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나라에는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약 4천 종의 식물이 자랍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나라 풀, 꽃, 나무 이름들에 얽힌 사연과 기록, 연구사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엮을 계획입니다.
여름이 되어 산과 들이 녹음으로 채워지고 있다. 봄부터 초여름까지 앞다투어 피던 나무꽃들이 지고 풀꽃들이 많이 피는 계절이 되었다. 요즘 전국 어느 곳에서건 길섶이나 풀밭에서 흰색으로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꽃을 볼 수 있다. 가까이서 보면 가운데 노란색 두상화와 바깥쪽 하얀색 설상화가 배열한 모습이 마치 계란프라이처럼 보인다고 해서 계란꽃이란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개망초꽃이다. 요즘 한창 꽃이 피는 큰금계국이나 데이지처럼 여름에 피는 국화과 식물이지만, 작은 꽃이 모여 핀 모습이 멀리서 보면 언뜻 안개꽃처럼 보이기도 한다. 볕이 잘 드는 곳이면 도시권에서도 잘 자라고, 많은 꽃이 피기 때문에 숫자로만 따지면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수의 종자가 존재하는 식물일 듯하다.
주말 산책길에 가족이 이 꽃 이름을 물어봐서 개망초라고 알려주었다. 멀리서 보아도, 가까이서 보아도 이쁘고 친근한데 왜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냐며 갸우뚱거린다. 식물 이름에 '개'라는 접두어가 붙어 있으면 개다래, 개머루, 개밀, 개쑥부쟁이처럼 대개 '원식물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용도나 모양이 조금 못한' 의미로 붙였다고 보면 얼추 맞다. 물론 인간의 시각으로만 판단한 것일 뿐이다. 개망초는 망초처럼 싹이 난 다음 해에 꽃이 피는 2년생 식물이고, 비슷한 생육환경에서 잡초로 많이 자란다. 그래도 꽃이 망초보다 훨씬 크고 보기가 좋은 개망초 입장에서는 억울한 이름일 수도 있겠다.
개망초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기록물은 1937년 조선박물연구회에서 발간한 '조선식물향명집'이다. 당시 조선사람으로만 구성한 연구회에서 이전 우리나라 기록물에 나타나는 이름들과 전국 각지에서 부르던 이름들을 조사해 가장 많이 불렀던 이름을 채택하고 기록한 자료다. 다만, 그 이전 기록이나 어디에서도 부르던 이름이 없을 경우 식물학적인 특성 등을 고려하여 새 이름을 붙였는데 개망초도 그중에 하나다. 공동 저자로 참여했던 이덕봉 교수가 한글학회 잡지 '한글(1937년 1월호)'에 기고한 '조선산 식물의 조선명고(名考)'에서 밝힌 내용이다. 처음 개망초라는 이름을 붙였던 때를 고려하면 이 식물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00년 남짓 되었을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에도시대 일본에서는 경관용으로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고, 일제강점기 기찻길 주변에서 많이 자라 당시 철도용 침목에 묻어 들어왔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망초와 더불어 '망국초(亡國草)'라 부르기도 한다. 최근까지 여러 자료에서 왜풀, 망촛대, 버들개망초, 버들잎잔꽃풀, 풍년대, 청쿨, 들잔꽃풀(북한), 계란꽃 등 지역마다 다르게 부르고 있는 이름이 확인되는데 전국에 많이 자라고 있는 만큼 별칭도 다양하다.
개망초는 전국적으로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귀화식물이지만 가시박, 서양등골나물, 도깨비가지처럼 생태 교란이나 유해성에 대한 우려가 적고, 오히려 친근한 식물로 인식되어 있다. 실제 이 식물이 자라는 생태적 특성을 보면 당연해 보인다. 우선 꽃이 적은 여름철에 흰색 꽃이 무리로 피어 경관을 이루지만 다른 식물이나 농작물에 그다지 피해를 주지 않는다. 묵힌 밭에서는 잡초로 자라 농부를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생태환경 측면에서 바라보는 망초는 오히려 '묵밭 천이'의 선구식물(pioneer plant)로서 척박한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어린순을 나물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해로운 성질이 거의 없다. 가끔 부전나비나 배추흰나비가 찾기는 하지만 꿀샘이 발달하지 않은 꽃이라 벌한테는 좋은 밀원식물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이다.
이름도 순박한 개망초, 이제 우리 꽃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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