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법곤충감정실 오대건·이현주 보건연구사]
전국 사건현장서 발견된 곤충 분석 도맡아
개소 6개월 만에 140건 감정 완료 성과 내
사망 시점, 학대 증명 등 곤충 활용도 높여
지난해 6월 경기 지역 한 주택가에서 부부로 추정되는 시신 2구가 발견됐다. 복수의 시신이 한 번에 발견되는 건 드문 일. 먼저 사망 시간을 확인해야 했지만, 생활 흔적만으로는 답을 내기 어려웠다. 실마리는 의외의 곳에서 풀렸다. 시신 주변에 있던 구더기 등 ‘곤충’이었다. 곤충 종류와 성장 정도를 분석해 사망 시간을 역으로 계산한 것이다. 경찰은 여성 시신에서 채집된 곤충이 더 빨리 성장한 점 등을 근거로 거동이 불편한 남편을 돌보던 아내가 숨지자, 조력을 받지 못한 남편도 뒤이어 사망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곤충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건을 해결해 가는 ‘법곤충학’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경찰청은 지난해 5월 법곤충감정실을 열어 사건 현장에서 곤충을 활용한 수사 기법을 본격 도입했다. 오대건ㆍ이현주 보건연구사는 감정실 개소 때부터 전국에서 의뢰한 법곤충 감정을 도맡고 있는 이들이다. 지난달 20일 충남 아산시 경찰연수원에서 두 사람을 만나 법곤충 감정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사건 해결 속도 높이는 곤충
이 연구사는 법곤충학을 “곤충학적 증거를 이용해 법적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학문”이라고 정의했다. 기반은 곤충의 성장데이터다. 일정한 속도로 자라는 곤충의 특성상 시반(죽은 사람에게서 관찰되는 반점) 등 의학적 증거가 사라진 시신을 분석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
오 연구사의 설명이다. “시신에 먼저 달라붙는 건 파리예요. 특히 검정파리가 가장 빨리 오고 쉬파리, 집파리 등이 번식합니다. 부패가 심해지면 딱정벌레도 찾아와요.”
법곤충학은 2014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변사체 수사 때 크게 주목받았다. 그의 시신을 두고 진위 논란이 일자 여러 법곤충학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사망 시간을 특정한 것이다. 덕분에 경찰 안팎에서 사건 분석에 곤충을 활용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됐고, 경찰청 산하에 감정실이 마련된 것이다.
2019년 경기 오산시 야산에서 발견된 백골 시신은 번데기 껍질을 통해 매장 시점을 추산하기도 했다. 오 연구사는 “사망 시점이 불분명한 경우 오랜 분량의 폐쇄회로(CC)TV를 들여다봐야 하나, 법곤충 감정으로 숨진 시간이 추정되면 수사 범위를 대폭 좁힐 수 있다”고 자신했다.
곤충은 사망 시간뿐만 아니라 노인, 영ㆍ유아 등의 학대 지표가 되기도 한다. 이 연구사는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도 곤충이 기생하는 점에 착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 부산에서 발견된 80대 여성 시신에 사망 사흘 전부터 파리 유충이 서식한 사실을 찾아내, 병든 노모를 간호하지 않고 방치해 숨지게 한 40대 아들을 입건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감정실 개소 전에는 경찰 내 법곤충학 연구자와 학계 전문가들이 십시일반 머리를 맞대 사건을 해결했다고 한다.
"첫발 뗀 법곤충학, 자료 수집·연구에도 힘쓸 것"
현재 곤충 감정은 감정실로 일원화됐다. 의뢰가 들어오면 우선 실체현미경을 통해 곤충 후기문(숨구멍)을 촬영한 후 외형을 살펴보고, 곤충 유전자(DNA)를 추출해 유전자증폭기(PCR)로 분석하며 염기서열을 파악한다. 이런 실험을 거쳐 종(種)을 확정한 뒤 성장데이터에 따라 사후 경과시간을 추적하는 식이다. 이 연구사는 “거의 모든 시신에서 곤충이 발견되는 만큼 중요 단서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감정실은 개소 6개월 만인 지난해 12월까지 의뢰된 140건의 감정을 완료했다. 올해도 50여 건의 감정을 완료했거나 진행 중이다.
우리의 법곤충학은 이제 막 발을 뗐다. 때문에 데이터 수집과 연구도 감정실에 주어진 책무다. “단순히 사건 감정에 그치지 않고 감정 기법을 고도화시켜야 하는 책임감을 느껴요. 한국형 곤충 연구와 자료 구축 작업도 병행할 계획입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