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1급 간부 5명에 대한 보직 인사를 했다가 며칠 만에 취소하고 전원 대기발령했다. 대통령 재가까지 받은 국정원 인사가 번복된 첫 사례다. 김규현 원장의 측근이자 이번 1급 보임 당사자였던 간부 A씨가 인사 과정에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내부 문제 제기를 뒤늦게 접한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를 철회했다고 한다.
비밀 정보기관 내부의 인사 잡음이 새 정부 출범 직후부터 벌써 1년째 바깥으로 새어 나오는 형국이다. 지난해 6월 1급 간부 27명 전원 대기발령으로 시작된 국정원 고위급 인사는 12월 2·3급 100여 명 대기발령으로 일단락될 때까지 반년이나 걸렸고, 그 와중에 검찰 출신인 조상준 전 기조실장이 임명 넉 달 만인 10월 돌연 사퇴했다. 조 전 실장의 사퇴 배경에 인사를 둘러싼 A씨와의 알력이 있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일개 직원의 전횡이 가능할 만큼 국정원 기강이 무너졌다는 얘기가 된다.
윤석열 정부는 전임 정부에서 국정원 역량이 대북 협상 쪽에 편중됐다는 판단 아래 대북 감시·방첩 역량 복원에 초점을 맞춰 국정원 개편을 추진해왔다. 마침 북한 도발 격화, 신냉전 구도 조성으로 대북·해외 정보 분야에서 국정원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하지만 물갈이 인사 내홍 속에 여태 고위급 진용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국정원이 이런 요구에 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당장 이번 인사 번복으로 미국·일본 거점장 업무 인수인계에 차질을 빚게 됐다. 급기야 대통령 재가 인사 번복 사태까지 부른 인사검증 라인의 문책도 불가피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 조직이 동요하는 건 기관 내부가 정치화한 탓이 크다. 이번 일도 전임 정부에서 소외됐던 국내정보 파트의 복권 시도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국정원은 전문성과 자질 위주의 인사 체제를 안착시키고, 정부와 정치권은 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 '줄을 잘 섰다'는 이유로 득세하는 정보 요원에게 국가안보를 맡길 순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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