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재우기나 젖 떼는 방법을 가르치는 '대학'이 있다. 영국의 '놀런드 칼리지(Norland College)'. 130년 역사를 지닌 보모(nanny) 양성 학교다. 옷 수선과 식사 예절법, 호신술은 물론 소셜 미디어 교육법, 아이들에게 성(性) 정체성 안내하는 법, 국제 이슈에 대한 기본 지식 등 보육부터 교육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커리큘럼을 자랑한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세계 최고 보모를 위한 엘리트 대학 대해부'란 기사로 이 학교를 소개했다. 3년제 학위 과정을 운영하는데, 영국 왕실이나 귀족, 부유층 가정의 보모로 일하기 위한 필수 코스다. 영국 윌리엄 왕세자 부부 자녀들의 보모도 '당연히' 이곳 출신이다.
눈에 띄는 건 이 학교 졸업생들의 '초봉'이다. 이들은 4만 파운드, 우리 돈 약 6,400만 원 정도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연봉 상승률도 가파르다. 10만 파운드(약 1억6,000만 원) 이상으로 빠르게 올라갈 수 있다. 영국 부유층을 중심으로 이른바 '고등 교육'을 받은 보모에 대한 수요가 높아 졸업 후 여러 일자리 가운데 원하는 가정을 선택할 수도 있다. '100% 취업'에 머지않아' 억대 연봉'까지 보장하니 영국 명문 케임브리지대 같은 곳을 포기하고 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물론 영국에서도 이런 보모를 고용할 수 있는 가정은 극히 일부다. 하지만 이 학교가 보육에 대한 사회의 인식 변화를 이끈 건 부정할 수 없다. 적어도 이 학교에서 보육은 '아무나 할 수 있는 허드렛일'이 아닌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적인 업무'다. 아이를 기르는 일에도 자격과 경험이 필요하고 전문성을 갖춘 보모는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게 이 학교가 내세우는 가치다. 놀런드 칼리지 교장은 지난해 말 미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보모의 일을 쉽다고 생각하지만 높은 수준의 감정적 지능을 포함해 다양한 능력이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동남아 출신 도우미 제도로 이래저래 욕을 먹었다. 저임금 도우미 제도를 도입해→가정의 육아 부담을 덜고→저출산 문제까지 해결하겠다는 취지인데, 보육에 대한 '가치 절하'가 깔린 정책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육아는 아무나 할 수 있고 때론 최저임금도 아까우며 더구나 '동남아 이모님'이라면 더 싼값에 부려도 된다는 저렴한 인식이 작동하지 않았다면 나오기 힘들었을 아이디어다. 이른바 '보육 후려치기', 출산이 그토록 중요하다면서 아이를 돌보는 일은 참 가볍게 본다.
보육에만 적용되는 문제는 아니다.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상담사 등 사회를 떠받치는 필수 노동력이지만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수많은 돌봄 노동자가 존재한다. 전문성이 요구되지만 처우는 바닥이다. 영국 가디언 부편집장을 지낸 매들린 번팅이 저서 '사랑의 노동'에서 지적한 대로다. "돌봄노동의 방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게 만드는 문화적 가림막이 존재한다. 인간의 후생을 지탱해 주는 노동의 가치를 한사코 인정하지 않는 뿌리 깊은 문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돌봄으로 시작해 돌봄으로 끝나는 삶, 돌봄노동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인간 존엄을 위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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