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특수학교 장애 학생 폭행
"교사 교권, 학생 인권 침해" 우려로 CCTV 없어
부모들은 "몸에 상처 있어도 왜 그런지 몰라 답답"
충남 특수학교 10곳, 공청회 열고 의견 수렴 예정
“작년에 애 목에 한 줄로 시퍼렇게 멍이 들었어요. 애는 물어봐도 멀뚱멀뚱하고, 선생님한테 여쭤보니 ‘집에서 다친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후엔 애가 가방을 잃어버렸는데 선생님은 또 모른다고 하시고요. 그래서 교실에 CC(폐쇄회로)TV를 설치해주면 안 되냐고 했더니 교권 때문에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학부모회에서도 얘기했었는데 학교에서 거부를 했고요. 우리 애들은 어린 애나 마찬가지라서 어린이집처럼 CCTV가 있어야 되거든요. 너무 답답해요.”
중증 자폐 아들(12)이 특수학교에 다니는 이진영(가명)씨의 하소연이다. 아이 몸에 상처가 있어도 자해를 한 건지, 다친 건지, 폭행을 당한 건지 알 도리가 없다. 장애 학생 폭행 사건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철렁할 수밖에 없다.
제보자 덕에 겨우 드러난 진실...멈추지 않는 폭력
최근 서울 은평대영학교에서는 교사 A씨가 지난달 9일 수업 도중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의 뺨을 두 차례 때려 아이의 뺨이 부어오르자 부모에게 “아이가 자해를 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모는 평소 없던 자해 증상이 나타난 줄 알고 관련 약까지 처방받으며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익명의 제보자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교사의 폭행 사실이 드러났지만 제보자가 아니었다면 영영 묻혔을 일이다.
알고 보니 이 교사는 4년 전에도 학생을 때리고 신발을 던져 징계(정직 1개월)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이 학교에서는 2013년 교사가 졸고 있는 학생 귀를 라이터로 달궈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폭력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경남 진도의 한 장애아 전담 어린이집에서 지난해 6~8월까지 4~12세 장애 아동 15명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로 보육교사 2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이들의 학대는 확인된 것만 510건이다. 2018년에는 강원도 태백미래학교 교사의 학생 성폭행, 서울 인강학교 사회복무요원의 학생 상습 폭행, 서울 교남학교 교사들의 학생 상습 폭행 등 특수학교의 폭력 문제가 잇달아 터지기도 했다.
"학생 인권, 교사 교권 침해" 우려로 CCTV 무산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교실 내 CCTV 설치가 대안 중 하나로 제기됐다. 특히 2016년 4월 박한음(당시 8세)군이 특수학교 통학버스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68일 후 사망한 사고를 계기로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시도교육청 및 교사단체, 장애인단체, 장애인부모단체 등은 CCTV가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교권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한국특수교육총연합회 관계자는 “상징적으로 봤을 때 특수교사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 특수교사 입장에서는 납득이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며 “특수학교에 설치가 허용되면 다른 학교로 전파될 수도 있고 장단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결국 법안은 좌초됐고 아직까지 장애 학생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할 방안은 따로 마련되지 않고 있다. 현재 특수학교 내 CCTV 설치는 일반 초중고처럼 학교 자율이다. 또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학교에 CCTV를 설치하려면 교사, 학생, 학부모 등 이해관계인의 동의가 필수다. 이에 대부분의 특수학교는 복도 등 공유 공간에는 CCTV가 있지만 교실과 화장실에는 없는 경우가 많다.
10년 만에 CCTV 의무화된 어린이집...학대 발견해 가해자 처벌
의사소통이 어려운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속은 타들어 간다. 청와대와 국회의 국민청원에도 CCTV 설치 청원을 여러 번 올렸지만 동의 기준을 채우지 못해 공론화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전국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 김남연 고문은 “부모의 90%는 CCTV 설치에 찬성하지만, 반대로 교사들은 90%가 설치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의사 표현이 서툰 영유아의 특성을 감안해 어린이집에는 CCTV 설치를 의무화한 것과도 비교된다. 지금은 어린이집 CCTV가 학대를 발견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로 자리매김했지만, 10년간의 지난한 싸움의 산물이었다. 국회는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2005년부터 CCTV 설치 의무화를 추진했지만 어린이집 관련 단체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되다 2015년에야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어린이집 관련 단체들은 CCTV가 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내는 등 계속 반발했다.
논쟁은 헌법재판소가 2018년 재판관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리며 마침표를 찍었다. 헌재는 “아동학대 근절은 단순히 보호자의 불안을 해소하는 차원을 넘어 사회적·국가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는 중대한 공익”이라면서 “보육교사 등 기본권에 제약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침해되는 사익이 보호되는 공익보다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또 “어린이집에서의 아동학대 방지 및 적발을 위해서 CCTV 설치를 대체할 만한 수단은 상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해 충북 충주의 한 특수학교에서 기간제 전담사로 일한 김지은(가명)씨는 "CCTV가 학생들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강조했다. 그는 "교실에서 특수교사를 지원하는 특수교육실무사들이 아이들을 발로 차는 것, 교사가 아이 머리를 때리는 것 등의 폭력과 숱한 방임을 목격했다"며 "이를 학교 측에 알렸지만 모두 다 묵인했고 오히려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을 따돌렸다"고 말했다. 이어 "신고를 받고 전수조사를 벌인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인권유린 정황은 확실한 것 같다'면서도 CCTV 등 증거가 없다며 안타까워했고, 결국 처벌 없이 사건이 흐지부지 마무리됐다"며 "CCTV가 '지켜보고 있다'는 최소한의 보호장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 특수학교 10곳은 CCTV를 설치하게 될까
현재 CCTV 설치를 진지하게 논의 중인 곳도 있다. 충남도의회 주진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부터 특수학교 교실에 CCTV 설치를 주장했다. 그는 “한 주민의 손자가 특수학교에서 손바닥이 찢어져 9바늘을 꿰맸는데, 학교 측은 아이가 손에 쥔 블록을 강제로 빼앗다가 상처가 난 것을 나중에야 시인하고 사과했다고 한다”며 "교권 침해 등의 이유로 교사들이 반대하고 있지만 학교는 학생이 우선돼야 하고, 학생은 안전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충남도의회 교육행정질문에서 주 의원은 다시 한번 제안했고, 김지철 충남교육감은 “(충남도 내) 특수학교 10곳의 관계자와 논의를 거쳐 특수학급 내 CCTV 설치가 가능한지 논의를 시작해 보겠다”고 답했다. 주 의원은 “선생님들은 안 된다고 벽을 쳤었는데 김 교육감께서 공청회 등을 통해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답변해서 논의가 상당히 진일보했다고 본다”며 “학교가 자발적으로 설치하는 것을 유도하고, 계속 등한시하면 조례 제정 등 의무화 방법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사고가 있을 때 권한 있는 사람들만 영상의 특정 부분만 볼 수 있게 하는 등 영상을 잘 관리하면 CCTV는 학생뿐 아니라 선생님까지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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