 지난 12일 오후 제8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과 같은 법 시행령 제3조 제1항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전달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인권위원 9명 중 송두환 위원장을 비롯한 7명이 찬성했다. 한석훈 위원은 반대표를 던졌고, 이충상 위원은 기권했다.
인권위의 이번 의결은 헌법재판소가 심리 중인 기후소송 4건 중 탄소중립기본법 대상 헌법소원 2건을 검토한 결과다. 지난해 6월 5세 이하 영유아 62명이 청구한 '아기기후소송'과 2021년 11월 기후위기비상행동 및 녹색당 등 시민단체·정당이 참여한 헌법소원이 포함됐다. 청소년 등이 청구한 나머지 2건은 구법인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 대상이라 제외됐다. 인권위법 제28조 1항에 따라 인권위는 인권보호에 관한 중대한 재판이 계속되는 경우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은 정부가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최소 35% 이상 감축하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시행령 3조 제1항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한 목표는 40% 감축이다.
인권위는 이 목표가 기후변화에 관한 국가간 협의체(IPCC)가 제시한 기준과 비교해 불충분하고, 미래세대 및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각 헌법소원 청구인들의 주장에 동의했다. 또 기후위기 대응이 늦어지면서 우리나라의 탄소예산이 이미 고갈됐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탄소예산은 지구 평균온도의 1.5도 이상 상승을 막기 위한 온실가스 배출량의 상한선으로 IPCC가 산정한 것이다. 인권위는 또 법이 2031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정하지 않아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입법적 조치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 판단했다.
인권위의 의견서에는 '탄소중립 기본법이 미래세대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 세대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인권위원들이 이 점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서미화 인권위원은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지난해 홍수로 서울 관악구 반지하 주택에 살던 발달장애인 가족이 사망하는 등 기상이변으로 인한 현재의 피해, 특히 사회적 약자의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며 "의견서에 현재 세대의 기본권 문제를 명확히 넣어달라"고 발언했다.
인권위의 의견 표명으로 헌법재판소의 기후위기 소송 심리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 기후소송의 경우 2020년 3월 제기됐지만 헌재는 3년간 어떤 답변도 내놓지 않은 상황이다. 아기 기후소송 등에 참여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으로여겨지는 만큼 헌법재판소는 더 이상 판결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며 "인권위 의견 제출을 통해 헌재 결정이 앞당겨지기 바란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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