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수능 관련 발언 이튿날 교육부 대입 국장 경질
"공교육 벗어난 문제 없애겠다는 것… 쉬운 수능 아냐"
교육계선 "효과 미미할 것"… 풍선효과 우려도
정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 경향을 바꿔 입시 사교육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교육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교육과정을 벗어난 초고난도 문항을 없애 수능 난이도를 전반적으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말한 지 하루 만에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을 경질하고, 수능 문제를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한 감사 계획을 밝히는 등 신속한 대응에 나섰다.
"6월 모평 사교육 경감 취지 어긋나"… 대입 담당 국장 '경질'에 평가원 감사까지
16일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이날 대입 업무를 담당하던 이윤홍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을 대기발령한 것과 관련해 "지난 3월부터 수능이 공교육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돼 사교육 없이도 공정하게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통령) 지시가 있었다"며 "교육부는 이 지시가 처음으로 반영된 6월 수능 모의평가를 분석했고, 그 결과 담당 국의 노력이 미진했다는 판단이 있어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말했다. 장 차관은 또 "교육부는 모의평가와 수능 출제를 담당하는 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해서도 해당 지시가 제대로 이행됐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무총리실과 함께 감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교육계에 따르면 본 수능도 아닌 6월 모의평가의 출제 기조를 이유로 담당 국장을 경질한 것은 처음이다. 과거 수능 출제오류 문제로 실장급 공무원이 책임진 사례가 있지만, 사안의 경중에서 차이가 크다. 그만큼 현 정부가 수능에서 최상위권 수험생들의 변별력을 위해 출제하는 이른바 '킬러 문항'을 없애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공교육 벗어난 '킬러 문항' 없애는 것… '쉬운 수능' 아니다"
대통령실과 교육부가 이틀에 걸쳐 내놓은 메시지는 '의도적으로 난이도 조절을 위해 어렵게 만든 문제는 출제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장 차관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문항들은 난이도 조절을 한다는 이유로 꼬아서 내는 식으로 발전된 것들"이라며 "심지어 대학 교수조차 풀 수 없는 문제를 낸다는 비판이 많다"고 말했다. 교육과정평가원은 매년 수능과 모의평가 문제를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수년째 '불수능' 기조가 이어지면서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들이 다수 출제되고 있다는 점을 정부도 인정한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아예 다루지 않는 비문학 국어문제라든지, 학교에서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과목 융합형 문제 출제는 처음부터 교육당국이 사교육으로 내모는 것으로 아주 불공정하고 부당하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전하며, '쉬운 수능', '어려운 수능'에 대한 언급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변별력은 갖추되, 고등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는 수능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윤 대통령은 '교육과정 밖 수능 출제'를 사교육 업체와의 '이권 카르텔'로 언급하기까지 했다.
지난해 26조 원 역대 최대 사교육비… "킬러 문항만 없애도 절감 효과 있을 것"
정부가 이처럼 수능 '킬러 문항' 퇴출에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그만큼 사교육비 증가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교육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초·중·고생이 지출한 사교육비는 26조 원으로 역대 최대치였다.
지난해 사교육비 증가율은 10.8%로 물가 상승률(5.1%)의 2배를 웃돈다. 수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고교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021년 41만9,000원에서 지난해 46만 원으로 10%가까이 올랐다. 사교육 참여율은 64.6%에서 66%로, 사교육 주당 참여시간은 6.3시간에서 6.6시간으로 늘었다.
교육계에선 '킬러 문항'만 없애도 어느 정도의 사교육비 절감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상위권 진입을 목표로 하는 수험생이 킬러 문항 풀이를 위해 학원에 다니는 수요는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난이도 낮춰 '선행+복습'·논술·재수 증가 등 풍선효과 생길 것"
하지만 학부모와 교육계에선 '풍선효과'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에 사는 학부모 A씨는 "아이들이 중학교 때 고교 과정을 선행학습하고, 고등학교에 가면 복습을 하는 체제는 한 문제라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라며 "만약 킬러 문항 대신 중상 난이도 문제 비중이 높아진다면 이 같은 추세는 더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난이도 조정으로 수능 변별력이 떨어진다면 수시모집의 학생부종합전형이나 논술전형 비중이 늘어날 수 있어, 관련 사교육 시장이 커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킬러 문항 배제만으론 사교육비 경감에 큰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비관론도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5년 전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었지만, 오히려 초·중 영어 사교육 시장은 더 활성화됐다"며 "시험의 난이도만 조정해 사교육을 경감시키겠다는 것은 설익은 접근"이라고 말했다. 또 최상위권 수험생의 변별력이 떨어질 경우 오히려 재수 수요를 늘릴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융합형 문제' 배제에 대해서도 반대 여론이 높다. 수능은 과거의 학력고사와 달리 암기력이 아닌 창의력과 사고력을 평가하는 시험인데, 융합형 문제를 없애버리면 과거 교육으로 돌아가는 꼴이라는 비판이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수능이 교육과정을 지키지 않고 있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방향성은 바람직하다"면서도 "수능과 고교내신의 절대평가 전환, 이에 따른 동점자 처리방안 등 종합적인 대입제도 개선 및 수능 출제 정상화 방안을 내놔야 사교육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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