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납북자’는 납치돼 북한으로 끌려간 사람을 말한다. 6·25전쟁 당시는 물론 휴전 이후 납북된 어부, 외국여행 중 강제로 끌려가기까지 사례가 다양하다. 전후 납북자는 500여 명이다. 남겨진 가족들은 주변의 몰이해로 ‘월북자 집안’이란 손가락질까지 받아야 했다. 결혼과 취업에서의 불이익은 기본이다. 납북자 가족들이 지난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오찬을 한 것은 뜻깊은 일이다. 정부 주최 행사에 초청받고 대통령을 만나긴 처음이라고 한다.
□ 역대 정권에서 납북자 문제는 뒷전이었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납치된 자국민 문제를 전방위로 대응해 왔다. 2009년 미국은 북한에 억류된 자국민 석방을 위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평양에 보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2018년 북한에서 석방된 미국인 3명을 공항에 나가 맞이한 장면도 흔히 인용된다. 일본에선 2000년대 초반부터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가 외교 핵심이슈가 됐다. 미국 대통령이 방일하면 납북피해자 면담이 통과의례가 됐다. 일본인 납북자는 불과 17명이다.
□ 안부조차 확인되지 않지만 북한에 억류된 납북자 심정은 어떨까. ‘여우는 죽을 때 제가 살던 굴 쪽으로 머리를 둔다’(수구초심·首丘初心)고 했건만, 고령의 납북자가 느낄 향수가 오죽하랴. 고향은 어머니 품이고 형제자매·죽마고우가 있고 그들과 쌓은 추억이 보관된 한 인생의 ‘진액’이다. 해외로 이민 간 주변 친지가 돌연 “여생을 고향 땅에서 지내다 묻히고 싶다”며 귀국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
□ 대통령 오찬에 참석한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가 언론에 "전임 정부가 북한과 대화한다며 납북자 가족을 한 번도 만나주지 않고 거론조차 꺼렸다"고 비판했다. 보편적 가치에 관한 한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국가는 제 할 일을 해야 한다. 전후 납북자 외에 국군포로는 무려 8만 명 규모다. 북한은 ‘국군포로는 북한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부터 차츰 바뀌기 시작했다. 적지에 남은 이들이 70년째 대한민국이 구해줄 것으로 믿고 있을까. 조국을 위해 싸웠으나 조국은 그들을 배신했다. 국민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애국심을 요구할 자격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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