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굴기의 현주소: ②성장방정식]
'칭화대의 자랑' 전자과·반도체대학원 가봤더니
편집자주
중국 반도체 기술이 한국을 맹추격 중입니다. 중국 반도체 수준은 어디까지 올라왔고 앞으로 얼마나 발전할까요? 미국과의 반도체 전쟁을 버텨낼 수 있을까요? 한국일보가 상세히 짚어봤습니다.
중국의 이공계 수재들만 다닐 수 있다는 칭화대는, 정말 말그대로 지역에서 '난다 긴다'하는 학생들만 입학할 수 있는 '꿈의 대학'이다. 매년 6월 치러지는 중국판 수학능력시험 가오카오(高考)는 성적을 23개 성(省) 단위로만 집계하는데, 정원이 300여 명인 전자학과 같은 인기학과에 입학하려면 각 성에서 10등 안에 들어야 한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올해 가오카오 응시자는 1,291만 명이다. 바늘구멍도 이런 바늘구멍이 없다.
이렇게 어렵게 들어간 칭화대 학생들의 대학생활은 어떨까. 지난달 30일 한국일보가 중국 베이징 하이뎬구의 칭화대 캠퍼스를 방문해 확인했더니, 주요 학과 건물과 도서관, 운동장에서 만난 전자학과의 학부·대학원 학생들은 사실상 '고등학교 4학년'의 하루를 살고 있었다. 말 그대로 밥 먹고 공부만 하는 쳇바퀴 같은 삶이었다.
각 성에서 10등 안에 들어야 합격
칭화대 집적회로학원(반도체 대학원)은 여느 대학과 다름 없이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특히 석박사 과정 학생들의 개별 좌석이 위치한 3층의 대형연구실에선 100여 명의 학생들이 기말고사 공부와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실험가운을 입고 있던 한 학생은 "이 기간에는 모두가 예민하다"면서 "외부인이면 말 걸지 말라"고 짧게 답했다.
산학협력은 칭화대에선 일상다반사다. 칭화대는 교수를 임용할 때 교수에게 연구실 외에 어떤 것도 지원해주지 않는다. 중국 정부의 정보통신(IT) 등 첨단산업 분야에 대한 천문학적인 투자로 연구 프로젝트와 지원금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국책기관·기업과의 공동연구 프로젝트로 교수들이 눈코 뜰 새가 없다.
이날 지하의 한 연구실에서는 학생이 아닌 반도체업체 관계자가 실험실을 빌려 사용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 관계자는 "액정디스플레이(LCD) 회사에 재직 중"이라며 "인쇄회로기판(PCB) 관련 업무 때문에 모교에 잠깐 방문했다"고 전했다.
국내 대학과 비교해 교수와 학생간 자유로운 소통이 이뤄지는 점도 특징이다. 교수 연구실이 강의실과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한국과 달리, 칭화대 집적회로학원에서는 교수 연구실이 강의실 바로 옆에 쭉 늘어서 있었다. 학생들이 거리낌없이 노크를 하고 교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애국심으로 무장한 최고학부 학생들
복도 끝에 위치한 한 강의실 벽에는 찡페이옌 전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2010년 칭화대를 방문했을 당시 남긴 글귀가 적힌 족자가 액자 안에 걸려있었다. "조국의 마이크로전자사업에 새로운 공헌을 만들어 내는데 이바지하라"는 내용이었다. 찡 전 부총리는 칭화대 무선전자학과 출신의 경제관료로,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재임 시절 거시경제정책을 총괄했다. 중국 내에서 칭화대의 높은 위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중국 정부가 2010년대 이전부터 반도체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증거였다.
실제로 최근 중국 학생들 사이에선 자국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자국 기업에 취업하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고 한다. 이우근 칭화대 집적회로학원 교수는 "10년 전만 해도 박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 등 해외 대기업에 취업하는 학생들이 많았다"면서 "이제는 중국 기업들이 굳이 해외로 가지 않으려 한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엔 미국에 있던 젊은 중국인 교수들이 자국으로 돌아오는 추세"라며 "실제로 반도체 국산화에 기여하려는 학생들이 꽤 많다"고 덧붙였다.
'체육'을 강조하는 칭화대 학풍
칭화대 학생들의 일상은 꽤나 단순하다. 대부분의 학생이 하루 24시간을 거의 학교에서 보내는데,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공부하는데 쓴다. 한국인 유학생 A씨는 "국내와 달리 칭화대에 입학하면 고등학교 4학년이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면서 "하루라도 공부를 안 하면 좋은 학점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강의동과 도서관, 기숙사 혹은 자취방을 오가는 게 하루 일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칭화대가 다른 대학과 달리 유독 '체육'을 강조하는 이유도 건강한 산업 역군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칭화대는 지난 2017년 학생들의 체력 증진을 위해 '수영을 못하면 졸업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을 도입해 화제가 되기도 한 곳이다. 칭화대에는 "체육이 없으면 칭화가 아니다(無體育 不淸華)"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날 오후 5시쯤 방문한 칭화대 운동장은 저녁 운동에 나선 육상부부터 체육 수업 중인 학생들까지 발디딜 틈이 없었다. 관중석 중앙에는 빨간색 바탕에 흰색으로 '국가를 위해 50년 건강하게 일하자'는 표어가 붙어있었다. 운동장 한 켠의 배구장에서 다른 학생들과 공을 주고받던 한 학생은 "오늘 배구 강의는 저녁 9시에 끝난다"며 "끝나자마자 기말고사 공부하러 도서관에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밤에도 학교를 떠나지 않는 이유
칭화대가 인재 양성에 진심인 점은 학생식당의 가격에서도 드러났다. '1,000원의 식사'는 한국에선 국가가 나서야할 중차대한 과제인데, 이곳 칭화대에서는 이미 일상이었다. 칭화대 학생식당에서 학생들은 보통 밥 한 공기(0.5위안, 약 100원)에 반찬 두 개(6위안, 1,200원)를 선택해 한 끼 식사를 해결한다. 한 끼에 1,300원이라는 가격은 베이징과 서울의 물가 차이를 비교해도 매우 저렴한 수준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을 합쳐봐야 4,0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기자가 밥 한 공기와 함께 이곳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다는 두부, 마늘쫑볶음을 주문해 먹어보니 배가 든든하게 찼다. 여기에 약 800원을 투자해 칭화대에서 직접 재배하는 매실로 만든 쏸메이탕(1.6위안)과 칭화대에서 키우는 소의 우유로 만든 요플레(1.9위안)를 후식으로 먹었다. 디저트까지 푸짐하게 먹어도 단돈 2,000원이었다. 저녁 시간임에도 학생식당이 빈 자리를 찾아볼 수 없이 가득 찬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칭화대에는 그 흔한 개강파티나 엠티도 없다. 학생들간의 술자리도 거의 없다고 한다. 학생들이 굳이 저녁에 학교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셈이다. 칭화대 인근에는 한국에서 흔히 '대학가'라 불리는 우다오커우(五道口)가 있다. 우다오커우에도 젊은 이들이 자주 찾는 술집과 클럽 등이 있지만 그 규모가 홍대 등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다. 우다오커우 인근의 한 술집 점원은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손님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 등 유학생이었다"라며 "칭화대 학생들은 공부만 하는지 코빼기도 안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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