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집은 ‘사고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금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신혼부부가 직접 집을 짓는 것보다 의미 있는 결혼 프로젝트가 있을까. 10년 동안 연인이던 윤용재(32) 박소정(30) 커플은 결혼식을 3년여 앞두고 결혼해서 살 집을 짓기로 했다. 각자 태어난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일을 마치고 돌아와 만족스레 쉴 수 있는 집, 일상과 취향을 담고 언젠가 태어날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가족의 첫 집이자 평생 집 말이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어요. 이왕이면 결혼 생활을 시작하며 우리집 마스터플랜을 시작해 보고 싶은 욕구가 컸죠."
먼 훗날로 미루기보다 '우리집'을 지어 그 공간에서 두 사람만의 인생을 시작하자는 목표가 생겼고, 수십 년 같이 산 부부에게도 쉽지 않은 집 짓기를 결혼 준비 삼아 실행에 옮겼다. 농장을 조성하려다 남겨진 남편의 집안 땅은 접근성과 전망이 좋아 단박에 집터로 낙점됐다. 여기에 지인인 에스엠엑스엘 건축사사무소의 이상민 소장, 신정훈 실장이 합류해 힘을 보탰다. 그로부터 2년 후 예비부부의 생활 구석구석 디테일을 세심하고 다정하게 반영한 '신혼집'(대지면적 659.00㎡, 연면적 130.92㎡)이 완성됐다.
생활을 설계하는 즐거움
부부는 지난해 11월 결혼을 했고 신혼집은 올해 초 완공됐다.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산비탈에 자리한 2층 박공지붕 건물은 철저하게 두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졌다. 아파트와 빌라가 답이 정해진 객관식 문제라면 단독주택은 치열하게 답을 찾아가야 하는 주관식 문제였다고 한다. "이미 완성된 집이 아니라 원하는 모습을 차곡차곡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생소하면서도 재밌었어요.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죠."
이 집을 짓기 전 예비부부는 사는 지역은 같았지만 주거 경험이 전혀 달랐다. 남편은 줄곧 주택에 살았고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내는 주택 경험이 전무했다. 남편은 '0'순위로 관리가 쉬운 집을, 아내는 여유를 즐기면서 취향을 채워갈 수 있는 집을 원했다. 주로 저녁에 필라테스 강사로 일하는 남편은 낮에 편히 쉴 수 있는 개방감 있는 거실을 원했고, 낮에 카페를 운영하고 저녁 시간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아내는 별이 보이는 아늑한 다락을 원했다. 두 건축가를 의지해 단층 집이 좋을지 2층 집이 좋을지, 방은 몇 개 필요한지, 진입로와 마당을 어떻게 구성할지 상상하다 보니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그림 같은 박공지붕 집이 스멀스멀 모양새를 갖춰갔다. "결혼을 앞두고 공간과 삶을 공유하는 방법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의미 있었죠. 결과적으로 겉보기에만 으리으리한 집이 아니라 로망과 생활이 공간에 잘 스며있는 현실적인 집이 된 것 같아 만족합니다."
숲이 들어오고 별이 쏟아지다
부부를 닮은 집의 첫인상은 단순하고 아담하지만, 주변 풍광과 어우러지면서 밋밋하거나 지루하지가 않다. 집을 마주한 숲은 특히 인상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포인트다. 두 건축가는 차경으로 남동향의 숲을 최대한 담아내려 했고, 긴 직사각형 덩어리의 건물을 장축(길이) 방향으로 동선 계획을 세웠다. 주 생활 공간인 거실과 다이닝 공간, 길쭉하게 뻗은 복도, 부부 침실과 서재를 모두 전면 숲을 향해 나란히 배치한 것. 집을 길게 펼치고 통창이 하나같이 숲을 향하니 집 안 어느 곳에 있어도 그림 같은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이상민 소장은 "건축주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거실은 탁 트인 전망과 채광효과를 누리도록 박공지붕 형태를 드러내 층고를 최대한 높이고, 편안하게 식사를 즐기는 주방과 다이닝 공간은 천장을 낮춰 아늑한 느낌을 살렸다"며 "경계를 곡선으로 처리해 부드러우면서도 드라마틱한 효과가 난다"고 설명했다.
마당은 내부와 숲 전망을 연결하는 일등공신. 콘크리트로 마감해 접근성과 실용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부엌과 거실, 각 방에서 편안하게 나올 수 있는 대청마루이자 바비큐나 물놀이 등 야외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쓸모가 많다. 실제 손님들이 와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 집만의 볼거리를 아낌없이 보여주는 공간이 됐다. "자연에 편안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전이 공간이 필요한데 콘크리트로 '반 야외' 공간을 만든 거죠. 콘크리트가 자칫 삭막한 느낌이 들 수 있는데 깊은 처마, 긴 조명을 설치해 모던하고 편안한 표정을 입혔죠." 집의 입구에 조성된 작은 진입 마당은 잔디를 깔고 캠핑 의자를 나란히 놓아 분위기를 달리했다. 남편은 "의자만 두고 앉아도 놀러 온 기분이 든다"며 "소소한 가구와 물건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집의 백미는 따로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우와!' 하는 탄성을 내뱉게 되는 2층 옥상 마당이다. 다락과 연결된 숨은 공간인 데다 외부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돼 시끄러운 머릿속을 잠재우며 조용한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이런 풍경이 흔치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두 건축가는 풍경에 '프레임'을 더했다. "멀리 보이는 산의 능선과 마을 전망은 계절 불문하고 이 집에서 즐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에요. 시선을 막힘없이 열어젖히는 대신 선택적으로 받아들여 효과를 극대화했죠."
일상과 취향이 쌓이는 집
때로 무덤덤한 디자인이 더 세련될 때가 있다. 화려하거나 튀지 않고 주변 자연과 고요하게 어우러지는 집도 그렇다. 이 집의 담담한 마당과 군더더기 없는 공간에 오히려 세련미가 흐르는 것은 자연에서 오는 여유에서 기인한 것일 터. 부부는 집 안 곳곳의 여백을 질리지 않는 자연 풍광과 소리로 채운 집에서 매일 여행지에 온 듯 살고 있다고 했다.
"밖을 보며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진다"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소박한 소망 하나를 얹었다. "이 집에 살면서 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어요. 천천히 시도해 보면서 나의 취향을 찾아갈 수 있으면 해요. 좋아하는 것들을 신중하게 채우고 생활의 흔적이 쌓이면 집도 사람도 숙성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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