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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마음을 칩에 심는다"... 반도체 회사 수뇌부 장악한 공산당 엘리트

입력
2023.06.16 04: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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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 굴기의 현주소: ①어디까지 왔나]
본보, 중국 반도체 41개사 수뇌부 전수분석


편집자주

중국 반도체 기술이 한국을 맹추격 중입니다. 중국 반도체 수준은 어디까지 올라왔고 앞으로 얼마나 발전할까요? 미국과의 반도체 전쟁을 버텨낼 수 있을까요? 한국일보가 상세히 짚어봤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10월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회의에서 선출된 중앙위원회 위원 205명 중엔 장위줘(張玉卓·61)라는 인물이 있다. 중국 공산당 최고권력기관인 중앙위원회의 위원은 약 1억 명에 달하는 공산당원 중 권력의 정점까지 오른 초엘리트 당원이라고 보면 된다.

그는 중국과학기술협회 당 서기로 일하다가 권력 핵심부에 진입했다. 장위줘는 지금 국무원(행정부)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국자위) 주임(위원장)이다. 국자위는 중국 국유기업을 관리·감독하는 조직. 공산당 엘리트가 중국 국유기업의 인사와 돈줄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다는 뜻이다. 당 유관단체인 과학기술협회 책임자가 당 중앙위원 및 국자위원장이란 두 가지 직함을 동시에 갖게 된 것은 시진핑 정권 들어 처음 있는 일이다. 파격 인사인 셈이다.

중국의 국유기업을 통제하는 국유자산관리감독위원회(국자위)의 리더십 구조. 가장 정점에 있는 인물이 국자위 주임(위원장)인 장위줘다. 국자위 홈페이지 캡쳐

중국의 국유기업을 통제하는 국유자산관리감독위원회(국자위)의 리더십 구조. 가장 정점에 있는 인물이 국자위 주임(위원장)인 장위줘다. 국자위 홈페이지 캡쳐


반도체 회사 정점엔 어김없이 공산당원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중국 권력의 최정점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7인)을 선출하는 기구다. 이런 인사가 국유기업 총책에 앉아 있다는 사실은 1인 지배 체제를 확립한 시진핑 주석이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 육성을 직접 챙긴다는 명백한 신호다. 중국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회사인 중신궈지(SMIC)는 장위줘의 국자위가 사실상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다. 시 주석 직할 조직 인사가 중국의 TSMC로 불리는 파운드리 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한 것인데, '반도체는 공산당의 책임'이란 메시지를 시장에 확실히 전달한 것으로 해석된다.

메시지가 아닌 실제 통계를 봐도, 중국 공산당이 반도체 회사 의사결정 구조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국반도체산업협회가 집계한 자국 반도체 기업 약 2,900개 중, 업계를 이끄는 대표기업은 41개다(상장사 39개, 비상장사 2개). △설계 △장비 △소재 △칩 제조 △후공정 등 반도체 공정별 2021년 매출 최상위 기업으로 추린 기준이다.

그래픽 송정근 기자

그래픽 송정근 기자

한국일보는 이들 회사의 지배구조와 내부 조직을 파악하기 위해 사업보고서 원문 등을 전수조사했다. 그랬더니 41개 중 40개 사의 최고위 경영진, 최대주주, 핵심투자자를 맡은 87명(겸영 또는 1개 사 이상의 대주주 등 중복 제외)은 △당성이 강한 공산당원이거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등 △공산당 주관 정치행사 참석자 명단에 올라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반도체 핵심 기업들이 공산당의 강한 입김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소재·장비 기업도 공산당 막강 파워

중국 반도체 업계를 이끄는 공산당원 또는 전인대·정협 참석자 87명 중 22명은 국유기업 6곳에 포진하고 있다. 이 회사들은 칩 제조, 장비, 소재 등 주요 공정별 기업 중 매출 1·2위를 달리고 있다.

국자위와 개별 반도체 기업을 잇는 주요 포스트에는 엘리트 공산당원들이 앉아 있다. 특히 루궈칭(魯國慶·61)은 국자위 통제를 받는 국유기업 중국정보통신과기그룹과 다탕텔레콤홀딩스의 회장이다. 두 회사는 각각 SMIC의 1·2대 주주다. 루궈칭은 작년 20차 당대회에 참석한 전국대표 2,296명의 일원이다.

29일 중국 베이징 다싱구의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 베이징1, 2공장의 모습. 회사 정문 앞에 직원들의 출퇴근시 사용하는 자전거가 즐비하다. 베이징=이승엽 기자

29일 중국 베이징 다싱구의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 베이징1, 2공장의 모습. 회사 정문 앞에 직원들의 출퇴근시 사용하는 자전거가 즐비하다. 베이징=이승엽 기자

SMIC 3대 주주인 중국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대기금)의 회장 로우위광(樓宇光)도 공산당 간부다. 로우위광은 시진핑 집권 1기(2012~2017) 때 공업정보화부 당 부서기를 지냈다. SMIC의 다른 고위경영진을 봤더니 재무책임자, 이사회 비서 등 3명이 공산당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본보가 집계한 기업 중 반도체 소재분야 매출 2위인 유연신소재 또한 장위줘의 '직속 기업'이다. 이 회사 지분 33%를 쥔 최대주주사 유연과기그룹은 국자위 소속 회사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방 당 조직 인사들도 국유 반도체기업 최고위급을 장악했다. 중국 반도체장비 매출 1위 기업 베이팡화창(NAURA)의 경우 베이징 공산당 수뇌부가 몰려 있다. NAURA를 실질 지배, 관리하는 베이징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당서기 청징(曾勁·53)은 작년 중국공산당 베이징시 당대회 대표자격 심의위원으로 활약했다. 정칭은 최근 한 공개석상에서 "국유기업의 당 영도라는 정치 원칙을 지켜 당 건설을 강화해야 하고 정부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세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NAURA는 정칭의 이런 발언을 반영해 CEO뿐 아니라 부회장, 상임이사 등 최고위 경영진 5명을 공산당원으로 채웠다.

29일 베이징 차오양구 중관춘에 위치한 중국 반도체장비업체 베이팡화창 본사의 모습. 미국의 대중제재로 중국 반도체 굴기 최대 수혜업체 중 하나로 꼽힌다. 베이징=이승엽 기자

29일 베이징 차오양구 중관춘에 위치한 중국 반도체장비업체 베이팡화창 본사의 모습. 미국의 대중제재로 중국 반도체 굴기 최대 수혜업체 중 하나로 꼽힌다. 베이징=이승엽 기자

반도체 노광장비 기업 상하이마이크로(SMEE)도 현 공산당 전국대표가 최종 관리하는 구조다. 바이팅후이(白廷輝·61)는 SMEE를 실질지배하는 상하이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당서기로, SMIC의 루궈칭처럼 20차 당대회 대표로 선출됐다. 이 회사 CEO 간핀(干頻·60) 역시 공산당원으로 SMEE 당 위원회 서기다.

2020년 128단 낸드플래시 메모리 양산에 성공한 칩 제조사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도 마찬가지다. 후베이 성에 있는 YMTC는 지방정부 산하 기구인 우한동호신기술개발구관리위원회의 통제를 받는다. 이 위원회의 최고책임자는 두하이양(杜海洋·54) 우한시 공산당위원회 상무위원이다.

중국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인 중신궈지(SMIC) 로고. SMIC 홈페이지 캡처

중국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인 중신궈지(SMIC) 로고. SMIC 홈페이지 캡처


"중국의 마음으로 반도체 만든다"

중국 40대 반도체 기업의 공산당 관계자 87명 중 65명은 민간기업 34곳의 경영자 또는 창업자, 최대주주, 상임이사 등 최고위층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장쩌민 집권기인 2001년 민간기업인의 입당을 허용한 이래, 민영기업에 대한 영향력을 다양한 방법으로 넓혀왔다.

34개 사 중 18개 사(19명)에서 최고경영자 또는 최대주주가 입당 절차를 통과한 공산당원으로 확인됐다. 설계(팹리스) 기업 5곳, 소재기업 5곳, 장비기업 3곳, 칩 제조기업 3곳, 후공정 기업 2곳 등으로 공정별로도 다양하다.

중국에서 민간 기업가가 공산당원이 됐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2021년 '공산당원이 된 중국 사영기업가들'을 집필한 윤태희 상명대 중국어권 지역학 교수는 "민영 기업가들이 최종적으로 당원이 되기까지 짧게는 2년 반, 길게는 7, 8년 이상 걸릴 정도로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친다"며 "입당 심사시 과거 행적 또한 철저히 살피기 때문에, 공산당원이 됐다는 것은 중국에서 검증된 신분을 지녔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까다로운 입당 심사를 통과한 만큼, 이들 회사의 CEO들은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당성을 과시한다. 이 중 2008년 아날로그 반도체 설계기업 아이웨이전자를 창업한 순홍쥔(孫洪軍·50) CEO는 2021년 중국공산당 창립 100주년 기념 회의에 참석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과학기술 장악과 반도체와 절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며 "중국의 마음으로 중국 반도체를 만든다"고 발언했다.

2018년 4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우한에 있는 YMTC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는 모습. 신화=연합뉴스

2018년 4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우한에 있는 YMTC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는 모습. 신화=연합뉴스


반도체 회사 내 당 조직까지 구축

외국 국적자가 대표로 있는 민간 기업에서도 '공산당의 자취'가 발견된다. 이런 회사에선 공산당원인 사외이사가 합류해 회사 경영을 관리하거나 사내에 당 조직을 구축한다.

중국 파운드리 기업들에 반도체 감광제(포토레지스트)를 납품하는 동정신소재도 그 중 한 곳이다. 이 회사 CEO는 캐나다 국적의 장닝(張寧·49)인데, 사외이사 2명을 모두 공산당원으로 채웠다. 이들은 사내 임원추천 위원회, 회계감사 위원회, 보수심사 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싱가포르 국적 CEO가 있는 팹리스 업체 락흠과기는 고위 경영진 중에 공산당 관계자가 없지만, 사업보고서에 사내 당 조직 설립 사실을 명시한 경우다. 이 회사는 지난해 사업보고서에서 "사내 우수 당원을 적극적으로 선정해, 당 건설 사업이 회사 발전에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토록 한다"고 적었다.

그래픽 송정근 기자

그래픽 송정근 기자

이처럼 국유기업을 넘어 주요 민영기업까지 공산당 인프라가 체계적으로 구축되는 현상은 시진핑 집권기의 두드러진 특징이기도 하다. 10년 이상 당원 기업가들과 거래해 온 업계 관계자는 "시 주석 집권 초인 2012년 공산당이 '민영기업 내 당 건설 업무 강화에 대한 문건'을 발표한 후부터, 당 조직을 통해 당 중앙의 정책을 기업에 하향식으로 요구하는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강해진 추세"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 지도자의 통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더욱 강해졌다는 얘기다.



윤현종 기자
베이징= 이승엽 기자
선전= 안하늘 기자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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